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당의 무식한 넘들의 잡소리가 싫어져서 글을 더 이상 쓰고 싶지가 않다고 하면서 오래 전부터 알렉스가 열당을 멀리했었다. 나 역시 임마들의 개소리를 나무래자니 같은 저질(低質)인간이 되니 차라리 여길 등지게 됐었다.
허나, 열당은 지난 10여년의 파고다 공원이었는데 이런 잡놈들이 나타나서 개판을 치기를 벌써 몇번째인가? 이 者들과 시비하며 겨우 사람되게 해놓으면 견디다 못해서 사라지는 일이 수없이 많았다.
그나마 나 선열반이나 알렉스나 박서방이나 '지나가다'슨생이 그런대로 자리를 지켜주어 왔으나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지난 몇개월이었다. 그 정도가 참으로 꼴불견이지 못해서 정신병동의 낙서를 보자하면 여기가 소위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인가'를 의심할 정도였다.
내가 그나마 하루의 일과를 보내던 곳을 등져야 하는가 하는 기로에 선 것을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차마 내 놀이터를 이런 정신 나간 인간들에게 내어주기 보다는 이런 하치들을 쫒아내기로 작정하고 좃나게 애들 썼더니 다시 아름다운 꽃과 새들이 날아드는구나.
이런 자들과 싸워서 겨우 숨쉴 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인데, 유지되시는 분들은 "빼았긴 들에도 봄이 올건가"케싸문서 눈치를 봐왔던 것이 아닐까? 세상이 모든 일이 다 그러하드시 원하는 것을 재취해야지 누가 거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본론을 들어가자.
알렉스슨상이 70세를 넘기면서 인간다운 인생의 質을 즐기다 가자는 결의랄까 안까님의 철학이랄까를 어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알렉스는 야소교를 조지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살아온 것으로 안다. 어디 그것뿐이랴! 맘에 않드는 것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불평의 불만을 늘 토로해왔다. 아직도 그 잔재를 보게 된다. 내가 묻는다. 그게 質的인 마지막의 생의 목표인가?
質이란 것도 사람 나름이다. 썅흐니 같이 선창가를 서성거리며 아직도 '아름다운 창녀'와 팔뚝같은 좃대를 자랑하지만 그 인간에게는 그런 본능적인 욕정이 質的인 꿈이 되리라.
또 어떤이들은 남의 글을 옮겨오면서 뭔가 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자기의 質이라 하는 것같고, 또 어떤이는 박근혜를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의 質이 아닐까 한다. 또 어떤 여자분은 사람 죽이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고 교회의 분란에서 장로나 반대파를 죽어라 욕지거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더군.
세상에 어디 이런 것들이 質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입고, 좋은 집에 좋은 차를 모는 것은 삶의 기초에 해당한다. 그것을 質이라고 생각하는 인간들을 나는 低質이라고 본다. 그 육체적 욕구를 만족하기란 실상 한도 끝도 없는 욕망의 세계인지라, 만족하면 만족할 수로 더 충족하려는 허망한 짓거리다.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할 수있는 정신적 자세를 갖추지 않는 한 그 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고, 그것을 무리하게 쫒아다니다가는 그나마 짧은 인생을 더욱 더 빨리 마감하게 한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아는가? 그것을 깨닫기 위하여는 많은 책을 읽으며 '정신세계의 하늘나라'가 무었이며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내야 한다.
그 경지에 이르려면 세상돌아가는 물정을 파악해야 하거늘......그것이 바로 有識이란 것이다. jotto 모르는 것들이 자기의 우물 안에 빠져서 바깥 세상을 모르고 맹꽁맹꽁 하다가 無識하게 지레 죽는 것이 자랑이냐? 그런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한 그 者들은 세상을 잘못 살았다는 것은 죽는 순간에 깨달았다면 그나마 다행이랄까, 아니면 '내일이면 늦으리'란 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고 해본들......실로 우둔한 사람들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