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쯤 되면 최종현 부사장이 우리들 사무실에 나타나서 좌우를 살피며 한바퀴 돌아보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그가 대연각삘딩 어디에 그의 사무실이 있었는지 모른다. 웃으개 소리로 "뒤늦게 곰탕 한그릇에, 낮잠 잘 자고 이제 나타난다"라고 우리들이 웃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형님인 최종건회장 만큼 키가 큰데도 전혀 커보이지 않았다. 좀 뚱뚱한 편이라서 그랬는지.
우리들은 이때 쯤 되면 배도 슬슬 곺아지고 지쳐있는데, 오직 부사장만은 당당하게 우리들 사이를 누비면서 돌아다니는 거라. 자기가 원기가 왕성했던, 걸음을 재촉했던 우리가 문제삼을 이유는 없다. 단지 석양이 져가면서 집에 가고 싶을 때인 6시경이면 아래-윗층의 전 회사사원들을 소강당으로 소집하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우르르... 몰려서 그 곳에 들어갈 양이면, 최 부사장이 중앙에 그리고 전체 중역들과 부장들이 그의 좌우로 펼쳐 앉아서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직원들 모두가 자리를 잡는 모습을 물끄럼이 바라보다가 하는 말이 이랬다.
회사에 건의할 사항이나 개선할 것이 있으면 얘기하라는 거다. 문론 어느 누구도 나서서 얘기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 한국 사람들이 해온 전통이 아니었더냐? 나중에 뒤에서 뭐를 수근거리더라도. 한국인들의 관례를 깨고 중역진과 회사원들이 허심탄회하게 서로 상의한다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미국의 최신식 경영방침이란 얘긴데, 최 부사장이 그걸 막 시도하려는 참이었다.
시간이 흘러갔다. 아랑곳없이 아무도 먼저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기다리다 지칠 지경이었다. 이래 가지고는 의도하는 회의가 진행될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 같다. 둘러보던 중에 나와 눈이 마주치자 최 부사장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 그리고는 의견을 말하라는 거다. 그 짓을 하다가 첫 직장에서 도중하차 한 사람이 나였는데 철이 덜들었다는 건지 내 머리 속에선 할 말이 급히 돌아가고 있었다. ”말하라는데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주저없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이 회사의 발전을 원합니다. 하지만 일하는 데는 필요한 장비가 있어야 합니다. 농부가 밭을 갈려면 쟁기가 있어야 일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들 한테는 타자기 조차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무역부에는 3 대의 타자기가 있는데 주로 수입과에서 통관서류 작성에 쓰이고, 우리 수출부는 필사로 영문을 써가지고 타자기가 쉬는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무역의 통신은 시간을 다툼니다. 무역을 한다면서 어떻게 전 무역부에 타자기가 3 대 밖에 없다는 겁니까? 이해가 않됩니다. 우리 수출부에 더 많은 타자기를 사주십시오. 여기 중역분들이 계시지만, 중역분들의 하룻저녁 술값 밖에 안되는 경비를 가지고 왜 이런 데를 소홀히 하시는지 모르겠읍니다."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최 부사장이 그럴듯 하다는 듯... 중역들을 좌우로 둘러 보았다.
한데, 윗 사람들이 정색을 하고 나를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내가 못할 소리를 내가 내뱉었던 것이 분명했다. "하룻저녁 술값"이란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었다. 하지만 이미 쏟아진 물동이가 되고 말았다. 다시 주워담을 수가 없는...
나는 '그게 사실이 아니냐'... 속으로 되뇌이면서 더욱 곧추 앉아서 분위를 살폈다. 지금까지 꿀먹은 벙어리들이 질세라, 하나 둘씩 한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아까까지는 아무리 발언해라 재촉했어도 입을 다물고 두리번 거리던 사람들이었다. 이런 불만스런 건의가 한동안 진행되며 시간이 꽤 흘러가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중역들이 결국 술값을 아껴서 타자기를 사주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물가에 가서 숭늉을 달랬어야 했지를. 사실 타자기를 사서 안겨주었다 손치더라도 어느 누구 하나 영문타자를 칠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생각 못했던 거다. 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일 뿐만아니라 영문의 글을 쓸 줄도 몰랐다. 타자기에 들어갈 돈이 혹 있었으면 술값에 먼저 써야 함이 당연했겠지비.
이런 식으로 무역회사를 운영한다면서 대학출신의 많은 사원들을 뽑아 놓고서는 평사원에서 부터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상무, 전무가 층층히 뒷자리에 버티고 앉아 있다. 수출과의 직원들은 영문편지를 연필의 필사로 끄저그리면 도장이 하나 둘씩 찍히면서 위로 올라갔다. 마치 하늘의 줄사다리를 타고 천사들이 오르내렸던 '야곱'의 환상과 비슷한 데가 있다고나 할까?
마지막 도장이 거기에 찍히는 것을 여사원이 뒤늦게 확인하고, 타자를 처서 다시 아래로 나 같은 말단에게 돌아왔다. 그것이 몇일이나 걸렸다. 그리고 이것에 여사원이 우표를 붙여서 총무부의 다른 직원에게 우체통에 집어넣게 했다.
What a waste with time, money, manpower and profit! They did care for the form of so-called a organization, but not the contents of productivity. The same thinking maybe be still prevailing in Korean communities, big and small, I am afraid. Isn't this irony in an electronic era we live in these days?
영문편지 쓴 사람은 바로 난데..., 나를 중견사원이라고 뽑아 놓아놨는데.., 최하 말단에 앉혀 놓고는 한달 생활이 않되는 월급을 지급하며...,회사의 발전을 말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실은 회사일로 말한다면, 나 한 사람이 혼자서 다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내 위에 앉은 다섯 사람들은 무위도식하며 많은 월급에다 하품이나 하며 나같은 능력있는 직원을 수탈하던 시절이었다. 영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않됐으며 응분의 대우를 충분히 했어야 했고, 그런 이유로 중견사원을 모집했었던 것이 아니던가?
그러면 무식한 늙은 넘들을 왜 회사에 고용하는가? 대외체면이다. 그 넘의 체면... 대기업의 형식을 갖추려면 이런 층층이가 절대로 필요했다. 많은 '노털'들이 자리를 메꾸고 있어야만이 회사의 꼴을 유지한다는 고루한 생각들...우리 회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한국의 어느 회사를 가봐도 다 매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어떨런지...? 물으나 마나다. '삼성을 재발명하라'고 이미 외국인들이 밝혔던 바다.
어쨋거나, 나는 남대문 시장에 가서 조그마한 중고 영문타자기를 하나 사고 말았다. 나혼자 쓰면서 일이 끝날 때 설합 속에 감추어 넣거 늦은 방에 집으로 나섰다. 훗날 내가 그 회사를 그만 둘때에 그 타자기를 탐내는 사람이 있어서 본전 보다 더 비싸게 팔아 먹었다. 그가 영문타자를 처서가 아니다.무역하는 사람이면 있어야 할 하나의 ‘상징품’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동안 내가 하던 모습이 매우 그럴듯 했겠지비. 또다시 체면의 문제다.
이런 식으로 배고푸고 집생각 날때의 어느날, 또다시 집합의 명령이 떨어졌다. 또 내가 일어나서 불평(?)을 하는 식으로 회의가 끝났다. 다들 몰려 나오는데 등뒤에서 내 이름을 불러서 "아무개 났네... 아무개 잘났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다 보니 같이 입사한 국내영업부의 김정강이가 군중 속에 섞여서 나를 빈정대고 있었다. 나는 곧 모멸감을 느꼈다. 모두들 진저리가 나는 판에, 다른 사람들에게 악감정을 가지도록 선동하는 것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모든 사람들의 고달품이 전부 나한테 있는 것처럼 떠드니 하는 말이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서 이런다면 인신공격이 아닌가?
"멍석을 깔아놓고 놀라고 하면 놀지 않다가는, 남들이 막상 잘 노는 것 같으면 밸이 꼴리는" 이런 골비고 얼띤 놈들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그 자는 서울에서 알아주는 XX大學를 나왔었는데, 그 대학교의 훈육주임이었던 것처럼 이 날에 행세했었다. 기독교 재단의 유명 대학교였는데 風水(풍수)가 않좋았었던지, 그 학교 출신한테 내가 여러번 여기저기서 당했기에 하는 말이다. 이런 짓을 해대면서도 조금도 챙피한 줄을 모르니, 이런 무리들을 내가 더욱 한심하게 여길 수 밖에.
나는 그가 비열하다고 느꼈다. "그래... 좋았어! 그렇게 나를 난처하게 할양이면 정정당당히 내 앞에서 해봐라" 하고 바깥으로 나오면서 벼뤘다. 다들 흩어진 얼마후에 그가 나타나자 나는 그의 멱살을 걸머쥐고 골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또 다른 입사동기가 중간으로 끼어들면서 한사코 우리를 떼어놨다.
이래 가지고는 일대일이 않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우리 셋이 다 불광동 뻐쓰를 탄다는 사실이 생각이 들자, "너, 갈현동에 살지!... 너희 집 근처 공터에서 한번 붙자! 임마! 이 쪼다야. 넌 챙피하지도 않냐? 남이나 선동할게 아니라, 너도 남자 새끼면 남아답게 당당하게 굴어봐라. 오늘 밤에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한번 해보자" 그렇게 말하고, 갈현동 뻐쓰를 탔다. 또 다른 친구가 다시 중간에 끼어 앉고, 시내를 빠져 나와서 그 우리 동네 방면으로 뻐스가 달려갔다. 나는 말없이 이를 악물고 앞으로 전개될 결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상상하면서 창밖을 내다 보고 달렸다.
홍제동 고개를 넘어서자 그 친구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것이 곁눈으로 보였다. 불광동에 내려할 내 정류장에 이르자 우리를 말리려던 친구가 뻐스를 뛰어 내리면서 "잘들 해봐라"란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살아졌다. 실은 나도 그 곳에서 내려야 했었다. 그럼에도 계속 그냥 앉아 있었다. 드디어 김정강이가 내 굳은 결의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머뭇거리며 사과를 청해 왔다. 한 정거장 더 가서 나도 결국 내리고 말았다.
내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런 者들이 끊임이 내 앞에 어른거렸다. 거듭거듭 내 심지에 불을 붙히며 도전하여 왔다. 이 늙어지 이 날에도...아이구! 맙소사, 당하고 살아온 역전의 용사인 내가 그런 구질구질한 인간들을 더 아니 볼 날이 언제가 될것인지?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