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를 관찰하느라면 독자적으로 혼자 사는 동물이 있다. 고양이와 10여년 살다 보니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을 할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고양이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개가 모이면 서로에게 꼬리를 치고 냄세를 맡으며 반긴다. 그런 습성을 인간이 좋아해서 우리들의 반려자가 된지가 오래된다. 이와 같이 우리 역시 군서동물(群庶動物)이라는 입장에서 최소 단위로 가족 중심으로 해서, 더 넓게는 한 동네를 이루고 산다. 그것도 원시시절로 올라갈수록 집성촌(集性村)을 이루어 상부상조(相附相助)하며 오순도순하게 살던 오래 전의 시절이 우리들에게 있었다.
한국땅에서는 이런 특유한 씨족문화가 오래 지탱하면서 내외사상(內外思想)이란 것이 발달했다. 이웃 동네와 엄연히 구별하기 위한 증표로써 동네 어구에 장승이란 유인(類人)조각물을 세우고 "안쪽의 자기들과 바깥쪽의 남"이란 구별의 흔적이 오늘 날에는 역사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 정신적 흔적은 아직도 남아서 우리를 좌지우지 한다. 심지어 죽은 영혼조차 안귀신이 있고 바깥에서 죽은 구신은 잡귀로 첬었다. 노무현씨가 밖에서 죽었으니 그는 의당 바깥귀신으로 처리되는 것이 우리들의 전통이었다. 교회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것조차 안사랑이 있고 바깥사랑이 알게 모르게 실행된다. 교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이러했던 사실은 실상 인류가 발전해온 삶의 한 유형을 말해준다. 씨족에서 부족으로, 그리고 부족이 모여서 한 지방을 형성했고, 나아가서 한 나라로 발전했던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 날에는 Jet여행의 단축된 공간과 인터넽의 순간적 시간을 사는 시대에 와 있다. 예를 들어서 한반도에서는 경부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서울과 부산이 일일(一日)생활권으로 바뀌었고, 세계적으로는 학국과 미국은 단 몇초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것에 생각이 미치면 가히 global 시대가 과연 무었인가를 실감한다.
그러한 생활권에 우리가 살게되었지만 사람의 관계까지도 같은 보조로 전과 같이 친밀하게 되었는가?
생활이 광역화 되었으면 우선 만나보는 거리가 멀어지니까 자주 얼굴을 대하기가 쉽지가 않아진다. 이 소외감을 보충하려고 처음에는 편지로, 전보로, 전화로, 이제 digital시대에는 이메일이나 웹페지로써 글을 주고 받는다. 그러면서 전과 같은 침밀함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특별한 경우에는 상대를 화상으로도 직접 대면하는 경우도 많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점점 멀어져 가는 인간관계를 편지라는 얼마 전의 시간적 및 물질적인 간격을 피해서 인터넽의 이메일로 더 빠르게 소식을 주고 받는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옛 정과 더 가까워졌는가?
천만에다. 기대했던 소외감이 조금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리나 시간이 단축됐다고 해서 더 친밀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를 느끼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겠다. 공간은 넓어지고 시간마저 길어자다 보니 자신 만의 자유를 즐기게 되고 그것을 보호하고 나아가서 침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게되었다. 이처럼 서로가 따로 따로 놀다가 보니 전에 가졌던 공감대를 상실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사람은 한 솥에서 밥을 먹어야 하고, 한 문화권에서 호흡해야 그 유대감을 유지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서 세상물정을 같이 보아야 동병상련(同病相憐)하겠다 마는 한쪽에서 코감기로 고생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줄창 설사를 한다면 서로의 입장을 한결같이 이해하겠는가? 이로써 인간의 문명이란 것은 결국 서로의 공동체를 쇠외하게 만든다. 이를 일러 고독(孤獨)이라고... 심지어 "외롭게 살면 죽음에 이른다고" 말한 분이 있다. '키일케골'이란 철학자가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이름의 한국판을 읽은 적이 있다.
'킬케골' 의 본명은 Søren A. Kierkegaard로써 덴마크에서 1813년에 태어나서 1855년에 타계했다 한다. 42세의 젊은 나이로... 처음부터 쌍의 숫자로써 팔자땜을 작정했다는 건지 태어나던 날이 어린이날의 5월 5일이었고, 죽는 날은 초겨울의 11월 하고도 11일이었다. Danish의 철학자, 신학자, 시인, 사회비평가, 종교책의 저술가로 많은 사람들이 실존철학을 시작한 분으로 널리 받아지고 있다.
특히 조직화된 종교를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썼고 체제화된 교회, 도덕과 윤리, 심리학, 종교철학을 은어와 '아이러니' 성의 예화 등등의 풍자를 즐겼던 사람이라고. 그 대부분의 철학적 작업이 "한 사람이 한 인생의 현실을 사는 것을 추상적인 생각보다는 좀더 구체적인 견지로 보는 것을 더 선호하였던 바, 당시에 위명을 날리던 많는 지성인들, 'Swedenborg, Hegel, Goethe, Fichte, Schelling, Schlegel and Hans Christian Andersen 등등의 사상가들을 비꽈서 "이상적인 문학적 가치 밖에 없다"고 매도했다고 한다. -위키페디아'에서 인용했음.
이래 살다가 보니 외롭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일 것이고, 따라서 "孤獨(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病(병)"이란 결론을 내린 바가 있다. 그가 비록 실존철학(實存哲學)에서 대부(大夫)의 자리를 굳힌 공로는 인정한다고 하겠지만, 이 많은 역사적 인물들과 소통을 끊고 혼자서 '만고강산 유람할제 독야청청 희희낙락' 하겠다고 설치면 철학자 및 당대의 사상가는 둘째로 치고 별볼일 없는우리 보통사람들의 인기를 끌가시오?
실상 사파세계(娑婆世界)를 멀리하고 심산계곡에 숨어들어 유아독존(唯我獨尊)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런지, 아니면 어떤 고답적인 멋이라 할지, 그런 경지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만 사람은 모여살면서 지지고 볶고 하는 데에도 어떤 즐거움이 있다고 하겠다. 소위 '천국을 가보니 재미없고, 지옥이란 데가 그런대로 괜찮더라'하는 거.
왜 그런 생각을 하는고? 내 말은 '사람은 섞여 살도록 만들어 졌기' 때문입네다. 우리의 두뇌가 그리 하도록 형성됐읍네다. 궂이 외톨로 살것다고 인터넽 이메일도 멀리하고, 남의 것에 아무 대꾸도 아니하고, 남의 통신만을 기다려셔야 쓰겄오? two way trafic인데 말이야... 당신네들은 영화관에 왜 가며 컴퓨타 '비데오'는 워짜 자꾸 매달리는 기요? 우리의 두뇌는 상대의 표정을 눈으로 살피면서 body language가 말하는 진짜의 교신을 서로 주고 받아야 群棲(군서)의 직성이 푸린답니다요. 입이 삐뚤어졌어도 표정이 바로 됐은면 움직이는 순간이 말하는 것을 만남으로 즐긴다~... 이거 랍니다. 믿거나 말거나.
한 말로 잘라 말씀드려서, 인터넽에서 아무리 미사려구(美辭麗句)와 상세한 표현으로 뜻을 나타내려 해도, 그것 만으로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과 결코 같지가 않습네다"... 이겁니다. 왜 그러냐? 문장으로써는 감정이 담길 수가 없기 때문이오. 나는 지난 10년동안 친구들에게는 이메일로 그리고 웨페지의 각종 마당에서 친교(親交)의 진국을 퍼먹이려고 애써 왔지요. 그리 노력하다가 보면 헤어졌던 옛 우정을 하마 되살려 볼수 있지 않을까? 그게 안되면 새 친구를 마당에서 만들어 볼량으로 허공에 글을 날려 왔지요. 직접 얼굴의 대하는 것만 못하더라고 소외된 시간과 공간을 메우는 인간관계에 징검다리를 놓고자 했는데... 되돌아오는 것은 오직 외로운 메아리일뿐, 외로움을 달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 그런 깨닯음을 최근에야 알았읍니다. 문장으로서는 서로의 감정을 충분히 감지하지 못하는 한계성을...
그래서 사람들은 비록 글을 쓰지 못하거나, 아니쓰거나 상관없이 비데오와 영화의 장면을 대면하고 눈물과 콧물로써 상대의 감정을 직접 느끼면서 같이 고통받고 괴로와의 인간사에 동참하는 거에요. 그것을 동정심, 즉 compassion이라 부르고, 우리는 이런 감정을 선천적으로 타고 났다고 합디다. 어찌 글로써 내 이심전심(以心傳心)을 生面(생면)처럼 감정 섞어서 전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대단한 소설가나 이름난 시인의 작품이라면 혹 모를까... 설혹 그런 작품이라 할지라도 받는 저쪽의 수신기(受信機) 상태 역시 좋아야 할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나는 결국 사람을 공감시키는 그런 존재에 왕창 모자라는 인간에 해당한다고 ... 하여간에 "그 감성의 푯대를 향하여 지금 부단히 달려갈 뿐이다", 비록 답답한 문장이라 할지라도. 여러분들도 매개체의 한계성을 십분 이해하시라... 그런 얘깁네다. '시킨쉽'(skinship)이 아무리 중요하더라고, 어찌 눈과 눈을 주고 받는 마음과 같겠오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