우리는 또 하나의 질문을 갖게 되는데, 죽은 후로부터 부활 때까지의 영혼들은 그 상태가 어떠하며, 몸을 떠난 영혼들은 의식할 수(느낄 수)가 있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이런 질문에도 정확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주님의 이야기는 영혼이 죽음으로 육체를 떠난 후에도 계속 느낌을 가진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6: 19-31).
인간의 영혼은 죽음 이후에도 "행복"이나 "고통", 이 둘 중의 한가지 상태에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이 땅에서의 생활태도에 따라서 나눠지게 됩니다. 부자는 죽자마자 "고통중"에 있게 되었으며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부자가 왜 고통속에 오게 되었는 가를 깨닫게 해 주었고, 그 부자는 땅위에 아직 살아 남아있는 자신의 다섯 형제를 기억하고 그 고통속으로 그들은 오지 않기를 바래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한편 나사로는 죽은 후에 안락하고 행복한 중에 있게 되었으니 이들은 모두 의식할 수 있는 존재임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생활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관하여 어떤 이들은 단순히 예수님의 비유에 불과 하다고 하며 이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이 비유이든 역사적인 사건이든 상관없이 성경은 진리이며 예수께서는 가능하지도 않은 허무 맹랑한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하신 이 이야기는 실제 상황을 묘사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부자가 있어......"라고 하셨고,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라고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정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부자가 죽었다고 말씀하셨고, 그 거지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장사되었다고 하셨고, 그들은 각각 "고통속"과 "아브라함의 품속"에 있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실제 상황을 말씀하신 것이므로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1) 죽음은 육체만을 장사지내는 것이고 영혼은 몸이 분해 된 후에도 계속 살아서 상황을 의식한다 는 것.
(2) 몸을 떠난 영혼은 이 세상에서 그 몸을 떠나기 전에 살았던 생활 태도에 따라서 그 영혼이 기쁨(행복)이나 슬픔(고통)의 상태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사후에 육체와 분리되어서도 "의식하는 존재"로 남아 있게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이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함께하기 위하여 떠나는 것으로 보고 "더욱 좋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빌1: 23).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온갖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삶도 주님을 따르는 신앙으로 산다면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죽음 이후에는 "더 좋은 상태"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인에게는 "죽는 것도 유익하니라"고 말한 사도 바울의 심정을 가늠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 21).
또한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과 "낙원" 갔었던 경험을 얘기하면서 몸을 떠난 의식적 존재를 분명히 가르쳤습니다(고후12: 2-4). 바울은 그 순간을 자신이 몸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하여 그의 의식은 몸안에서 든지 몸밖에서든지 똑같이 의식할 수 있음을 가르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 9-11 말씀을 볼 것 같으면 - 일찍이 순교한 자들의 영혼들도 역시 심판 날을 기다리며 의식할 수 있는 존재로 기록되어 있고, "......주안에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 행한 일이 따름이라"(계14: 13)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복되리라"는 미래형을 쓰지 않고 "복되다"라는 현재형 단어를 사용한 것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죽은 자에게는 아무런 의식이 없다는 주장에 사용되는 성경구절은 전도서 9: 5 말씀으로,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다시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다음의 6절을 읽어보면,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라고 씌여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뜻은 죽은 자는 그 영혼이 아무런 느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행동이 멈추며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하여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서는 죽은 자의 영혼이 무의식의 존재가 된다고 말하지 않고, 죽은 자의 영혼은 이 세상에서 발생되는 일들에 대하여 알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영혼이 무의식중에 있게된다는 소위 "잠자는 영혼설"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잔다"는 표현이 "죽음"과 동일하게 쓰이지 않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막5: 39, 요11: 11, 행7: 60, 살전4: 13-15).
성경에서의 "잠잔다"는 표현은 육체적인 죽음에 사용되었지만 그 범위가 몸에 대하여 적용되었지 영혼에 대하여 적용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은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단12: 2)로 "무덤 속에" (마27: 52-53) 있는 것이며, 그 영혼은 무덤 안에 있지 않으며 여전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눅20: 38).
그렇다면, 죽음으로 육체를 떠난 영혼들은 어디에 가 있는가?
에 대하여는, 다음에 논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