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모르겠지만 보리고개가 한창이던 시절 쥐는 박멸의 대상이었다. 해질녘이 되면 쥐약이나 쥐덫을 놓는 것은 하루 일과의 끝이였다. 사람도 먹고살기 힘들어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된 삶과 절대적 빈곤에서 허덕여야 했던 시절, 왜 쥐들은 창궐하여 우리가 먹어야할 것들을 사정없이 갉아먹어 치웠는지.
마루 한구석에 쌓아 놓은 겉보리 가마들은 이미 구멍들이 생겨 겉보리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잘쳐먹고 싸질러 놓은 쥐똥들은 천지에 깔려있고 때론 우리가 먹는 밥에서도 나왔다.
허기진 배를 보리밥 한사발, 김치 깍두기 그리고 멀건 고추장찌게로 채우고 해질녘 툇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쥐들의 행진이 시작된다. 쥐들이 바닷가재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니는 것도 흔히 본다. 부엌에선 벌써 덜그럭 소리가 나고, 울타리 밑으로, 뒷간으로, 지붕위로, 돼지우리를 타고 닭장 옆으로 쏜살같이 내달린다.
왕초쯤으로 보이는 녀석은 얼마나 잘 먹었는지 살이 뒤룩뒤룩 쪄 뒤뚱거렸다. 이미 어미닭과 병아리들은 불러 모아 작은 닭장에 넣어 추녀끝에 여러 개를 매달아 놓았다. 쥐덫에 걸려 죽는 놈이 있거나 보리밥과 쥐약을 버무려 여기저기 놓았는데 혹여 초저녁에 죽는 놈이라도 있나 살피지만 아직은 어림도 없다.
엊저녁엔 추녀끝에 매달아 놓은 닭장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 병아리 여러 마리를 쥐들한테 빼앗겼다. 죽은 쥐꼬리들을 잘라 학교에 갖고 가려면 오늘 밤엔 여러놈들이 쥐약을 먹고 죽어야 할텐데. 지난달엔 철망으로 된 큰닭장까지 뚷고 들어가 훼에 올라가 잠들어 있는 암닭의 뒷구멍을 긁어 먹었다. 머리가 있어도 아이큐가 가장 낮은 닭들은 쥐한텐 너무도 약한 존재였다.
해만 너머가면 득실대던 쥐쉐이들. 어둠을 사랑하고 어둠이 그들의 천국이던 쥐쉐이들. 잠을 자려해도 천장 속에서 뜀박질을 해대는 통에 깊은 잠을 잘 수 없게 만들던 쥐쉐이들. 때론 지들끼리 어두운 천장 속에서 짝짓기들을 하는지 찍찍거리고 꺼억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천장을 뚫고 쥐약을 놓을 수도 없고.
한국엔 지금 대단히 커다란 쥐 한마리가 떨고 있다고 한다. 과거 쥐들의 왕초를 거쳐 크라운을 머리에 두른 적이 있는 쥐라고 한다. 점점 더 코너에 몰려 고양이라도 물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살이 쪘는지 왠만한 쥐구멍으론 들어갈 수 조차 없는 몸집을 가졌단다. 그 쥐가 늘 잡아먹고 싶어했던 암닭은 그야말로 닭장에 갇혀 시름시름한다고 하는데, 한 때 뒤을 갉아 먹힌 이 닭은 아직 살아있지만 언제 어찌될지 모른다고 한다.
전국에 쥐구멍을 뚫고 파헤치고 알곡들을 빼앗아간 대왕쥐 소식을 들으니 부엌 물독에 살찐 쥐 한 마리가 빠져 퉁퉁불어 죽어있는 것도 모른채 그 물을 한 달 이상이나 울거 먹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살갖이 스믈거리며 온 몸이 오그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