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인문학-구름은 하늘에 그려진 기호학
하늘에 살면서도 샛강에 얼굴을 묻고 낙엽 진 가지 뒤서 기도하듯 머물지만 구름은 자기 말을 종이 위에 쓰지 않네
기호학은 인위적 언어와 기호들이 만들어낸 상징의 왕국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수많은 기호를 만들어낸다. 사회 심리, 정치, 역사, 경제, 종교, 문화, 예술 같은 현상들은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들을 언어로 표현하거나 기호로 소통을 한다. 기호학은 구체적으로 기호들이 사람의 감각과 상상력, 그리고 사람들이 유지하는 여러 네트워크의 눈높이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기호학을 이해하기 위해 전자현미경이 필요 없는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호들과 그 기호들의 작용을 관찰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기호의 가장 큰 능력은 사람들의 현실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기호들은 자연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기호를 통해 사람들이 현실을 창조하게 한다. 신화, 전설, 사회, 언어, 예술 같은 것들은 모두 기호를 이용해 인간이 만든 현실체라 할 수 있다. 고대로부터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호 가운데 가장 쉬웠던 현실체가 구름이었다. 구름은 매일 모양을 바꾸어 가면서 사람들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구름 세계를 통치하는 여신 프리그의 이야기가 있다. 구름 여신은 안개의 홀에서 바람이 짜놓은 금실을 이용해 물레와 실패로 분홍빛과 오렌지빛의 새털구름을 만든다. 그녀는 얼음 거인의 뇌를 여름 하늘로 올려 소나기구름을 만들기도 한다. 북유럽 신들은 구름을 소나기의 기회, 바람의 연, 비의 희망, 날씨의 힘, 비밀의 투구라는 기호로 표현했다. 신화는 사람들의 모듬살이의 꿈이라 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만났던 일들,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들의 모듬인 것이다. 그렇기에 신화는 기호학에서 실존하는 것보다 없는 것을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
서부 아프리카에 사막과 바위투성이 땅이 있다. 이곳에 사는 도곤족 사람들에게 구름은 그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을 공급해 주는 전능한 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구름의 기호는 우주의 생성과 진화, 통치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중국 사람들에게 구름은 평화의 기호로 그려진다. 구름은 음양의 합일로 만들어지기에 평화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천상의 구름들, 떠돌아다니는 이들의 수호 여신들이다. 그들에게서 지혜와 변증과 이성이 나온다.” 기원전 420년께 아리스토파네스가 했던 말이다. 철학자들에게는 구름이 지혜를 주는 원천이었는지 모른다.
일부 철학자와 신화들에서 구름을 다루기는 했지만 하늘의 구름은 빠르게 흐르는 데다 금세 사라지기에 많은 사람은 구름에 특별한 의미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구름에 이름을 붙여주고 기호로 만든 사람이 나타났다. 19세기 초 영국의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다. 약사였던 그는 수시로 변하는 구름의 모습에 반해버렸다. “공기의 대해(大海), 그 속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며, 번개가 만들어지고, 결실의 비가 응결한다. 이것은 자연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흥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수시로 변하는 구름의 오묘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더욱 깨닫게 된다”고 고백했다. 그는 평생 구름을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는 일을 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구름의 분류 및 이름은 거의 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털처럼 생긴 구름을 털구름, 큰 덩어리로 뭉쳐 있는 구름을 쌘구름, 층층이 있는 구름을 층구름이라고 이름 붙였다. 구름이 변하면서 두 가지 모양을 동시에 가질 때면 두 이름을 섞어 불렀다. 1803년 하워드가 자신의 구름 분류법을 발표하자 세상은 깜짝 놀랐다. 하늘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는 구름을 분류하고 이름을 붙인 그의 노력에 경탄했다.
오늘날 세계기상기구(WMO)는 높이에 따른 기준을 세우고 더 자세히 구분해 구름의 10가지 유형을 정해 사용하고 있다. 상층운과 중층운, 하층운, 그리고 수직으로 발달하는 구름 등이다. 상층운은 3가지로 구분된다. 털구름(권운)은 털실이나 좁은 띠 모양으로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비늘구름이라 불린다. 털층구름(권층운)은 흰색 천처럼 엷고 넓게 펼쳐진 구름으로 면사포구름이라고도 한다. 중층운에 있는 높쌘구름(고적운)은 양떼구름이라는 별명으로 보이는 구름이다. 높층구름(고층운)은 하늘 전체를 고루 덮고 있으며 무늬가 없는 경우가 많다. 비층구름(난층운)은 두껍고 어두운 회색 구름으로 비나 눈을 오게 하기 때문에 비구름이라고 불린다. 마지막으로 하층운에는 층쌘구름(층적운)이 있다. 엷은 판이 롤처럼 말린 모양으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구름이다. 층구름(층운)은 가장 낮은 구름으로 안개처럼 비 온 뒤 산에 걸려 있기에 안개구름이라고도 불린다. 수직으로 발달하는 구름 중에 쌘구름(적운)은 뭉게구름이라 불린다. 쌘비구름(적란운)은 눈 덮인 높은 산처럼 생겨 아랫부분이 어둡고 소나기를 동반하기 때문에 뇌우구름이라고도 불린다.
[TIP] 괴테·셸리 등 구름서 영감 詩 쏟아내
루크 하워드가 구름에 이름을 붙이자 그의 구름 명명은 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제 세상의 유혹에 몰려 내려오네/그것은 지구로 향하네. 천상으로 솟아올랐던 것이거늘/미친 천둥 구름 되어 위협할 때/사나운 더미들이 부서지고 평원에서 스러지네” (괴테의 시 ‘구름’ 중에서)
“나는 대지와 물의 딸이며/하늘의 소중한 것이다/나는 대양과 강가의 틈새를 지나 변하지만/죽음을 모른다…/ 나는 맵싸한 우박을 격하게 휘두르고/초록 평원을 보얗게 물들이네” (셸리의 시 ‘구름’ 중에서)
“불가사의한 이방인이여, 당신은 무엇을 사랑합니까?/나는 구름을 사랑해요…저기…저기…/저쪽으로 지나가는 구름을…저 신비로운 구름을!” (샤를 보들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