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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들의 싸움
작성자 bibliatell

우리들의 싸움

견원지간. 원래는 개와 원숭이 사이를 일컫는 말이지만 개와 고양 사이도 이와 못지 않다.

“우리들의 이야기”란 블로그에서 옮겨 본다.

옛날 어느 바닷가에 늙은 부부가 고기를 잡아 생계를 잇고 있었다. 어느 날 노인이 큰 고기를 잡게 되었는데, 고기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가엾어서 놓아주었다. 다음날 노인이 바다에 가니, 한 소년이 나타나 용왕의 아들이라고 하며 노인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를 용궁으로 초대하였다. 용왕의 융숭한 대접을 받고 보배 구슬을 하나 얻어 돌아온 뒤, 노인 부부는 큰 부자가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강 건너 이웃 마을 노파가 속임수를 써서 구슬을 가져가 노인의 집은 다시 가난해졌다. 그 집에서 기르던 개와 고양이는 주인의 은혜를 갚고자 이웃 마을 노파의 집으로 헤엄쳐 가 노파의 집 쥐의 왕을 위협하여 구슬을 되찾게 되었다.

돌아오던 중, 강을 거널 때 개는 헤엄을 치고 고양이는 구슬을 물고 개 등에 올라타 있었는데, 개가 구슬을 잘 간수하고 있느냐고 자꾸 묻는 바람에 고양이는 대답하다가 구슬을 강에 빠뜨렸다. 그 책임으로 서로 다투다가 개는 집으로 갔지만 면목이 없어진 고양이는 강가에서 헤메다가 그때 마침 낙시꾼이 큰 고기 한마리를 잡아 올리는 것을 보고 살금살금 기어가서 그 물고기를 훔쳐왔다.

고양이가 훔친 고기를 먹던 중 물고기 배속에 구슬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이 자기가 빠뜨린 구슬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물고 집으로 왔다. 주인은 고양이가 구슬을 물고 오자 반가워서 고양이를 칭찬하고 개는 밖으로 내 쫒아 버렸다.

주인에게 쫓겨난 개는 모든 것이 고양이 탓이라고 하며 이후로 고양이만 보면 잡아 먹으려 했다. 그래서 개와 고양이 사이를 견원지간이라 했다고 한다.

이솝의 우화 같은 이야기지만 자세히 보면 개나 고양이나 잘한게 없다. 마음을 합쳐 주인한테 진 은혜를 갚으려고 구슬을 훔친 것까진 좋았으나 개나 고양이나 생각이 짧았다. 이후로 다시는 마음을 합치지 못하고 서로 할퀴고 싸우는 견원지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의식의 변화, 발상의 전환, 이념의 탈바꿈, 이런 것들은 나이가 들 수록 쉽지 않은 것 같다. 공부가 필요한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손을 놓게 되고 이미 고착된 것만으로 생각하고 규정지어 버린다. 나는 이영희의 연구집들은 물론 그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 “대화” 이런 책들을 좋아해서 여러 번 읽었다. 과거 운동권에 있던 사람들에겐 교과서처럼 필독서라고 했지만 나는 나이들어 최근에야 읽었다. 소위 민주화 운동, 운동권, 좌파의 논리, 이런 것들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공부하기 위해 읽었다. 그러면서 진작 읽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하고, 다른 나라들은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발빠르게 전환하고 있었는데 우리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 우물 안에 갇혀 주는 대로 먹고, 가르치는 대로 공부하고, 들려주는 대로 들으며 우물 안 세상이 다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그때 굳어진 의식, 발상, 이념, 고정관념들은 우리들 안에 화석으로 고착되어 지금도 우리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에 빨갱이들이 많다고 하면 많은 줄 믿게하고, 종북이라 하면 종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종북을 외치게 한다. 좌파라 하면 좌파가 무엇인지 왜 좌파가 존재하는지, 그 필요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적으로 존재하지 말아야 할 이념이나 무리들 쯤으로 매도한다.

성경,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선교여행 중 에베소라는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자 거대한 다이아나 신전 주위에서 은 성물함을 만들어 파는 은 세공업자들이 바울을 잡아 지금도 그 터가 남아 있는 유명한 에베소 옥회극장겸 경기장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기득권을 가진 자기들의 비지네스에 커다란 손해가 올 것을 예상한 그들의 반발이었다. 2만명 가량 들어가는 곳에 은 세공업자들의 주장을 따라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면서 에베소 시민들이 몰려 들어가 “위대하시도다, 에베소 사람들의 다이아나여!” 를 두 시간 가량 외친다. 이런저런 외침을 하다 보니 자기들이 무슨 이유로 외치고 있는지 몰랐다. 결국 이들은 다음을 기약하고 뿔뿔히 흩어진다. 소동이 그치자 바울은 극장을 나와 다른 곳으로 간다.

경제적으로 먹고살긴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우리들의 의식, 발상, 이념, 관념들은 수십 년 전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더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고 우리들의 지적 의식 수준을 향상시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중고등 교육만 받은 사람이나 소위 일류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같은 현상을 보이는 것은 모두가 동일한 우물 안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7-03-20 13:37:41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4   naesjic [ 2017-03-21 21:08:27 ] 

원글자님의 좋은 글에 공감합니다.

3   naesjic [ 2017-03-21 21:06:24 ] 

시대를 읽는 사람은 시대를 이끌어 가지요.
그러나 소수만이 그러한 능력이 있나 봅니다.
세상이 바뀌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 같으나
순간이기도 합니다.
한국민들이 시사에 정치에 이리 열광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도 마찬가지...
박통과 세월호가 아니였다면
저도 한국 정치에 관심이 없었을 겁니다.
지금의 상황은 대한민국이 한발짝 발전하기 위한
아픔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발전입니다.

2   dakshang [ 2017-03-20 16:38:10 ] 

이 세상의 시작이 어디며 어디가 끝인가? 아는 사람만이 아는 이야기.

1   zenilvana [ 2017-03-20 14:53:14 ] 

맘에 드는 글이다.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로고. 헌데 色을 色이라 고집하고, 空을 空이라 하니 늘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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