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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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6:플라스틱 푸대와 폴리에스타 原絲(원사)
작성자 zenilvana

김응초란 사람은 본사의 무역 담당 상무의 직책을 가진 나의 직속 상관이었다. 그가 어떤 사명을 갖고 내가 호주 지사를 세우는 과정에서 나타났는지 나는 알수 없었다.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일하는 성격이나 그의 과거가 그와 함께 여행길에 오르면서 서서히 그 윤곽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주위의 사람을 관용으로 감싸주며 도와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기회만 있으면 꼬집고 꼬웃음 첬다. 30대의 국제촌놈이 이제 처음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여러가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해해 주고 격려해 주기는 커녕, 나의 자존심과 위신을 극의 상황까지 깍아 내려야 했다. 6-25 사변통에 서울고를 졸업했다는 선배로서, 소위 "봐준다는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드니의 어떤 식당에서 나는 이윽고 상관이고 뭐고 다 집어치고 큰소리로 반박하며 대들었다. 그는 나를 형편없이 몰아세워서 자기 앞에 굴복시키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나를 노예로 만들고 또 그 노예심리를 이용하면 자기가 원하는 무슨 목적이든지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모양이었다.

나를 잘못 봤지! 선경의 지사를 세우는 명목으로 나를 길잡이 해야 했던 그가, 회사를 속이고 별도의 장사꺼리를 찾아내라고 온갓 압력을 가했다. 실은 지사설립은 뒷전이고 자기 회사를 위하여 여기저기 나를 끌고 다녔다. 그는 선경에 상무로 왔음에도 아직도 자기 사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물론 내 지사설립의 돈으로... 한번은 비행기 안에서 젊은 여성의 사진을 꺼내보이며 자기 애인이라고 자랑했다. 그저 그렇고 그랬다. 아니, 여자보는 눈이 그 정도인가 의심스러운 몰골이더군.

그러면서도 일요일만 되면 성당을 찾아나서는 착실한 신앙인이었다. 남 속이는 일에 두뇌를 돌렸고, 전혀 양심의 가책이 되지 않았다. 기독교 신앙은 제처놓고 사업가로서의 최태원이든 이재용이와 별 차이가 없다는 말씀. 사리사욕 채우다 들통이 났어도... 나는 모른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뭐 어쩌구. 그런데 애비의 60억불이 8兆로 둔갑한 것이 사죄로써 끝날 것인가?

김상무가 나를 놔두고 귀국한 뒤에도 사사건건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고민하던 끝에 우리 진흥공사의 선배한테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서울고등을 타교생으로 1등 입학했던 선배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김상무가 샘풀을 놓고 가면서 비지니스를 해달랬는데, 혹시 그게 문제가 되는게 아닙니까?"

아뿔싸! 내 입에서 이런 탄성이 나갔다.

"그런 거 같읍니다."

"바로 그거요!...아직도 몰랐오? 무슨 액숀을 했소?"

사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렇게 할 용돈도 없었고, 의욕도 없었고, 또 해서는 않됐다.

그러나 그 일거리는 마련 못했지만, 나의 일을 찾아내야 했다. 어느날 아침에 시드니의 영짜 일간지에서, "뱅를라데쉬"에서 '큰 홍수가 나서 호주의 양모업자들이 양털을 담는 "베일" (큰 마다리 자루)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할까봐 큰 우려를 하고 있다' 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예전에 내 동창생하고 불광동에서 이웃하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어느날 그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요새 풀리스틱 끈이 새로 나왔는데, 이것은 가로로 잘 찟기지만 세로로는 아주 강하고 질기다. 노끈대신 이걸 시장에서 많이 쓰기 시작했는데 혹시 무슨 다른 용도가 없을까? " 하고 물었었다. 그 후에 궁리를 하다가 별 신통한 것이 없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군엘 갔더니 나에게 모래짐을 지워서 높은 산에 올려서 참호를 쌓게 했는데, 그 모래주머니가 바로 풀라스틱 끈으로 짠 천인 것을 알아보고, 내 친구가 내게 물었던 답을 그곳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그 10여년 후에 시드니에서 양모의 마다리를 읽는 순간..., "그 풀라스틱으로 짠 모래주머니를 '베일'로 대체하면 큰 돈벌이가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본사로 이 생각을 급히 타전해서 보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아무 기별이 없었다. 이 양모를 싸넣는 "베일"로 말하면, 호주의 가장 큰 생산품인 양털을 담아야 하는 필수품이었다. 그 소요량이 천문학적 숫자임을 설명했는데도, 이 맹꽁이들은 이 정보를 돈으로 바꾸려 하지않았다. 아니, 일하기 귀찮아 했다. 위에서 시키지 않는 일을 왜 하냐는 거다. 이것 또한 한국이 골병드는 원흉이다. 창의력이 비비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다. 오직 서류에 도장찍으며 빙신이 되는 중간 관리자 또는 관료들이 돼있고 또 이런 짓들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는 제 할 말을 남에게 부탁할 정도다.

"이또쯔" 사람들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술이 거나했던 나는, 이 "아이디어"를 불만 쪼로 떠들어 댔었다. 귀국한 후의 어느날, 그 풀라스틱 장사에 미련이 있었던 나는, 윗사람인 유부장을 억지로 끌고 마침내 그 만드는 회사를 찾아갔다.

그 사장이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몇달 전부터 일본 사람들을 통하여 호주에 이미 수출하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다봤다. 물론 '이또쯔'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 자루를 수출해서 떼 돈을 벌었다는 말을 처남한테서 이민온 후에 들었다. 그 유부장이란 훌륭한 사업가(?)는 경기고, 서울법대, 무역진흥공사 부장으로 출세한 사람이고, 내가 그만둔 후에 선경산업의 사장이 되었던 인물이다.

일본사람들 한테 그런 정보는 돈으로 바로 직결된다. 그들의 호주지점이 그것을 판정하고 상품화 하는 것이 아니다. 돈줄이 된다고 판단되면 무조건 본사로 그 정보를 텔렉스한다. 본사는 검토한 후에 한국지사로 그 생산의 가능성을 알아본다. 여기서 채산성이 있다고 확인되면 바로 호주의 양모생산 업자에게 견본과 가격을 제시한다.

값이 맞으면 주문을 받아서 한국지사에게 생산을 명령하고 하나의 무역행위를 성사시킨다. 그리고 큰 돈을 끌어들인다. 모든 무역 거래가 이처럼 자동화되어서 상업의 정보는 이같이 값어치가 대단하다. 아무리 하잘것 없게 보여도, 수시로 이런 정보를 본사로 보낸다. 이것이 그들의 업무다. 내가 이런 과정을 미리 알았었더라면, 섣불리 발설해서는 않됐던 것이다. 그래 봤자지만...

또 어느날 신문의 경제난을 읽으니, 영국과 일본이 호주시장에서 "폴리에스터"원사의 독점권 문제를 놓고 법정에서 싸우고 있었다. 나에게 관심을 끄는 기사였다. 우리 회사가 그 원사를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조사해봤다.

호주 정부는 영국의 "임페리알 케미칼" 의 기득권을 인정하여, 일본의 원사를 덤핑이란 명목으로 수입을 금지시키고 있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입을 제한하는 상품은 "일본제 원사"였다. 그렇게 세관 법조문에 명시돼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제는 덤핑에 걸리지 않는다고 나는 판단했다.

나는 즉각 이 세관 서류상에 기록된 "금지하는 일본제"가 아닌, 우리 선경-테이진의 원사를 한국의 것으로써 호주 시장에 팔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사로 보고했다. 김응초 상무가 자기가 찾아낸 정보인양 표면에 나서서, 결국 "니쇼 이와이"를 통해서 한국의 "폴리에스터" 원사가 역사상 처음으로 호주에 수출되게 되었다.

거래양은 20만불의 작은 것이었지만, 시작이니 만치 크고 작은 것을 논할 바가 못됐다. 단지 호주나 영국이 한국에서도 이런 원사가 생산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때, 그들 법규정의 맹점을 잘 이용하여 성사시킨 무역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또 나의 자랑거리였다. 한데 어느 누구도 나를 들어 칭찬한 사람은 없었다.

종합무역상사란 무었이었나? 세계시장에 나가 무슨 상품이든지 돈벌이가 되는 것이면 이를 성사시켜서 100억불의 수출을 달성하는 전초지라야 했다. 직물 쪼가리나 던져놓고 빈털털이 초년생 지사원을 등처먹으려는 국제 장돌뱅이여서는 말이 않되지 않겠는가?

우리 회사가 직물 원단과 봉제품을 가지고 그곳에서 수출의 성과를, 그것도 일본사람들 등에 업혀서, 100억불 목표의 큰 기여를 한다고 해서 독점권만 따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무슨 기회든지 수출할 것이 있으면 일본사람들 처럼 다방면으로 뛰었어야 명실공히 "종합"이란 명칭다운 무역회사가 되지 않겠는가? 당시 민충식 대사가 이 골빈 선배님(?)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그나마 수출성과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다른 업자들도 그 시장에서 활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폭넓은 전망을 꿈꾸는 야망의 기업가는 거기 윗자리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눈앞의 자기 이익에만 연연하거나, 눈치나 보며 무사안일...높은 자리만 탐내고 않아있는, 그런 월급쟁이들 뿐이었다. 내가 어째서 이민을 결행해야 했던 가에 뭔가 감이 좀 갑니까? 어떤 미친넘들이 내가 사기치고 미국으로 도망왔다고 하더군. 지들이 그렇게 왔으니 다들 다들 그런다고 넘겨집는 모양인데...그게 아니예요? Stupid Dudes

禪涅槃

2017-02-21 09: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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