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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똥누기 전하고 그 후와는 뭐가 다른가?
작성자 zenilvana

다른 게 전혀 없다. 단지 생리작용이 원하는 한 현상일 뿐. 나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하루에 한번 내지 두어번 이런 일을 치루고 산다. 왜냐? 물어보나 마나가 아니겠나. 들어간 것은 나와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기 때문이다. 물론 필요한 영양소를 걸러내었다. 그러면서 하루 하루를 산다.그 와중에 불편했던 속이 시원해졌지만 하룻밤 자고 나면 또다시 복통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반복된다.

그러면 정신적 자세, 흔히 철학이나 종교자세를 일컷는데 이것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서도 별반 큰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생겨먹은대로 살다가 어느날 역경에 봉착하여 새로운 인생항로를 찾아야 했다고 치자. 흔히 죽고 싶은 심정에 섰을때 똥누러가는 것 처럼 쭈구리고 앉았다 하자. 무슨 살 길이 없을까?

이러한 처지를 격는 일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 들 언젠가 이러한 경험을 하며 사는데 이런 입장에 처했을때 그 사람이 자신을 보면서 "내가 어째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잘 나갔었는데...," 뭐가 잘못 됐을까를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아하~ 바로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그게 뭐겠오?

사람은 같이 사는 동물이다. 그것의 집합을 공동체, 혹은 친구, 친척 또는 이웃, 나아가서 사회라 한다. 자기는 거기에 고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에 그 한 사람이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치자. 그 집합체의 모두가 다들 자기의 것만 챙기면 그 집합체가 건강하게 잘 돌아가겠오?

그래서 서로 돕고 살자..., 다시 말해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얘기가 나옵네다. 똥은 혼자서 누지만 공동체는 사랑의 논리로써 함께 그 영양분을 섭취해야 함으로 자기 혼자만 잘 살아보겠다고 날치는 데에서 그 한 사람이 곤혹을 당해서 불행한 인생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똥을 누고나서 시원한 경지를 경험하는데...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 아시오? "나는 새 사람이 됐다"고. 자기 만을 생각하던 버릇을 청산하고 남들을 다시 바로 보면서 돕고 살아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니까 세상이 새롭게 전개됐다는 겁니다.

흔히 말하기를 還生(환생)했다, 또는 새생명을 얻었다고... 앞의 것은 佛家(불가)에서 말하는 涅槃(열반)의 깨우침이고, 뒤의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再生(재생) 또는 reborn 이라는 거다. 그래서 머리를 깍고 중이 되고, 교회에 나가서 다투어 열심을 한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자기도 모르게 옛날의 자신으로 돌아가더군. 물론 본인은 모른다. 왜냐? 생각을 바꾸고 나니까 일이 잘 돌아가다 보니 구태어 새사람의 어려운 멍에 (yoke), 즉 남을 생각하고 산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옛날 방식으로 자신 만을 위하던 생각 내지 생활에 빠져드는 거라. 스님은 땡중이 되고 예수쟁이는 위선자로 불리게 된다.

나는 이러한 예를 너무나 많이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낙타가 바눌구멍에 들어갈 수가 없고, 낮은 문에는 인적이 드문 거라." 자기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인생은 짧은데 뭐 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짓을 버리겠는가"하는 똥누고 난 푸념을 하게되는 거라.

왜들 이래? 자기가 태어난 땅의 풍토와 그 환경에서 보고 배운 것은 오직 자기 앞만 쓰는 그런 전통에 쩔었던 바라 그 군더더기와 때를 하루 이틀에 다 제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들을 깊고 깊은 산 중으로 도피를 해야 하며 예수쟁이는 저희들 끼리만 눈가리고 사랑한다 아옹아옹... 이거 재미있는 풍경이 아닌가?

禪涅槃

2016-07-22 07:08:56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1   shanghai [ 2016-07-22 07:20:37 ] 

뭔가 조급함과 불편함에서...
시원한 쾌감으로 바뀌는 육체적 전이...
요고이 바로 윤회를 잠시 맛보는
고론 쾌감이 아늬것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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