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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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으로 오랫만에 목욕탕엘 갔었다
작성자 zenilvana

목욕탕엘 갔었다는 것이 무슨 이야기꺼리가 되겠는가? 그런데 나에게는 그랬다. 몇일 전에 벼루고 벼루던 싸우나를 겸한 한국식 목욕을 하고 나니 감개가 무량하더군. 그 이유는 미국에서 공중목욕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전에도 말했지만 1972년 초에 미국으로 아예 이민서류륻 들고 이 땅에 살아온지 지금까지 44년 하고 몇개월이 지나고 있었지만 대중탕에 몸을 담가보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한 15년 전에 한국을 가보고는 재차 들를 이유가 없어서 지금까지 차일피일 하고 있다만, 그 전에는 20년 이상 매년 한번씩 방문했었다. 대략 2주 정도 어머니와 같이 생활하는 것으로 효자노릇(?)을 했지만 돌아가시고 나서는 거길 가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3번이나 미국에서 모시기로 노력했으나 뜻과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에는 영주권자로 했으나 본인이 몇개월 살아보다가 적응하지 못했다. 이래 저래 한국을 찾을 량이면 우선 밤과 낮이 바뀌어서 새벽 3-4시가 되면 더 이상 누워있을 수가 없어서 목욕탕을 찾는 것이 관례로 되었었다.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동네 목욕탕에 몸을 담그면서 내가 살아온 그곳의 정취랄까 하는 옛 기억을 되살리다 보면 드디어 고향에 온 기분이 들더군. 아무도 없는 탕안에, 그것도 신선하고 뜨끈뜨끈한, 몸을 담그던 그 시절이 그리워서 뉴저지에는 그런 시설이 없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2년 반전에 북가주로 이사와서 한국 그로서리를 찾던 중에 그 옆에 '싸우나 탕'의 간판이 보여서 일부러 가서 요금을 물어봤었다. 그곳의 젊은이가 $20불이란 말을 듣고 너무 비싸게 받는다는 인상을 받고 물러났었다. 그리고도 몇번 더 군침을 삼기는 경우가 있었지만 구태어 한국식의 목욕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에게 다짐하여 왔었다. 목욕 한번 하는데 $20불이라니...

그런데 한달 정도 전에 이곳 노인센타에서 어느 일본 할머니를 만났다. 처음이었는지 어설프게 구는 것을 보다 못해서 내가 나서서 이것 저것 설명해주는 성의를 보였다. 나는 그동안 소위 fitness室(실)을 즐겨왔는데 이 할머니에게 그것 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혜택을 senior Center에서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었다. 그리고는 두어 주동안 거길 가지 못했었는데, 다시 만나는 참에 자신을 소개하고는 그 싸우나시설의 쿠퐁을 주는 거라. 그것도 2장이나.

물론 고맙게 받았고, 그 다음에 만나서는 그곳의 lounge로 옮겨앉아서 그녀가 살아온 얘기며, 딸 자랑이며, 자신이 무슨 일을 했으며, 지금은 어디 사는데 半(반)에이커의 뒷마당에 온갓 과일나무가 있다는 얘기를 들려주는 거라. 나를 소개할 기회는 아랑곳없이 일사천리로 이런 자기의 과거와 자랑꺼리를 줏어 섬겼다. 가끔 내 가슴과 어깨를 치면서...

나이를 따지고 보니 나보다 한 살이 아래였는데, 일본에서는 제법 힘깨나 쓰는 상류층 출신이었다. 그런 여성이 18세에 월남청년과 결혼을 했다고...그는 월남이 한창 월맹의 공산세력과 싸우던 참에 일본으로 유학을 왔다가 어떻게 해서 이 '마사꼬'와 인연을 맺었는데, 부모나 주윗 친척의 만류를 무시하였다는 것이다.

미국에 와서는 불란서말 선생을 했었고, 3나라 말을 할 수 있어서 Duty Free 회사에 취직하여 평생을 일했고, 딸 둘을 의사로 만드는 뒷바라지를 했다고 자랑삼아 일러주었다. 그 큰딸의 남편도 꽤 잘 사는 사람이었는지 Lake Tahoe의 물가에 큰 집이 있고 모타보트도 있어서 가끔 거길 가서 손자 손녀를 돌봐준다나?

내가 어딜 갈 일이 있어서 돌아서려는 참에 그 월남 남편과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헤어지고 말았구먼. 다음 기회에 그 사연을 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내가 그 싸우나를 들어가보니 영낙없는 서울의 어느 목욕탕을 이곳 Santa Clara로 옮겨왔더군. 다를 것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어서 실망했지만, 인상에 남는 것은 의외로 미국 남자들이 많았다. 키가 장대같은 녀석 몇이 그것을 휘두르고 다녔고, 개중에는 흑인도 있었다. 그게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말해야 하겠지만, 미국땅의 한국식 목욕탕에 미국인들이 과반수를 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대낮이었는데, 대략 서너 時(시)에 탕 주위를 어정거리는 친구들은 줄잡아 10명이 채 않됐고, TV를 켜놓은 휴계실 안락의자에서 자는지 마는지 하는 친구들이 5-6명이 됐고, 마루바닥에서 자는 백인이 한명 보였고, 탁자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것도 보였다.

한국사람이라고는 80대 영감, 실은 사람들이 나를 영감으로 부르더라 마는, 이 양반은 진짜 영감 소리를 들어야 하겠더라구요. 다리에는 미꾸라지가 피부 속을 파고 들었는지, 소위 varicose veins란 흉칙한 다리핏줄을 하고 있었고, 한 60대 중년이 그 상태에 관심을 보이면서 건강상태를 묻고 있었다. 내가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탈이실에서 주섬주섬 할 적에 어떤 50대로 보이는 청년이 들어오더라. 한국사람이라고는 줄잡아 4-5명인데, 그런대로 영업이 되는 것 같이 보였다. 왜냐하면 수도꼭지나 기타 시설물이 꽤 낡아 보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정도를 받아야 할 근거로 이곳은 물이 귀하니 우선 더 받아야 할 것이고, 미국인들이 많다고는 하더라도 어찌 한국땅의 목욕탕과 같은 이용객을 기대할 수가 없으니 자연히 더 요금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계산이 서더군.

하여간에 그 비싼 목욕을 한번 더 해볼 쿠폰이 있으니 15년 만의 나들이로서는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나? 금년 가을에 한국을 가볼 생각이 많아서 만기가 된 여권을 갱신하고 기회를 보고 있는데... 한국 목욕탕이 요즘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할 '챈스'가 있다구. 뭐 크게 변한 것은 없지 않겠나 한다. 단지 짝달막한 체구에 별 볼일 없는 그것들을 촐랑거릴 것을 생각하면 미국 물건들을 다시 부러워하게 되지 않을까?

禪涅槃

2016-05-01 05: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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