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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부와 아들
작성자 bibliatell

어부와 아들

어느 바닷가 한적한 마을에 아주 작은 나룻배를 갖고 평생 고기를 잡아 먹고 사는 어부가 한 사람 있었다. 그에게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아들에게 어려서부터 고기를 잘 잡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아들이 장성하여 스스로 고기를 잡을 수 있을 무렵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앞으로 고기를 잡을 때 이 나룻배로만 고기를 잡아야 한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아들이 퉁명스럽게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아버지, 저는 큰 배를 몰며 더 많은 고기를 잡고 싶어요.”

그랬더니 깜짝놀란 아버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그쳤다,

“아니 이놈아, 이 배는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배인걸 모르느냐? 딴소리 말고 이 배로만 잡아야 돼!”

야단을 맞은 아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대들며 다시 외친다,

“아버지, 이 낡고 작은 배로는 더 넓고 깊은 곳으로 갈 수도 없고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도 없어요!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던 저는 넓고 깊은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겠어요.”

아들의 옷깃을 잡으며 아버지가 사정하듯 애원한다,

“그럴 필요가 뭐있니, 이곳에서도 고기는 얼마든지 잡을 수 있어.”

아들이 대꾸한다,

“하지만 저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더 넓고 깊은 곳에서 마음껏 고기를 잡고 싶어요. 그러니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이젠 아버지가 결사적인 심정으로 목청을 높여 맞선다,

“ 야 이놈아, 그곳이 얼마나 험한지 알아? 깊은 바다는 아주 위험한 곳이야. 그곳엔 무서운 상어와 고래, 폭풍과 산더미 같은 파도가 넘실대며 으르렁거리는 곳이야. 잘못하면 순식간에 배와 목숨을 잃어버릴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러니 절대 않되! 절대 너를 그곳으로 보낼 수 없어!”

“이곳에서 나랑 너랑 오손도손 손 잡고 작고 낡은 배이긴 하지만 평생 함께 고기를 잡으며 살면 얼마나 좋으냐?”

아이들의 미래를 잡고 있다는 죄책감으로 쓴 자신의 단편 소설이라고 하며 어느 한 성도가 내게 내밀었다.

아주 많이 들어 본 단순한 스토리 같은데 이 안에는 아주 많은 교훈들이 들어 있음을 직감했다. 갑작스런 깨우침으로 가슴에 와 닿으며 나도 전혀 예외가 아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둘 째 딸을 어려서부터 매한대 대지 않고 키웠다. 눈치 빠르게 행동하는 그놈은 어려서부터 명석하여 예쁘고 귀엽기도 했지만 공부도 잘했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잘 따랐다.

그야말로 일류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여 좋은 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다.우리 부부의 머리 속에는 늘, 의사, 변호사, 약사, 과학자등 전문적인 것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부모의 바램대로 나아가길 염원하고 있었으며 우리들 곁에 머물러 있길 원했다.

우주공학도로서 우주과학의 길로 들어선 딸이 2년을 마치고 어느날 영문과로 전과를 하더니 졸업 후 보스톤에 있는미술대학원 예비코스가 있는 대학으로 훌쩍 떠나 버렸다. 3년 동안 미술을 전공한 딸은 뉴욕에 있는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뉴욕이라는 멀고, 넓고, 깊은 곳에서 인정받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알고 보니 고등학교에서 취미로 한 미술반의 미술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단다,

“너는 공부도 잘하지만, 내가 보기엔 미술에 소질이 많다. 이 길로 나가면 꼭 성공할꺼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부모로서 좀 쉽고 확실한 길을 바라고 있고, 우리 곁에 있는 바닷가에 머물러 주길 기대하고 있다. 서로가 외롭고 쓸쓸하지 않길 바라고 있다. 무서운 상어와, 고래, 폭풍을 만나지 않길 기도하고 있다.

딸의 미래를 잡지 않고 그가 원하던 대로, 그가 말하던 대로, 그가 가진 자질대로 나아갔다면 돌고 도는 낭비는 없었을텐데… 라는 죄책감으로 아주 최근에야 우리는 그녀가 아티스트라는 것을 인정하고 말았다.

2016-03-14 1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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