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열당독자 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을 올리면 짧게 , 길게 , 너무 많이 올린다 또는 밥먹고 할 일이 그리 없느냐 등등 ....
네 , 밥 먹고 할 일도 별로 없고 글재주도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어 주로 신문기사나 본인이 판단해서 좋은 글만 보이면 사정없이 퍼오기도 하고 게시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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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올려서 한국일보 사이트가 다운 됐다거나 학력제한 ,글짓기 교실로 전환 등등 이러한 기사를 보는 그날까지 계속 올릴 예정입니다.
문명순환론 [文明循環論 ]
이 이론이 세상 살면서 많이 적용되지 않는가 해서 올려봅니다.
영국의 문명사가 아놀드 토인비(A. J. Toynbee)는 주저 『역사의 연구』(A StudyofHistory, 12권, 1934~1961)에서 세계사를 비교문명론적으로 고찰하는 독특한 문명사관을 제시하였는데 그 핵심은 문명순환론이다. 토인비는 문명은 도전(challenge)에 대해 성공적으로 응전(response)해야 탄생과 성장이 가능하다는 원리를 천명하면서 이 원리에 따라 문명은 탄생 · 성장 · 붕괴 · 해체의 4단계 사이클(cycle, 주기)을 겪는다는 이른바 문명순환론을 주장하였다.토인비는 이러한 이론에 준하여 인류가 창조한 문명을 유형화하였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인류역사에 알려진 문명은 모두 30개인데, 그중 정상적인 순환과정, 즉 탄생 · 성장 · 붕괴 · 해체의 4단계를 거친 이른바 성장문명은 21개이다. 그리고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불의의 요인으로 인해 이 과정을 제대로 다 거치지 않고 일부만 거친 정체(停滯)문명은 5개이며, 탄생 요인을 잉태했다가 태어나지 못한 유산(流産)문명은 4개로 보았다.그런데 이 성장문명 21개 중에서도 이미 사라진 사(死)문명이 14개이며, 아직 살아 있는 생존문명이 7개(인도 · 이슬람 · 극동 · 비잔틴 · 동남유럽 · 그리스정교 · 서구 문명)라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초유의 문명유형화는 대체적으로 사실에 부합되는 것으로 문명사 연구에 이용되고 있다. 이것은 토인비의 중요한 문명사적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문명의 탄생 요건에 관하여 종래의 통념은 자연환경적으로 인간 생활에 유리한 곳에서 탄생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토인비는 이와 반대로 오히려 자연환경이 불리한 것이 문명 탄생의 필요조건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불리한 환경은 일종의 도전이므로, 이러한 도전에 응전해 극복할 때만이 문명은 탄생하게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고대 4대 문명을 탄생시킨 4대강 유역은 모두가 범람의 위험이 크고, 기후가 건조하거나 고온인 악조건 지역이어서, 인간이 고도의 지혜를 발휘해 그러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고대 4대 문명이 비로소 탄생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성공적인 응전을 가능케 하는 요인은 인간의 창의력이라고 하면서, 창의력이 있는 인간만이 도전을 이겨내고 문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토인비는 탄생한 문명의 성장도 도전에 대한 응전이 성공해야 가능하며, 그러한 성장은 단순한 영토의 확장이나 경제적 및 기술적 발전만은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 승화(etherealization)라고 보았다. 이러한 승화과정은 자기결단(self-determination)과 자기천명(self-articulation)의 과정이며, 그 과정에는 일시적 후퇴(withdrawl)와 복귀(return)가 수반되는데, 복귀에 의해서만 정신적 승화가 실현된다.이러한 복귀에서 일부의 창조적 소수가 큰 역할을 담당하며, 이때 대중은 이 창조적 소수의 견해와 태도를 흉내(mimésis), 즉 모방하거나 추종한다. 그러다가 이러한 창조적 소수가 지도력이 결핍해 대중으로부터의 매력을 상실한 나머지 대중에게 맹목적인 복종과 충성심을 강요하는 방법으로 지배권을 유지하려 하면, 이때부터 문명은 붕괴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 점에서 대중의 맹목적 복종을 건전한 문명의 상징으로 본 슈펭글러(O. Spengler)와는 관점을 달리하고 있다.이와 같이 창조적 소수(지도자)에 대한 자발적 대중의 ‘흉내’가 기계적 모방이나 강제적 훈련으로 변화했을 때 문명의 붕괴가 일어난다. 그런데 이것 역시 지도자가 도전에 대한 응전에서 실패했기 때문인데, 이때 대중은 지도자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런 대중을 토인비는 ‘내적 프롤레타리아트’(innerproletariat)라고 하였다. 일단 그렇게 되면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고 사회적 통일이 파괴되어 결코 문명은 붕괴되고야 만다.문명의 붕괴는 결국 문명의 최종 단계인 해체로 마무리되는데, 때로는 강력한 재기(rally)가 시도되어 붕괴가 그만 중지되어 해체가 아닌 장기적인 화석기(化石期)가 도래하는 경우가 있다. 토인비는 이집트와 동양문명이 바로 이런 경우라고 여겼다. 이 단계에서는 내적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외부로부터의 적대적 행위인 외적 프롤레타리아트(externalproletariat)의 도전도 받게 되어 사회는 수평적 분열과 수직적 분열을 동시에 겪으면서 해체가 촉진된다.또한 이 단계에서는 창조성은 자포자기나 자기억제로, ‘흉내’는 보이콧이나 순교로 변해 결국 영혼의 분열도 일어나게 된다. 그 결과 복고주의나 미래주의, 유토피아적 초현실주의 등 각종 도피주의가 만연하며, 그 와중에 이른바 ‘구세주’가 출현한다. 뿐만 아니라 이 단계에서는 적대국가나 적대사상 간에 전쟁이 발발하게 마련인데, 그 전쟁에 기진맥진한 대중은 세계국가나 평화를 갈구하게 된다.이 문명의 해체기나 화석기가 지나서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기까지는 상당히 긴 ‘밤’을 보내게 되는데, 토인비는 이 기간을 ‘공위시대’(空位時代, interregnum)라고 부른다. 이 시대에는 민족이동과 대중운동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영웅호걸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일명 ‘영웅시대’(heroicage)라고도 한다. 그는 또한 이 시대를 약 400년 동안 지속되는 ‘고난의 시기’(a timeoftroubles)라고도 표현한다. 이 공위시대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문명의 여명은 밝아온다.토인비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계기로 현대사와 유럽문명의 장래에 대한 위기의식을 절감하면서 투키디데스(Thukydides,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역사가, 명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저자)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고대 그리스사와 현대사 사이에 유사성, 즉 철학적 동시대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그가 느끼는 역사적 위기의식이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느낀 역사적 위기의식과 너무나도 유사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세계사의 비교문명론적인 접근을 시작해 마침내 도전과 응전의 원리에 의한 문명순환론을 창안하게 되었다. 그는 문명의 동시대성과 유형화 및 순환론을 밝혀냄으로써 문명사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을 도출하였으며, 문명필멸이라는 비관주의를 지양하고 순환에 의한 문명의 재생이란 낙관주의적 역사관을 제시하였다.반면 그가 거대한 세계역사의 흐름을 도전과 응전에 의한 순환이라는 단순하고 교조적인 논리로 설명하는 것은 일종의 사변적 역사철학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또한 그가 창조적 소수(지도자나 영웅)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있으며, ‘신의 법칙’에 의한 인간의 응전이나 인간으로 육화한 신에 의해 해체기 문명을 구제한다는 주장은 관념론적 사관으로 비판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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