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제 친구목사가 한번은 미국인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던 저에게 “너는 연봉이 얼마냐?”하고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목회하고 그 친구는 자기가 받는 연봉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 “미국인 교회에서 목회하는 너는 얼마 버냐?”하고 물어온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니가 받는 연봉의 반정도 된다.”고 했습니다. 사실 미국인 교회를 맡고 있는 한국목사의 봉급은 그리 많지 못합니다. 최근의 신문보도에 의하면, 미국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들의 평균연봉은 3만불정도이고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의 평균연봉이 4만불이라고 합니다. 제가 미국인 교회 목사로 있을 때 받던 연봉이 4만불이 채 안되었으니 환경미화원이 받는 연봉과 비슷했습니다.
목사에게는 목사관에서 공짜로 살게 해 주고, 전기세와 수도세도 교회에서 내어 주고 휴가도 한달을 주니 미국인 교회 목회생활은 검소한 생활을 하며 하늘의 도를 추구하며 즐겁게 사는 “안빈낙도”의 생활을 하기에 딱 알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치즈공장에서 일을 해 보니 목회생활보다 몸은 고되나 마음은 더 편한 것 같습니다. 설교랍시고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말을 안해도 되어서 좋고, 제 설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시비걸릴 필요도 없으니, 말을 하지 않고 조용하게 사는 것이 제 체질에 맞는 모양입니다.
이제 치즈공장의 정식직원이 되다보니 직원에게 주는 혜택의 하나인 의료보험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내의 학교 의료보험에 의존해 있다가 이제 아내가 제 의료보험에 의존하고, 아내의 의료보험혜택은 일정액수로 환산되어 은퇴연금으로 들어 가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미국인 교회목사로 있을 때 제 봉급에서 5천불을 의료보험료로 내었습니다. 제가 낸 5천불외에 교회에서 제 의료보험료로 만 4천불을 내어주었으니 목사의 의료보험료가 만9천불이 좀 넘으니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놀라서 기절초풍을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돈으로 일년에 2천4백만원의 돈을 의료보험료로 내어야 하니, 목사도 힘들지만 작은 교회에서는 목사봉급외에 만 4천불이상의 의료보험료를 내어 주기에 힘에 벅찰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싼 의료보험료를 내어 주느라 고생하는 교인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교인들중에는 별로 하는 일도 없는 목사를 위해 비싼 의료보험료와 봉급을 주는데 대해 불만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치즈공장에서는 일년에 제가 천불정도만 내면 나머지는 회사에서 1만 3천불 정도의 의료보험료를 내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혜택은 노조에서 회사측과 협상을 통해 얻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노조측에서 “한시간당 15불을 받는 저임금노동자가 비싼 의료보험료를 낼 수 없으니, 회사측에서 이런 사정을 고려해 달라”고 요구를 하여 회사측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본 모양입니다.
저는 목사로 있을 때 5천불을 내어야 하던 의료보험비를 이제는 천불만 내면 된다니 “이게 꿈이냐 생시냐?”하며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목사로 있을 때는 교회에서 일년에 약 8천불정도의 은퇴연금을 내어 주었는데, 공장에서는 은퇴연금을 제 봉급에서 떼어내어 적립하는 제도가 있을 뿐이니 서로 피장파장입니다.
저는 이번에 공장 노동자들의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노조회비는 일년에 약 450불정도 되는데 봉급에서 자동이체가 된다고 합니다. 노조에 가입하면 부당해고를 당할 위협이 있을 때 노조에서 저를 변호해 준다니 보험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며칠전에 공장의 복도 게시판에 “Free Rider List”라고 해놓고 그 밑에 약 30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Free Ride란 “무임승차”란 말이니, “무임승차한 사람들의 명단”, 즉, “돈은 안 내고 공짜먹는 사람들의 명단공개”란 뜻이라고 합니다.
노조가 회사측이랑 힘든 협상을 통해 얻어낸 노동자들의 권익신장과 복리후생의 열매를 누리면서 노조회비는 내기 싫어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망신을 주려고 붙여놓은 명단이었던 것입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을 자유도 있으니, 망신을 당하더라도 노조에 가입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는 가입하는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의 작은 형님은 집안 형편때문에 중학교만 마친 후, 짐차의 운전수 조수일을 시작했습니다. 벌써 45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그러다가 자동차정비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창원공단에 취직이 되어 일을 했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쯤 한국전역에 노조활동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마음씨가 순하고 성실하던 저의 작은 형님이 중학교만 나온 학력때문에 대학을 나온 사무직원들보다 봉급이 많이 적은 것을 마음아프게 생각하고, 노조원들의 데모소식에 저의 형님의 봉급이 인상되길 바랬던 기억이 납니다.
창원공단에서 근 30년간 성실하게 일하신 작은 형님은 한국의 경제성장의 물결을 타고 지금은 대학나온 사람들 못지 않게 잘 살고 있습니다. 안락한 아파트와 중형차를 타고 은퇴연금과 적금으로 풍요한 은퇴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의 형님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힘차게 싸워 주었던 노조의 은혜를 톡톡히 입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삼년전에 저의 집사람과 저는 한국의 서해안 일주 패키지 관광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행사에서 잡아준 거제 삼성호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무슨 난리가 일어난 줄 알았습니다. 마이크를 통해 큰 소리로 노조대표가 일장연설을 하는 것이 거제시 전체에 들리는 듯 했습니다. 피곤한 교인들이 목사설교가 언제 끝나나 하며 기다리는 심정으로 저도 호텔방까지 들려오는 노조대표의 격앙된 연설이 언제 끝나나 하며 기다렸으나, 노조대표는 연설을 끝낼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제가 거제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형편을 잘 모르니 뭐라 말할 입장은 못되나, 노조활동과 연관이 없는 일반시민들에게 고성능 확성기를 통해 소음공해로 피해를 주는 노조대표의 목소리가 좀 오만방자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일부 회사의 노조는 힘이 너무 세어 져서 귀족노조라는 말도 들리는데, 노동자측과 회사측이 서로 싸우기 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함께 사는 “상생의 원리”를 깨달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