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앙아시아 3대 서사시 <게세르>
<게세르>는 티베트와 몽골 민족 사이에서 예로부터 전해오는 영웅서사시로 <장가르>, <마나스>와 함께 중앙아시아 3대 서사시로 꼽힌다.
시원을 따진다면, 티베트어 <게세르>가 먼저 형성되었고, 그것이 몽골에 전래되어 몽골어 <게세르>로 다시 창작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티베트에서는 <게사르>라고도 부른다.
동북아시아 초원지대를 대표하는 영웅서사시로서, 남쪽으로는 갠지스 강 유역, 북쪽으로는 바이칼 호까지 퍼져 있을 만큼 전승범위가 넓은 것이 특징이다.
몽골인들은 <게세르>를 <몽골비사>, <장가르>와 함께 몽골을 대표하는 3대 전통문학으로 간주한다.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던 몽골어 <게세르>는 1716년 처음 목판 인쇄본이 등장했고, 그것이 러시아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되면서 서구 세계에 알려졌다.
티베트어 판본은 이보다 늦게 19세기 중반 이후에나 인쇄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특히 중국이 <게세르>에 큰 관심을 기울여, <게세르 왕전>(格萨尔王传)이라는 큰 제목 아래 다양한 판본들을 수집하고 정리했다.
그 결과 <북방항마>(北方降魔), <곽령대전>(霍岭大战), <보위염해>(保卫盐海), <문령대전>(门岭大战) 등 각기 독립성을 인정받는 이른바 4대 항마사(降魔史) 이외에 많은 에피소드들이 채록되고 출판될 수 있었다.
2) 아시아 신화를 대표하는 상상력
<게세르>는 판본에 따라 줄거리가 다양하다.
그중에서 몽골어 <게세르>(1716년 베이징 목판 인쇄본)는 혼란한 인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현신해 태어난 주인공 게세르가 악당 초통과 망고스를 무찌르고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가 중심축이다.
그렇다고 해도 몽골어 <게세르>는 사뭇 비장한 분위기가 지배적인 일반적인 영웅서사시들과는 크게 다른데, 무엇보다 주인공 게세르가 심술궂고 장난기 많으며 적을 심하게 조롱하는 등 악동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게세르>는 <마나스>나 <알파미시>와 확실히 구별된다.몽골어 <게세르>에 등장하는 게세르는 초원의 전사라기보다는 현란한 마술을 구사하는 마법사 같은 면모를 강하게 드러낸다.
그는 엄청난 신통력의 소유자로서 천상과 천하를 오가며 온갖 모험을 벌이는데, 그 모험은 기본적으로 불법(佛法)을 유린하는 혼란한 세상을 평정하는 데 있다.
아울러 몽골어 목판본 <게세르>에서는 중국의 천자와 맞서 몽골 민족의 자주적 의지를 천명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동북아시아 스텝 지역의 독특하고 신비로운 세계관, 유목민족 특유의 관념세계가 엿보이는 이 <게세르>는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문학적으로도, 내용 전개가 흥미롭고, 곳곳에 포진한 판타지적 요소들이 현대 독자들에게도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아시아 서사의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3)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서 제의적 성격을 가진 게세르
<게세르>는 단지 서사시로서 문학적 예술적 기능만 담당했던 게 아니다. 몽골인들에게 주인공 게세르 칸은 일찍부터 신앙의 대상이었다.
그는 전신(戰神)인 동시에 나쁜 기후와 질병으로부터 사람과 가축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서 숭배되었다.
당신에게 깨끗한 공물을 바칩니다 저의 두려운 삶을 지지하고 돕는 당신 당신에게 깨끗한 공물을 바칩니다 당신은 내 몸의 갑옷입니다.
사람들은 질병이 들고, 절박한 위험이 닥치거나 가축이 병에 걸리면 라마들을 시켜서 그 서사시 일부를 암송하게 했다.
서사시 문헌은 매우 귀중하게 취급되었으며, 게세르 칸의 노여움을 사지 않도록 언제나 ‘깨끗한 곳’의 평평한 자리에 보관했다.
오늘날에도 이런 관습이 이어져 <게세르> 전문 구연자인 게세르치는 아무 때나 <게세르>를 부르지 않으며, 만일 이를 어겼을 때 병을 얻기도 한다.
이런 사례들은 <게세르>가 영웅신화의 요소들이 희석되고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전락해 버린 한갓 옛날이야기로서가 아니라,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소통의 매개체로서 기능해 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게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세르치들은 <게세르>를 노래하는 행위 자체가 인간세상의 적들을 물리치는 행위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4) 게세르의 영웅적 일생이 슬픈 이유
몽골이나 티베트, 그리고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의 경우 구전 영웅서사시가 활발하게 창작되고 전승되었다.
그에 반해 거대한 중국대륙을 지배하던 한족에게는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규모가 큰 서사시 작품이 없다.
예컨대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의 원작으로 더 잘 알려진 중국의 대표적 영웅서사시 「목란사」(木蘭辭)는 겨우 몇 백 행으로 전해올 뿐이다.
그렇다면 중국에 거대한 영웅서사시가 전해져 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관한 가장 흔한 대답은 한족의 경우 기록문학이 일찍부터 구비문학을 압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문학자인 조동일은 이에 덧붙여 “민족의 영웅을 기리는 서사시가 구전되고 재창조되기 위해서는 민족을 수호해야 할 역사적 시련이 필요했는데, 그런 조건이 한족에게는 마련되지 않고 여러 소수민족에게는 절실했던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분석에 기대면, 초원의 영웅 게세르의 일생이 황홀하고 현란하면 할수록, 사실 그것이 외적과의 싸움을 그만큼 더 많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유목민족의 고단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씁쓸할 느낌마저 든다.
4. 작품 평가 및 연구
1) 게세르전의 분포
게세르 이야기는 앞서 말한 바처럼 티베트, 몽골뿐만 아니라 부랴트(Buryat), 칼미크(Kalmyk), 투바(Tuva) 등 중앙러시아 지역에도 널리 퍼져 있다.
인도 북부 라다크 지역과 부탄에도 게세르 이야기가 전승되어 온다고 한다.
몽골에서 게세르 칸 신화는 주로 토올(서사시), 울게르(설화) 등 구비문학 장르와 토오즈(傳), 남타르(전기) 등 기록문학 장르로 다양하게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게세르 번역과 연구
1716년 몽골어 판본에 기초한 목판본이 베이징에서 처음 인쇄된 이후, 주로 이를 근거로 한 외국어 번역이 진행되었다.
19세기 초반에는 러시아, 독일어 번역본이 출현했고, 20세기에 접어들면서는 영어로도 번역이 시도되었다.
몽골에서는 20세기 중반 담딩수렝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연구가 전개되기 시작했는데, 그는 게세르 서사시가 민중의 염원을 반영한 작품으로, 티베트, 몽골, 부랴트 등 지역에 따라 해당 지역 주민들의 생활상을 잘 반영한다고 정리했다.
무엇보다 그는 게세르 칸 서사시가 11세기 티베트의 암도 지역에 실존했던 인물 거슬러 칸의 역사적 활약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추정했다.
조동일은 자신의 세계문학론을 전개하는 가운데 티베트의 <게사르>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서사시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티베트의 경우, 다른 서사시는 없고 오직 <게사르>만 우뚝하다고 하면서 이를 자세히 소개한다.
특히 그는 <게사르>를 12세기 티베트의 작품으로 보는데, 이는 당시 티베트가 과거의 영광을 잃고 사분오열되었을 때 나라를 통일해서 강력한 중세제국을 건설했던 송찬감포 왕과 같은 민족적 영웅을 다시 기대하는 염원이 투영된 것이라고 해석한다.다만 그는 <게사르>에서 주인공을 ‘게사르’로 일컬은 것이 ‘카이사르(Kaisar)’라고 하는 라틴어의 차용이라고 단정하는데, “로마제국의 황제를 그렇게 부르던 말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전해지면서 ‘세계의 황제’를 뜻하는 말로 바뀐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아직 신빙성을 인정받지 못한 하나의 학설일 따름이다.
그는 게사르가 삼촌인 초통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은 삼촌이 형의 재산을 빼앗고 조카를 학대하는 일이 빈번했던 당대 티베트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3) 한국어 번역본
한국어 번역본으로 『몽골 대서사시 게세르 칸』(유원수 역, 2007, 사계절출판사)이 제일 먼저 선을 보였고, 이어 『바이칼의 게세르신화』(일리야 N. 마다손 채록, 양민종 옮김, 도서출판 솔, 2008)가 나왔다.
『꺼사르 왕』(채복숙 역, 도서출판 경혜, 2013)은 중국의 소수민족인 장족(藏族)의 <게세르> 학자 장볜쟈춰(降边嘉措)가 편찬한 중국어 판본을 번역한 것인데, 그야말로 <게세르>의 ‘중국화’가 많이 진척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몽골어 번역본과는 별도로 바이칼 지역 부랴트인들에게 전해내려 오는 <아바이 게세르 신화>를 번역하여 산문 형식으로 재구성한 책 『바이칼의 게세르 신화』가 출간되었다. 부랴트 게세르 판본을 번역하고 그에 대한 상세한 주석, 해제, 관련 논문을 엮은 책으로, 몽골 판본 <게세르> 못지않게 서술이 체계적이고 재미있다.
몽골족에 속하는 부랴트 민족은 현재 약 50만 명 정도가 주로 바이칼 호수 주변(현재 러시아의 부랴트 자치공화국)에 살고 있는데, 긴 얼굴에 광대뼈가 나오고 홀쭉한 뺨, 얇은 입술 등이 전형적인 북방계 얼굴로 우리 민족과 가장 유사한 얼굴형을 갖고 있다고 한다.
부랴트 민족의 설화는 우리 설화하고도 닮은꼴이 많은데,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는 가장 대표적이다.
4) 단군신화와의 관련성
우리가 <게세르> 신화에 주목하는 까닭은 비단 웅장한 서사와 그것을 환상적으로 전개하는 스토리텔링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게세르>가 우리 민족과도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바이칼의 게세르신화』를 옮긴 양민종에 따르면 게세르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단군신화와 닮은꼴이고, 한반도에서 면면히 생명력을 이어온 샤머니즘 전통과도 맥이 닿아 있다.”일찍이 육당 최남선이 이 <게세르>에 관심을 갖고 소략하게나마 신화소(神話素)를 분석한 바 있는데, 이 역시 <게세르>가 우리 민족의 신화, 특히 단군신화와도 일정하게 맥락을 같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1928년에 발표한 논문 「단군신전(神典)의 고의(古義)」(동아일보, 1월 1일~1월 12일)에서 한반도의 문화가 중국의 한족문화와 다른 특징을 지닌다는 이른바 ‘만몽(滿蒙)문화론’을 전개하는 가운데, 몽골의 게세르 칸 서사가 단군신화의 공백을 메워주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비교문학 연구자 이선아는 게세르를 우리의 단군신화와 비교하는 연구를 체계적으로 진행했다.
그는 육당의 논문 「단군신전의 고의」를 중심으로 단군신화와 <게세르> 신화가 어떤 신화소를 공유하는지 추적했다.
그 결과, ‘삼계관(三界觀)’, ‘환국(桓國)’,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환인(桓因), 천자(天子)’, ‘성산천강(聖山天降)’, ‘천부인(天符印)’ 등 동북아 건국신화의 공통적인 신화소들 이외에도 성산(聖山), 세계목(신단수) 등에서도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보았다.
5) 중국의 게세르 공정
중국에서는 <게세르>에 대해 “우리나라 장족(藏族)과 몽고족(蒙古族) 인민이 집단창작한 위대한 영웅사시”로서 높이 평가한다.
특히 1949년 신중국 성립 이후에는 소수민족정책의 일환으로 <게세르>의 수집 정리 공작을 대규모로 전개했다.
그 과정에서 특히 장족이 많이 사는 칭하이성(靑海省)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거기에서는 1950년대부터 성위원회가 나서서 2백여 명 이상으로 대오를 꾸려 대규모 수집 및 정리 공작을 전개했으며, 전문가들을 구성하여 조직적인 번역 작업도 병행했다.
그 결과 70여 종 약 1천만 자 이상을 번역했고, 그것을 전부 자료용으로 인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중국에서 장문(藏文)본(티베트어본) <게세르>의 일부인 <곽령대전>(格萨尔王传霍岭大战)을 처음으로 정식 출판한 것도 청해인민출판사였다.
아울러 칭하이성에서는 <게세르>를 경극으로 개편해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게세르 [Geser(Epic of King Gesar), (Ge-sar rGyal-po), Гэсэр Хаан] - 북방 아시아 초원의 영웅 게세르 칸의 대서사시 (아시아스토리백과,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
이글을 보신 분들은 별로 재미도 없는 글을 게재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분이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 보셨듯이 우리의 단군 신화와도 연계가 되어있고 중국과 그 주변국들의 관계를
어렴풋이라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옮겨 봤습니다.
한가지 더 추가하면 티벳이 과거에는 생각보다 드넓은 영토를 소유했었고 마지막으로 중국에
점령당하는 시점이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돼있던 6.25전쟁 기간이었습니다.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른 것입니다.
중국의 주변국들에 대한 침략행위는 전 세계를 지배 해야만이 마침표를 찍을 것입니다.
그러한 중국을 곁에 두고 오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한민족이 대단하다는 생각이고
남과 북은 전쟁을 통한 통일이 아니고 반드시 평화적으로 하나가 되어야만이 저들의 야욕을 저지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역사를 되 돌려보면 여러 부족이름으로 나오는 지금의 몽골족은 기후의 특성상 유목 생활을
하고 추수기가 되면 농경사회인 중국으로 내려가서 식량을 약탈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대로 중국은 변방의 그들의 오랑캐를 대비해서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축조하지만
식량이 필요했던 몽골족은 포기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몽골족과 평화조약도 맺고 중국의 금은보화와 공주들도 진상품으로 바치기도 하지만 식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몽골족의 남하는 계속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옛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를 회복해서 국토와 인구를 넓히는 것만이 어느정도 중국과 대등한 관계에서 나라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좁은 나라에서 남과 북으로 남에서 진보와 보수로 거기서 다시 갈리고 갈려
내분에만 빠져있다면 어느날엔가는 중국의 부속국 그저 하나의 자치구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글을 옮겨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