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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본인의 열등감 - 그 뿌리깊은 근원
작성자 rainbows79

요약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문명을 발달시킨 황하,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이집트 등 4개의 문명을 지칭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 이집트문명, 황하문명을 말한다. 4대 문명의 발생지들은 모두 큰 강을 끼고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이 기후가 온화하고 기름진 토지를 지닌 지역들이다. 특히 황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강, 나일강 등 이들 지역이 4대 강을 끼고 있어 기후ㆍ교통ㆍ토지 등 고대 농업 발달에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문명 발생의 근거가 되고 있다.

BC 6500년경 농경, 목축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문명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두 강 유역에서 발달하였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비옥한 반달 모양의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영하였다. 바빌로니아ㆍ아시리아 문명을 가리키나 넓게는 서남아시아 전체의 고대 문명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지리적 요건 때문에 외부와의 교섭이 빈번하여 정치ㆍ문화적 색채가 복잡하였다. 폐쇄적인 이집트 문명과는 달리 두 강 유역은 항상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전개된 문화는 개방적, 능동적이었다.

인더스문명은 BC 3000년 중엽부터 약 1000년 동안 인더스강 유역에서 청동기를 바탕으로 번영한 고대 문명이다. 대표적 유적은 당시의 2대 도시였던 하라파와 모헨조다로인데, 최초로 고고학적 조사를 받았던 하라파 유적의 이름을 따서 고고학적으로는 하라파 문화라고 부른다.

BC 3000년경의 이집트문명은 나일강 하류의 비옥한 토지에서 이루어졌다. 이집트는 지리적 위치가 폐쇄적이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비하여 정치ㆍ문화적 색채가 단조롭다. 사막과 바다로 둘러 싸여 있어서 외부의 침입 없이 2000년 동안 고유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다. 또한 나일강과 주변의 기름진 토양을 바탕으로 일찍 농경이 발달하였다. 해마다 겪게 되는 나일강의 범람은 상류의 비옥한 퇴적물을 운반하는 작용을 하였으므로 나일강변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홍수는 규칙적으로 일어나서 미리 예측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농사의 시기를 조절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범람 때문에 태양력, 기하학, 건축술, 천문학이 발달하였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문명을 형성한 황하문명은 중국 황하강 중ㆍ하류 지역에서 발생한 문명이다. BC 5000년~4000년경부터 신석기 문화가 이루어졌으며, 좁쌀ㆍ기장 등이 재배되고 개ㆍ돼지 등도 사육되었다. 황하강 유역의 신석기 문화는 양사오 문화와 그로부터 발생한 룽산 문화로 대변된다.


위에서 보셨듯이 세계문명을의 시작인 BC 8500년
과학과 문명 이것 엄청 중요합니다.
일본인들이 느낄 열등감 오직 싸움과 전쟁만 있었던 민족으로서
조상과 그들만의 종교에 대한 열등감은
보았듯이 그것도 느끼실겁니다.


지리적 특성상 갇혀 있는 섬 나라에다가 모든 문물 문화 보잘것 없죠 서구인들이 중세를 지나 문화혁명 르네상스라고 하죠
산업혁명으로 눈을 뜬 한참후에 강제 개화 된 덕에 총 이걸 갖게 됐습니다. 임란때 들고 들어온 총 말입니다.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총대 화살
지금으로 말하자면 소총 대 핵 폭탄급입니다. 미개인에 불과했던 일인들이 어 이것봐라 조선인 별것 아니네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었고 한일 합방에 중국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후에 미국에까지 도전
패망후에 6.25 동란때 미국의 보급창 역할로 경제 재건 현재... 미국 앞에서는 철저히 무릎 꿇고 있지만 아마도 절치부심 기회만 주어진다면 분명 재도전 할것입니다.
그때는 대동아 제국 이것이 아니고 세계 제국을 표방하겠죠. 너무 상상력이 풍부하다고요?
아베 신조가 신사참배하고 외국에 자위대 배치 , 전에는 전후 헌법에 묶여 (방위만 할수있는) 지금은 공격도 할수 있다고 공공연히 떠벌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닌가요?
독도 문제에 왜 그리 집착 할까요?
우리 소녀상 가지고 왜 걸고 넘어질까요?
네 맞습니다 열등감입니다.
열등 의식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 부끄러운 것 감추고 가리고 싶어합니다.
모든 문명을 한국으로부터 받아 들인것
미개인 이란것이 들어나는것 일제때 우리 문화와 언어 역사왜곡 다 같은 맥락입니다.
저의 아버님이 일제때 일본에서 수학하셨습니다.
일본인들이 얼마나 미개인인지 아느냐고 하시며 들려주신 일화
유학 당시에 화장실에 짚으로 엮은 줄이 달려 있었답니다. 용변후 공동 사용 하라고요.
그들이 전통 복장이라고 자랑하는 훈도시, 기모노 이 복장들도요.
사무라이라고 하죠
만날 지들끼리 동네 칼싸움하던 야만 족속에서 국가 형태를 갖춘것이 임진왜란 바로 직전입니다.
패싸움 때문에 급히 성행위를 위한 복장입니다. 빨리벗고 밑에 요대신 사용한 기모노 이걸 문화로 둔갑시킨 재주만큼은 사 줄만 합니다.
훈도시는 남자 거시기만 살짝 가린거고 기모노는 이것도 속옷인데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안에 솜을 집어넣어 만든 속옷 만날 쌈박질이니 빨리빨리 볼 일보려면 필요한 속옷을 겉옷으로
입고다닌 민족입니다.
사무라이문화?
네 깡패들 패싸움이 문화랍니다.
그만큼 내세울것 없는 미개인 집단이었죠.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 밖에요.
그게 불과 500년 전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 했습니다.
저는 일본말 전혀 모릅니다.
그런데 일본말 보면 대충 이해합니다. 거의가 한자어로 돼있고 한자를 약어로 쓴게 일본말이니
주요 단어는 한자 짐작컨데 접두사 접미어정도 그리고 초서체 제 생각엔 한문 모르면 일본말 배우기 숩지 않을듯합니다.
고유 언어를 가진 한국사람 모든 문물을 한국통해 받은 일본측 입장에서 한국민들에 대한 지독한
열등의식 그리고 문화라는게 싸움밖에 없으니 쌈박질만 조상에게 물려받았으니
그런 이웃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 정신 차려야겠습니다.

2017-04-27 02: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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