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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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당
제목 양반 쌍넘은 언제부터 없어졌나?
작성자 alexander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해방후까지만 하드라도
양반쌍넘의 시스템 속에서 일반서민(상놈)이 짓눌려 살아오면서
초근목피의 거지같은 생활을 해야만 했다.

우리가 이조 사극같은걸 볼때 구중궁궐에서 비단옷 입고
지롤떠는 양반들만 봐와서 잘 모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정말로 비참한 세월을 보낸 조상들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성씨 가문의 족보를 보면 선조들이 우이정 좌이정
안해먹은 조상들이 없을 정도로 양반출신 집안이란걸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전부 거짓말이고 왜곡된 족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요즘의 민주화된 한국에 양반 상넘 찾다가는 귀싸대기
맞을 정도로 국민 모두의 인권을 존중하고 있는 마당에 아직도
잔재가 남아 양반집안, 뼈대있는집안 운운 하는 족속들도 있긴 하지만
하여튼 웃겨 자빠진 사고방식임에는 틀림없다.

그럼 수천년 동안 내려오든 양반상넘의 시스템이 언제부터 무너졌나?
바로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은 국토만 폐허로 만든게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방식 조차도 완전히 뜯어 고쳐놨다.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내어 풍지박산으로 만드 한국전쟁.
그 와중에 먹고 살아야만 했던 비참한 생활속에서 드디어 양반상놈이란
제도는 깨어지고 시장경제가 싹을 트게 된것이다.

일사후퇴때 수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난해 부산에서 삶의
터전을 닦았는데, 그곳이 바로 국제시장이고 바로 부산 국제시장이
시장경제의 원조 장소라고 할수있다.

625 전쟁이 없었드라면 양반상넘 제도는 아직도 존재할것이고,
북한처럼 왕조체재가 이어질것이고, 국민소득 세계에서 최하위를
고수하고 있을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전쟁이 한국 근대화를 이르킨 원인이라고도
볼수있다 이말이다.

2017-06-01 14:57:08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2   coffee [ 2017-06-05 19:59:02 ] 

alexander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헛소리 하는 자의 말은 우리집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로
알겠습니다.

1   zenilvana [ 2017-06-02 11:37:39 ] 

양반 상놈은 제도적으로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조선땅에서 사라졌다. 위키백과에서는 이래 말하고 있다. 1894년 음력 6월 25일(양력 7월 27일)부터 1895년 8월까지 조선 정부에서 전개한 제도 개혁 운동을 말한다. 10년 전 갑신정변의 실패 후 망명했던 개화파들이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의 위세를 업고 돌아와 추진한 일본식 개혁으로서 갑오경장(甲午更張)[1]이라고도 불렸다. 내각의 변화에 따라 제1차 갑오개혁과 제2차 갑오개혁으로 세분하며, 이듬해 을미개혁(제3차 갑오개혁)으로 이어지게 된다. 주요 내용은 신분제(노비제)의 폐지, 은본위제, 조세의 금납 통일, 인신 매매 금지, 조혼 금지, 과부의 재가 허용, 고문과 연좌법 폐지 등이다.

"수천년 동안 내려오든 양반상넘의 시스템"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 차별제도는 이씨조선에서 시작된 것이고, 일반인들을 상넘으로 치지 않았다. 상넘이란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나던가 정치파동에서 그 신분으로 전락한 부류를 한정해서 불렀다.

원래 북한 주민들 특히 평안도나 함경도에는 소위 양반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關北(관북)사람들은 과거에 응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성계가 그쪽 사람들이 '대가 세어서' 왕조의 흥망에 결코 이롭지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로 남쪽 사람들이 양반 상놈에서 갑질을 해댔었다. 따라서 6-25민족 상잔까지 거론할 근거가 희박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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