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꿈을 꾼다. 없는 날도 있지만 나에게는 꿈이 많다. 어떤 때는 밤새도록 꿈만 꾸다가 깨어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이다. 그러나 실상은 의식이 들락날락하는 새벽녘에, 소위 꿈인가 생시인가가 분명하지 않을 때에 꿈이란 것이 나타난다고 본다.
오늘 아침에도 예외가 없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한다고 누가 하길래, 'Why not'하고는 어디론가로 갔더니 수천명의 관중이 운집한 야외집회장이 나서는 거라. 로마의 colloseum이나 미국식의 amphitheatre같은 곳이었다. 주최자가 나를 찾는데, 나는 겁에 질려서 거기를 빙빙 맴돌다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막상 단상으로 옮겨갔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봤다. 우스갯 소리를 해서 우선 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하겠는데... 무슨 화제가 좋을까... 왜 이리도 할 얘기가 얼른 생각나지 않는가... 고민하다가 결국 잠을 깨고 말았다. 새벽 3시경이었다. 더 누워 있다가 3시 45분 경에 마침내 아렛층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조금 전에, 내 처도 6시 좀 넘어서 아래 kitchen으로 내려와서 내게 꿈얘기를 시작했다. 이 사람은 별로 꿈을 꾸지 않는다는 말을 가끔 해왔었으나, 오늘 아침은 달랐다. 자기가 새벽에 꿈을 꾸었더니, 자기 빨래를 남에게 맡기려고 한자루를 들고 세탁소를 찾았단다. 거기 그 많은 것들 중에서 자기의 것만을 골라내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했다. 이를 알아내고자 애쓰다가 잠을 깼다고...
유명한 '후로이드'의 "꿈의 분석"이란 책에서 이런 저런 이론을 설명하더 마는, 한마디로 사람들의 정신세계에는 본능적인 영역과 이성적인 현실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定說(정설)로 되어있다. 인간은 동물처럼 생겨먹은 대로 自由(자유)를 위주로 하면 그 공동체에서 마찰을 일으킴으로 인하여, 전체와의 共存(공존)을 위하여는 누구나 공동체의 도덕이나 규율을 지켜야 한다. 따라서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내 妻(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다. 그것도 영문서적을 읽고 또 읽고, 그것도 같은 것을 끊임없이 多讀(다독)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겨우 한두번으로 끝내기 때문에 무슨 화제가 오르면 나는 집사람에게 늘 설교를 듣는 형편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이런 책벌레가 나에게 늘 질문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내게 묻느냐고 하면, 자기가 질문한 것의 거의 전부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나? 나는 즉흥적이고 집사람은 고지식하다.
오늘 새벽의 꿈에서 나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를 골똘이 생각하다가 결국 잠을 노치는 결과를 가져왔었고, 내 처는 자기가 읽은 것을 어떻게 잘 정리할까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따라서 나는 글을 쓰면서 살고, 집사람은 남이 써놓은 것을 읽고 산다. 뭐가 다른가?
남이 해놓은 것에 너무 집착하다가 보면 자기의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남의 것을 슬쩍슬쩍 참고하다가 보면 자연히 제가 뭔가를 생각해내야 하는거라. 다시 말하자면, 나는 자기 밭에서 농사를 지어서 그 채소로 한 접시를 요리한다고 한다면, 내 처는 남의 요리를 맛보고 기억해서 좋은 메뉴를 만들어간다고나 할까?
어디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떤 새로운 과제로 새로운 글을 쓸건가로 밤잠을 설치는데, 어떤 분은 남이 써놓은 것을 옮겨오던가, 아니면 이미 올라와 있는 글들에 대해서 이렇쿵 저렇쿵 비판하고 설명하고 해석하고, 자기 나름으로 더 훌륭한 것을 보강한다는 쪼인데... 부족하지만 뭔가를 창조해내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가, 아니면 여기저기 뒤져서 더 완벽한 어떤 것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물론 꿈은 꿈이다. 그것이 값진 것이냐 아니면, 개꿈이라도 좋은가를 물을 수 있다. 이것이 결국 미국의 가치관이냐 한국의 교육관이냐의 차이에 귀결한다. 옛날에는 중국의 것이면 무조건 좋았다. 중국사람들이 옛것 만을 숭상하다가 보니, 화약과 종이와 인쇄술에, 정화(Zheng Ha)제독의 해양술, 등등의 창조물을 서양사람들에 양보하고 말았고, 조선은 洋擾(양요)를 치루면서 까지 事大主義(사대주의)의 쇄국정책을 고집했었다. 서양사람들은 뭣이든지 새로운 창조를 더 높이 샀고, 그것을 교육의 근간으로 섬겼던 결과로 오늘날의 세계적 패자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남의 것이나 흉내내고 잘난척 해서야 쓰것오이까?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냅시다, 우리.
참고:
Zheng He (1371–1433), formerly romanized as Cheng Ho and also known as Ma Sanbao and Hajji Mahmud Shamsuddin, was a Muslim Hui-Chinese mariner, explorer, diplomat and fleet admiral, who commanded voyages to Southeast Asia, South Asia, the Middle East, Somalia and the Swahili coast, collectively referred to as the "Voyages of Zheng He" from 1405 to 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