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113): 예수 잘 믿는 사람보다 덕스러운 사람이 되었으면
제가 군목생활하던 때인 1987년에는 서울에서 강원도 인제 원통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서울 외곽에 있던 상봉터미날에 갔어야 했습니다. 한번은 고향 마산에서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돌아가려고 상봉터미날에 가는 시내버스를 탔는데 시내 버스를 같이 타고 가던 어떤 청년이 승객들에게 “예수믿고 천국갑시다.”하고 큰 소리로 외치더군요.
어느정도면 참고 갔을텐데,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대길래 제가 그 청년에게 “나도 예수믿는 목사인데,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주지 않도록 좀 조용히 하고 갑시다.”하고 잔소리를 했더니 그 청년은 “목사면 다 목사인가?”하며 불쾌한 표정을 짓더군요.
목사안수받은지 30년이 지난 요즘 생각해 보니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제 정신을 빼 놓고 살면 예수 안 믿고 사는 것보다 별로 나을게 없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다닐 때 저랑 가깝게 지내던 창현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창현이와 제가 친하게 된 이유중의 하나는 우리 둘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기독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결교회에 다녔고 창현이는 장로교회에 나갔는데, 둘이서 같이 부흥회에도 참석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기독학생회 활동도 같이 했습니다. 창현이는 노래를 잘 해서 “오 거룩한 밤”을 기독학생회 예배시간에 특송으로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한번은 학교가 끝난 후 창현이네 교회에 같이 기도하러 갔습니다. 저는 5분도 안되어서 할 말이 없어서 기도를 마쳤는데, 창현이는 한시간이 넘도록 혼자서 통성으로 열심히 기도하더군요.
어느날 담임선생님이 조회시간에 “오는 일요일은 마산 세관 운동장에서 행진연습을 해야 하므로 교련복을 입고 학교에 10시까지 오라”고 했습니다. 창현이와 저는 일요일에는 당연히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야지 학교행사인 행진연습에는 빠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창현이와 저는 일요일에 각자의 교회에 예배드리러 갔고 행진연습에는 불참했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학교에 가니 저희 담임선생님은 행진연습에 빠진 아이들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나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어제 행진연습에 빠진 학생들은 나오라”고 하시더니, 복도에 엎드려 뻗쳐를 시킨 후 한 사람씩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저의 담임선생님은 체격이 건장한 총각선생님이었는데 몽둥이로 저희 허벅지를 힘껏 때렸습니다. 창현이와 저는 이를 악물고 몽둥이 찜질을 받았습니다. 맞고난 후에는 깡총깡총 뛰며 손으로 허벅지를 문지름으로서 고통을 달래려 했습니다.
그 날 저는 집에 가서 변소에서 바지를 내려 놓고 허벅지의 상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몽둥이로 맞았던 허벅지의 피부가 검었게 타 있었습니다. 검게 탄 허벅지의 피부가 며칠이 지나자 푸르게 변했다가, 또 며칠이 지나니 빨갛게 변했고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자 서서히 없어 지더군요.
기독교 계통인 미션스쿨이었던 저의 고등학교에서 일요일에 교회가느라 학교에서 오라는 행진연습에 불참했다고 선생님이 몽둥이로 때렸던 일에 대해 학교측에 항의할 생각은 나지 않았고, 창현이와 저는 교회가 학교보다 더 중요하다는 일종의 숭고한 고집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요일에 학교에 오라고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니 주일낮 예배는 한번 빠지더라도 학교의 행진 연습에 참석하고 밤예배에 참석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융통성이 있었을텐데, 그때는 제가 마치 순교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대전에 있는 목원대학 신학과로 진학을 했고, 창현이는 진주에 있는 경상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동창생의 말을 들어 보니 창현이가 경상대 영문과 일학년을 다니다가 마산 자산동 뒷산의 소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는 것입니다.
창현이가 등록금이 없어서 고민했는지, 아니면 불우한 가정환경때문에 비관했는지, 아니면 남모르는 우울증에 시달렸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고등학교때 한시간 이상 교회에서 혼자서 기도하던 창현이가 대학 1학년때 자살을 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요즘 종교에 너무 심취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별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져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이면 떡볶기를 사 먹고 하하하 웃기도 하고, 여드름을 짜며 여학생이야기도 할 일이지, 고등학생이 혼자서 교회에서 한시간 이상 기도하는 것은 깊은 우울증을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몸부림치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혹시 창현이가 여학생들에게 관심이 안가고 남학생들에게 관심이 가는 자신의 이상한 동성애적인 취향때문에 죄책감을 갖고 고민하다가 자살을 했는지 어쩐지 저는 잘 모릅니다.
제가 목원대학 신학과에 입학했을 때 저랑 같이 입학한 동급생 한 사람은 학교를 휴학하고 해군에 입대한 후 휴가를 나와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대학에 입학한 그 친구는 무슨 고민에 시달렸던지 꽃다운 20대 초반에 자살을 한 것이었습니다.
배가 고프면 내 손으로 숟가락을 집어서 밥을 퍼먹어야지 예수가 내 대신 숟가락으로 밥을 퍼 먹여 주지 않는 것처럼, 예수를 믿더라도 내 정신을 챙기고 살아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통법규를 어겨서 교통경찰에게서 티켓을 받으면, 예수님이 내 대신 벌금 250불을 내어 주지 않습니다. 제가 울며 겨자먹기로 현찰 250불을 내어야 해결이 되지, “예수님이 내 죄를 다 사해 주셨다. 그러므로 나는 벌금을 내지 않겠다.”고 경찰한테 이야기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에 너무 빠져 현실감각이 없는 광신자가 되기 보다, 예수는 적당히 믿고, 예수의 가르침을 참고로 삼아 내 삶을 주체적으로 성실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쩌면 예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목사로서 이런 말을 하여 죄송하지만, 저는 “예수믿어 구원받고 천국가자”는 데는 별로 취미가 없습니다. 저는 예수 잘 믿는 사람보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친절한 사람을 더 좋아 합니다. 제가 예수를 믿는 주된 이유는 예수를 통해 제가 좀 덕스러운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