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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얼빈의 저격
작성자 bibliatell

하얼빈의 저격

하얼빈(Harbin)은 중국 만주 땅 장춘 근처에 있는 도시다. 한때 러시아 밖에 있는 지역 중 가장 러시아인이 많이 살고 있던 지역이었으며 러일전쟁 때는 러시아의 군사작전 기지가 있었단다. 가 보지는 못했지만 사진들로 본 건물들을 통해서도 러시아풍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뤼순(여순)은 이태리반도처럼 서해로 튀어나온 곳에 위치한 중국 라오둥 반도 해안도시로 달리안 항과 아주 가까우며 북한과도 상당이 가까운 지역이다. 마치 작은 섬 끝에서 멀리 육지를 바라보는 느낌이 있다. 중국의 중요한 해군기지가 있으며 서구적 아름다움이 있는 해안 도시라 한다.

고구려가 망하지 않고 이 만주벌판을 지키면서 전체를 통일해 물려 주었더라면 지금쯤 세상을 호령하는 나라가 되어 있을지 모를 일이고, 그 위상과 기개가 하늘을 찌를지도 모를 일인데.

1904년월 대한제국 정부는 엄정 중립을 해외에 선포했지만 190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한 일본이 조선에 대한 침략을 노골화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대한제국으로 파견해 외교권의 박탈을 내용으로 하는 을사늑약 체결을 강행한다. 을사조약이라고도 불리는 이조약에 을사오적이 싸인한다. 학부대신 이완용,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조부대신 이근택, 농상대신 권중현. 힘이 없는고종이 도장을 찍진 않았지만 정부가 알아서 하라며 책임을 피한다. 을사오적들은 하나같이 을사조약만이 조선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변했다.

외교권을 일본에 강탈당한 대한제국의 고종은 헤이그로 이준을 특사로 파견해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으나 실패한다. 이후 의병활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며 뜻있는 사람들은 만주나 연해주로 망명해 독립에 힘쓴다. 우리가 잘 아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이 안중근 의사다.

1909년10월26일 오전 9시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상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회담을 하기 위해 중국 만주에 위치한 하얼빈(Harbin)역에 도착한다. 간단한 사열을 받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블라디보스톡에서 도착한 안중근은 달려나가며 권총을 발사했고 한 발이 명중하고 나머지 두 발은 복부를 관통하며 오전 10경에 현장에 있는 차 안에서 침착하게 코콥초프가 주는 브랜디를 마신 뒤 그의 품안에서 숨을 거둔다. 향년69세. 술이 취하면 나는 미녀의 무릅를 베고 쉬며 술이 깨면 나는 권력의 고삐를 힘차게 잡아 쥔다고 했던 이토 히로부미는 이렇게 갔다. 이토를 수행했던 세 사람들도 총을 맞고 부상을 당한다.

1910년 2월14일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는 3월26일 뤼순(여순)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됐고, 뤼순감옥 묘지 어딘가에 묻혔다는데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으며, 그의 유해를 발굴하지 못해 그립고 그리운 조국의 품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1904년 벌어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여 조선에 대한 정치, 군사, 경제권을 인정받아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1905년 조선을 방문한 이토 히로부미는 을사늑약을 체결한 뒤 그해12월 조선 초대 통감겸 주둔군의 통수권자로 부임한다.

1909년 조선통감직을 사임하고 일본으로 돌아간 이토는 다시 돌아와 조선의 국가 조직체계를 무너뜨리고 1910년 8월22일 한일합방조약으로 조선을 완전히 식민지화 한다. 이토는 조선의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이며 조선병탄을 주도한 인물이다. 한일합방은 경술년에 일어났다고 하여 경술국치로 표현되기도 하며 518년 이어온 조선왕조의 멸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36년간의 일제강점기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제가 2월14일로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다. 생각없이 사시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중국을 방문하여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돌아가셨다고 발언하는 바람에 수습하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는 얘기가 있다.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 안중근 의사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이렇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옆에 묻어 두었다가 나라를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천주교인이었던 안중근 의사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로부터 감옥에서 이런 마지막 편지를 받는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한 일에 딴맘 먹지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어느새 107년이 되었네. 120세 정도 되시는 분이 아직도 살고 계시다면 생생하시겠네.

2017-02-15 14:40:58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5   naesjic [ 2017-02-16 12:22:37 ] 

뉴라이트는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만들었습니다.
MB가 한일이 역사 왜곡입니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 했어야 하는 아쉬움을 항상 가지게 됩니다. 되돌릴수는 없지만...

4   ssangkall [ 2017-02-15 19:35:05 ] 

그때 천주교에서는 안중근의사를 살인자로 규정했었다지요?

3   bibliatell [ 2017-02-15 17:05:55 ] 

맞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의 역사가 와선 아니되는. 정신줄 놓아선 않되겠죠.

2   dakshang [ 2017-02-15 16:20:31 ] 

민족의 원흉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사건으로 하얼빈 일대의 한인 상가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한인(조선인)들이 무참히 살해 당하였으며 독립운동도 한동안 숨죽여 지내야 했던 고난의 역사...

1   deborah9 [ 2017-02-15 15:06:43 ] 

bibliatell, Thanks for beautiful, wonderful story. The greatest fine mother, and the greatest fine son! I am so proud that they th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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