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도 부자가 될 수 있는가? 부자와 빈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깨끗한 부자의 기준은 또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깨끗한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왜 목사는 가난하게 살아야 하나? 지난 여러 해 동안 한국 교계에서 뜨겁게 논쟁을 일으켜 오고 있는 질문이다. 반응은 대체로 ‘부자가 될 수 있다’ 와 ‘부자가 될 수 없다’로 양극을 이루어 왔다. 양측의 주장은 흠 잡기 힘들만큼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보인다.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선교회)는 ‘깨끗한 부자’(규장, 2001)라는 저서를 통해 청부론의 기치를 올렸고, 김영봉 목사(전 워싱턴한인교회, 현 워싱턴사귐의 교회)는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IVP, 2007)라는 책을 통해 청빈론을 주장함으로써 청부론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양극적인 주장을 어느 정도 성경적 그리고 사회 윤리적 측면을 어울러서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양낙흥(고려신학대학원)교수는 ‘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IVP, 2012)를 통해 위의 두 저서를 객관적으로 비교분석, 청부론과 청빈론이 각각 극단적인 부분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균형을 잃었다는 결론을 맺으면서 나름의 대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양 교수의 입장도 ‘주관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청부론은 하나님이 주신 부 가운데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몫을 뺀 나머지는 자신의 몫으로 알고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소득의 첫 번째로 교회에 바치는 십일조 10%와 두 번째 구제금 13%를 제외한 87%는 자기 것이라는 논리다. 청부론은 부가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에 대한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양 교수는 억대를 받는 목사가 그것을 내 몫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라고 평한다.
반면 청빈론은 목사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금욕주의적인 경제론을 펼친다. 부는 형성과정에서 나쁜 영향을 줌으로 부에 대해 자신감을 느끼는 것은 자기 교만이며 복음의 정신과 반대된다. 청빈론은 돈이 악하지 않지만, 본질상 위험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양 교수는 가난을 의무화하고 미덕으로 여기는 주장은 하나님이 주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기대를 무시한, 비인간화하고 목석으로 만드는 철학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메릴랜드 엘리컷시티에 위치한 벧엘교회(백신종목사)는 지난 2~4일 김동호 목사를 주 강사로 전교인수양회를 가졌다. 김 목사는 강의의 많은 시간을 청부론인
‘깨끗한 부자’에 할애했다. 저녁식사시간 간담회 자리에서 김영봉 목사의 청빈론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그는 김영봉 목사의 청빈론도 일리가 있다고 말하면서 양쪽 입장의 모자라는 점들을 보완하면 좋은 영적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양 교수가 지적한 대로 청부론과 청빈론 가운데 극단적인 부분을 강조하기보다 말씀 속에서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점을 발굴, 새로운 연구를 통해 실제 경제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가이드라인의 로드맵을 만들 사람들은 바로 김동호 목사와 김영봉 목사라는 생각이 든다. ‘깨끗한 부자’와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이 두 권의 책이 햇빛을 본 이후 한국 교계, 특히 목회자 세계에서는 청부론과 청빈론이 아직도 뚜렷한 결실을 보지 못하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두 김 목사는 자신들의 이론적인 주장을 실제 목회생활을 통해 교인과 세상에 보여준 행위를 근거로 하고 있어서 더욱 공유점을 찾기 힘든 것 같다.
두 김 목사는 여러모로 한인목회자 세계에서 역발상의 주자들로 손꼽힌다. 김동호 목사는 올해 10월 65세로 담임목사를 은퇴하면서 원로목사취임과 이에 대한 사례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김영봉 목사는 10여 년 동안 목회했던 대형교회를 자진해서 사퇴하고 다음 달부터 개척교회나 다름없는 소형교회에서 새로운 목회를 시작하게 된다. 가까운 장래에 이 두목사가 만나 서로의 입장을 털어놓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란다. 그리하여 두 입장을 성경적 사회 윤리적 입장에서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저서를 공동으로 집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