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틀러와 토인비가 만났었고 그 후에 토인비가 히틀러의 추종자가 되었다는 흥미로운 기사가 있어 소개합니다.
히틀러가 명 연설가로서 대중을 사로잡은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히틀러가 연설을 잘하지 못했다는 소리는 헛소리입니다.
간혹가다가 히틀러가 연설을 잘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히틀러는 혼자서 자신의 연설능력을 연구했습니다. 거울을 보면서 제스처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억양이나 몸짓, 연설 도입부나 절정, 마무리를 구분해서 연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히틀러의 연설능력입니다. 오늘 서프라이즈에 히틀러가 연설을 못했다고 나왔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애초에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 능력은 나치의 선전들 중에서 하나일 뿐이지 그것으로 히틀러의 연설능력을 신화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영화 이외에도 괴벨스의 뛰어난 예술감각으로 연설을 할 때 그 시간이나 장소, 조명과 같은 것들도 일일이 감독하고 확인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연설을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서 연설을 하여 뭔가 시각의 극대화를 본다거나, 연설을 할 때 일부러 1~2시간을 늦게 와서 사람들이 엄청 기다림을 느끼고 지루함을 느낄 때 등장하여 폭발적인 환호를 유인하다거나, 어두운 곳에서 조명을 히틀러쪽으로 집중적으로 설치하여 마치 후광이 나오는 것과 같은 신격화를 만든다거나와 같이 말이죠.
하지만 이는 그 과정의 일환이지 히틀러가 연설을 잘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는 영국인으로 옥스포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한 가지 그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독일군이 라인란트에 쳐들어간 1936년 3월의 어느날,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히틀러와 단독 대담을 한 적이 있다. 아놀드 토인비는 그 단독 첫 대담을 통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는 히틀러와 대담을 하기 전까지만해도 열렬한 반나치주의자였으며 히틀러와 나치당을 비판하는 비평가이자 역사학자였다. 토인비는 베를린 정치대학 벨벳교수의 초청으로 독일 법학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베를린에 왔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도 토인비가 히틀러를 비판한 글을 쓴 적이 있다는 사실을 나치스당 간부가 발견했다.
깜짝 놀란 벨벳 교수는 이 사실을 황급히 히틀러의 측근에게 알렸고, 크게 화를 낼 줄 알았던 히틀러는 뜻밖에도 '"그의 비판은 공정하지가 않다. 그의 생각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서 내가 한번 만나보아야겠다."며 토인비를 불러오도록 했다. 이렇게 하여 마련된 대담에서 히틀러는 2시간 이상을 논리정연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토인비는 단 5분밖에 말할 기회가 없었다. 회견후에 토인비는 [히틀러 회견기]라는 책을 썼는데, 그는 이 책에 이렇게 썼다.
'나의 눈은 히틀러의 손동작을 쫓았다. 그는 아름다운 손을 언어의 반주로 썼는데, 그 제스처는 우아했으며 음성도 인간적으로 매우 듣기 좋았다. 2시간 15분 동안 히틀러는 논리정연하고 명쾌하게 자신의 논리를 전개시켰다. 학술 강연자 중 그 어느 누구도 그 처럼 오랜 시간동안 단 한번도 이론의 갈피를 잃지 않고 말한 사람은 없었고, 나는 여태까지 본적이 없었다. 나는 히틀러를 매우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고 적었다.
이 때 히틀러와 토인비의 나이 46세로 동갑이었다.
그 뒤, 그는 히틀러 비평가에서 히틀러의 추종자로 바뀌게 되었다. 죽을 때까지..
히틀러 회견기라는 책의 내용은 없어서 도대체 어떤 연설을 했기에
토인비라는 대 학자가 넘어 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지만 단 2시간의 의견 피력에 넘어갔다?
저로서는 미스터리일 뿐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