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에 4星장군하는 녀석의 여편네가 쫄병부려먹기를 노예처럼 했다고 해서 문대통까지 나서서 박아무개 하는 년놈을 수사하도록 독려했다. 아울러 군 지휘관급들이 반세기에 걸처서 해먹던 적폐를 쇄신하는 개혁을 지시했다고 한다.
웃기는 것이 이 부부는 독실한 기독교인들이라고. 지난번 대통령 해먹은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이명박이가 교인이었던 것을 우리가 안다. 그것만 아닌 것이 아니라 이들이 해먹은 부정 및 비리 또한 역역히 세상에 알게 모르게 알려진 상태다. 박근혜는 현재 재판 중이라서 뭐라 말할 수 없지만서리.
어디 그것 뿐이랴! 내가 아는 장로라는 작자들이 번지르르 겉으로는 가장 잘 믿는 것처럼 했어도 그 者들이 어떤 짓거리를 했는 가를 일일히 고해받칠 이유가 없는 형편이다. 하물며 열린마당의 내노라하는 교회신자들 조차 뭐가 예수님 내지 사도바울이 신도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이 뭔지도 모르는 판이다.
기독교에는 유태인들의 舊約(구약)이란 것과 예수의 혁명적 요구인 新約(신약)이란 것이 따로 있다. 앞의 것은 유태인들이 야외과 약속한 소위 律法(율법)이란 것으로 이를 엄격히 준행해야 그들 하나님의 축복을 살아 생전에 누리게 된다. 그럼 뒤의 제2의 '새로운 약속'이란 것은 뭐냐? 말하자면 條件附(조건부)란 얘긴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바로 그거다. 남을 무조건 아끼고 염려하는 정신이 잡혀있지 않으면 살아서는 물론이요, 죽어서도 '하늘 나라'로 갈 수가 없다는 거다. 한국인들에게는 특히 天堂(천당)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서 긴가 민가 하지만, 원래의 뜻은 여기 이 사는 마당에서 福을 누리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이 박아무개 4성장군의 늙으막의 꼴을 보시라. 그 덜떨어진 무당식의 교인생활이 자기네 신세를 조지게 한 그 근본원인이 바로 "내 이웃, 내 부하"를 착취하다가 그 지경에 이르렀거늘......이 사람들이 어찌 이들 뿐이겠는가? 열린마당에도 상당한 수가 교인임을 자처하면서도 꺼떡하면 욕지거리와 '지옥에 가라'고 악의 악을 쓰는 '잘난 교인들'이 무지기 닥쌍이 아닌가?
그러 하다면 "이웃 사랑"이 도대체 뭐 관대 이리도 호들갑을 떠는가? 수십년을 교회를 다녔어도 이런 구절이 있는 줄을 모를 것이 분명해서 아래에 인용한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예수가 재림할 적에)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 전서 13장-
이 구절은 사도바울이 淫亂(음란)하고 싸움질 잘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당부한 그 유명한 사랑이 무었인가를 정의한 글이다. 예수가 유태인의 부패한 정치 및 정신구조에 반란을 일으켰음에 반하여, 사도바울은 새 시대의 새 물결인 희랍의 "새로운 철학, 즉 "Neo Platonism"에 입각하여 기독교를 창시한 사람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