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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성자
작성자 revjerry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107):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성자

저의 아내가 가르쳤던 여학생이 최근에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가 나무와 부딪혀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착하고 영리하던 24살의 젊은 여자가 스키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큰 사고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다녔던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에서 한인 송년 잔치가 열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송영길씨가 사회를 보고 방실이라는 가수가 나와서 달라스 지역에 살던 한인 이민자들에게 웃음과 노래를 선사해 주었습니다. 저는 강당의 어둑한 뒷자석에 앉아 있었는데, 마침 제 옆에 달라스에서 세탁소를 운영한다는 한인 교회의 남자집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하시던 말씀중에, “우리 형님은 어떤 사람과 말다툼을 하던 중 화를 벌컥 내던 순간 심장마비를 일으켜 돌아 가셨다.”는 말을 하더군요.

벌컥 화를 내는 것이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미국인 은퇴의사는, “ ‘anger’라는 말에 d를 하나 보태면 ‘danger’ 라는 말이 되듯이, “화를 내는 것은 위험한 짓”이라고 말하던 것도 생각납니다.

한국의 인기대담프로에서 유명가수 조영남씨가 “우리 아버지가 시골장터에 계란을 팔러 가셨는데, 어떤 사람이 계란 한 꾸러미를 훔쳐서 도망가는 것을 보고 화를 내며 쫓아 가다가 쓰러 지신 후 16년간을 반신불수로 고생하시다가 돌아 가셨다.”고 하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다.

내 계란 한 꾸러미를 누가 훔쳐간다면 화가 날 법도 하지만, 화를 내다가 쓰러져 16년간을 반신불수로 고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계란 한 꾸러미때문에 화를 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세상에는 성품이 부드럽고 신경이 둔해서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신경이 예민하여 작은 일에도 발칵발칵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두가지가 짬뽕이 된 성격같아 보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듯이, 제 마음은 어떤 때는 바다와 같이 넓다가도 어떤 때는 바늘하나 꽂을 여유없이 콱 막힌 성격이 되기도 합니다.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은 바보, 화를 낼 줄 알지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란 말이 있더군요. (A man is a fool who can’t be angry, but a man is wise who won’t be angry.)

불의를 보고도 화를 낼 줄 모른다면 바보 아니면 겁쟁이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소한 일에도 발칵발칵 화를 낸다면 어리석은 좁쌀영감으로 무시당하기 쉬울 것입니다. 제가 아는 선배 목사님은 아내가 달라든다고 손찌금을 했다는 가슴 아픈 고백을 하던 것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아내를 팼다가 아내가 남편을 가정폭력범으로 고소하는 바람에 남편이 공개망신을 당하고 이혼을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신학대학 교수이며 목사인 아버지가 딸에게 화가 나서 때리는 바람에 딸이 죽은 일도 있고, 젊은 엄마가 울며 보채는 아이에게 화가 나서 아이를 아파트에 던져 버린 일도 있다고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명상수련을 수십년 해 오신 한국의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제가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일년에 몇번 정도 화를 내십니까?”하고 물었더니, 그 정신과 선생님은, “일년에 한번도 화를 안내는 것 같습니다. 명상을 통해 화가 나는 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면, 별로 화가 날 일이 없어 집니다.”하고 대답을 해서 제가 놀랐습니다.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는 저에게, “그 정신과 선생님한테서 좀 배워라. 명상을 하던지 마음관찰을 하던지,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는 법을 좀 배워라.”고 하더군요.

“복잡한 세상에서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화를 적절히 낼 줄도 알고 화를 적절히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도 있더군요. (To function successfully in our complex world, it is necessary for us to possess the capacity not only to express our anger but also not to express it.) 화는 불과 같아서 때로는 유용한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집을 태우고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할 것입니다.

올해 강원도에서 불교 명상 세계 대회가 열린다고 하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태국의 성자라 일컬음을 받는 스님이 대표 강사로 오시는데 이 스님은 밀림에서 48년간 명상을 수련하여 높은 경지의 도에 이르신 분이라고 합니다. 이 스님은 9미터가 되는 성난 코브라가 공격해 올 때 겁을 먹지도 않고 코브라를 미워하지도 않고 코브라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더니, 코브라가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 졌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이 신문기사를 읽은 어느 분이 댓글을 달기를, “이 스님이 핵무기를 갖고 설치는 김정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서 김정은이 순한 양처럼 바뀌게 하는 도술을 좀 부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도술을 부릴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코브라 다루는 것은 웬만한 땅꾼들도 하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한번은 세계의 영성가들의 대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세계의 각종 도인들, 기인들, 종교지도자들이 모여서 뛰어난 영성을 겨루었다고 합니다. 인도의 힌두교 구루는 못이 촘촘히 박힌 판자에 드러 누워 고통을 지긋이 참으며 명상에 몰입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3등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좌선명상을 하는데 모기가 물어 뜯어도 꿈쩍도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좌선명상을 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2등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조금 후에 어떤 평범한 사람이 나와서 의자에 앉자 사회자가 차를 한 잔 가져다 주니 그 사람은 “감사합니다.”하고 차를 맛있게 마시고 난 후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내려 갔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1등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1등을 했던 이유는 영성이란 무슨 기행이나, 고행에 있다기 보다는 평범한 일상에서 “감사합니다”란 말을 할 줄 알고, 잘 못했을 때 “미안합니다”란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영성이라는 것입니다.

“화를 내지 않는 마음이 성자의 마음”이란 말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한때 정신분석학을 수박겉핡기로 공부하다가 “화를 참으면 병이 된다. 화는 표현해 내어야 건강하다.”는 말을 읽고, 그렇게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 목사집에 갔다가 친구의 아내가 제가 들어 오는 것을 보고, 아이들에게, “얘들아, 아저씨 오셨다. 인사해라”고 하길래, 제가 사모님에게 화를 내며, “남편의 신학대학 동창인 목사인 나를 소개할 때 “목사님 오셨다.”라고 해야지, “아저씨 오셨다가 뭡니까?”하고 사모님에게 말했다가 완전히 미친놈 취급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건 이후에 저는 이 말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화가 날때 말을 꾹 참는 것이 말을 뱉았다가 후회하는 것 보다 낫다.” (Swallowing angry words is much better than having to eat them.)

저는 요즘 피곤하고 화가 나려고 하면,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푹 잠을 자려고 합니다. 자고 나면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남에게 화를 내며 싸우느라 기력을 낭비하는 것 보다는, 그 힘을 내가 세운 목표를 이루는데 쏟아 붓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2016-02-12 09:03:48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1   tydikon [ 2016-02-12 15:45:58 ] 

집시 켑 회사에 다니면서 화가 치밀었던 것은 배차원(Dispatcher)의 횡포였죠. 회사의 룰에 따르면 고참이 좋은 차를 몰고 가도록 배려하는 것이 상례였지만 우리 한인 친구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부당한 대우를 하여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수밖에 없었고 똑 같은 사납비에 배차원 팁 주고받은 차가 년도가 지난 탓에 개스도 많이 들고 힘도 없을 뿐더러 차에서 온갖 잡냄새가 나서 도무지 일할 의욕이 아침부터 없어져 결국 일당은커녕 사납비 채우기 급급한 날도 많이 생기게 되었던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일 나온 동료가 밀감하나 쑥 내리면서 같이 먹자고 합디다. 나는 너무 고마워 ‘이것을 누가 주든가?’ 하니 ‘애기 엄마가 이걸 주더라. 이거 먹고 화를 다스려 인간의 존엄을 잃지 말라’ 하더란 것입니다.

밀감 하나로 화를 다스리며 인간의 존엄도 지킬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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