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장수에 대한 철학은,
오래 사는 것은 별로 바라지 않는다.
.
뭔가 내가 만들어 낸 나만의 삶의 목표에 끄달려 바삐 살다가
아무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가고픈 마음이다.
하기야 대부분은 그러고 싶겠지...
.
살다보면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에 차는 것 없다.
이 땐 그저 그런 것이구나 하고
받아드리는 자세를 취하는 내가 되도록 나를 바꾸려고 애를 쓴다.
.
세상사 모든 괴로움은 오해가 남긴 것이고
오해는 이해가 되었으면 오해가 생기지 않고
오해가 생기지 않으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고 믿는다.
.
그러다 때가 되었다 싶으면 뭔가 확실은 결행을 해야 한다고 본다.
더러는 그러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할지 모르지만...
.
그러나 나의 명을 어떻게 하긴 아직은 이다.
이 아직이 언제까지일지 나도 모른다.
.
그러나 어쩌면 알아질 것도 같기도 하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면 그 때를 알 것 같이
마음을 비우려 애를 쓰면서 산다.
.
아래의 몇 분의 장수(長壽)에 대한 글들을 읽고 나니
갑자기 이 시가 생각이 나서 모시고 와 횡설수설 해본다.
.
== 나옹선사의 시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잡고 티 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 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
==
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들었을 법한
이 시는 나옹 선사가 남긴 것으로 전하고 있지요.
고려 말 예주(지금 경북 영덕군 영해지방)부에서 출생하여 출생의 전설이 있습니다.
.
이 지방에 창수면 가산리에 까치소라는 개울이 있는데
까치소 앞에서 관헌에 끌려가다가 그의 어머니가 아이를 낳았고
낳은 아이를 개울가에 그대로 둔 채 예주 부 관청에 끌려갔다고 합니다.
.
부사가 옷자락에 묻은 피를 보고 이상하게 여겨서 연유를 물어보니
도중에 출산한 아이를 그대로 두고 왔다는 것을 알고는
.
빨리 돌려보내라는 사또의 엄명에 따라
그 자리에 돌아가니 아이는 죽지 않고
수 백 마리의 까치들이 애기를 보호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자라서 나옹 대사라는 큰 인물이 되었다는 전설이지요.
.
그는 원나라 유학을 했고
인도의 지공스님의 제자로서 인도불교를 한국불교로 승화시킨 역사적 인물로서
경기도 양주군 회암사 절터가 있는데
경주의 황룡사 절터보다 규모가 큰 우리나라 최대의 사찰로 중창되었다.
.
무학대사(아래 용무늬가 있는 정교한 부도사진)는 그의 제자였고,
조선 태조 왕사로서 한양천도의 주요 인물이었지요.
비석은 조선왕조 유학사상의 지주였던 목은 이색이 찬한 비문이 남아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