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로 양칠성, 일본어로 야나가와 시치세이, 그리고 인도네시아어로 코마르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태평양전쟁 때는 일본군의 군무원이었고, 일본이 패한 뒤에는 인도네시아 독립군으로 활동한 조선인이다.
독립군이기 전에 조선인이었던 그가 일본군과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참가한 목표와 열망은 무엇이었을까.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편집=오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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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우쓰미 아이코, 무라이 요시노리 '적도에 묻히다'
광복절을 며칠 앞둔 오늘, 나는 한국어로 양칠성, 일본어로 야나가와 시치세이, 그리고 인도네시아어로 코마르딘이라 불린 한 사람을 생각한다. 태평양전쟁 때는 일본군의 군무원이었고, 일본이 패한 뒤에는 일본인 동료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가담해서 네덜란드에 맞서 싸우다가 처형당한 조선인이다.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투신한 두 명의 일본 병사에 대해 “독립은 어떤 한 민족의 일이 아니라 전 인류의 일이다”라고 말했다. 양칠성 역시, 그 배경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애초에는 병사로서의 징용을 피하고 어려운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한 개인적 목적으로 동남아시아에 건너갔다. 그러나 그는 일본이 패전한 뒤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가담해서 전 인류를 위한 전쟁을 수행하다가 죽었다.
그는 한국 독립의 영웅으로 간주되지는 않을 터이다. 일본군의 군무원이었기 때문에 당시 한국에서는 친일파로 치부되었을 수도 있고, 인도네시아 독립을 인정하지 않던 네덜란드 측에서는 그를 전범으로 간주했을 터이다.
나는, 양칠성이 한국 독립을 열망한 애국자였는지, 아니면 친일파·전범이었는지를 판정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일본군과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참가한 개인적 목표와 열망을 알고 싶을 뿐이다. 대부분의 개인은 흑과 백,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애국과 매국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개인으로서 살아갈 뿐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개인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질 때, 한국은 성숙한 국가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시민을 상대로 강연할 때 공통적으로 받는 질문이 두 가지 있다. “한국인은 어떻고 일본인은 어떻다라고들 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이렇게 답한다. “저는 민족성이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5000만명의 한국인도 한 사람 한 사람 다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1억2000만명의 일본인을 한마디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겠습니까?”
위의 질문에 이어지는 질문은 “일본인은 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느냐”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일본을 비판할 때 거론되는 여러 가지 중요한 사건의 진상을 밝힌 것은 ‘양심적 일본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라고 답한다. 고려독립청년당원들과 양칠성의 행적을 추적한 ‘적도에 묻히다―독립영웅, 혹은 전범이 된 조선인들 이야기’(역사비평사 刊)의 저자인 우쓰미 아이코와 무라이 요시노리 부부 역시, 개인으로서 깨어 있는 일본 시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