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Bay 남쪽으로 이사와 산지도 어언 4년을 넘기고 있다. 이 대도시를 북쪽으로 Golden Gate이라는 긴 suspension 다리를 건너면 동쪽 내륙에 Russian river가 흐르고 있고, 태평양 해안 30마일 북쪽에는 Drake's Bay란 곳이 위도 38도 선상에 위치한다. 인근에 Point Reyes란 조그마하고 조용한 타운이 주말의 관광객을 부른다.
어제는 '샌프란시스코'Bay(灣)을 처음 발견한 Portola란 사람의 이름을 기념해서 만든 The Portola Redwoods State Park를 다녀왔다. 內海(내해) 쪽의 Palo Alto 산에서 이 거대한 나무들이 잘리고 다시 자란 숲을 내려다 보면서 구불구불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리다 보면 원시림의 '빨간나무'로 뒤덮힌 곳을 만난다. 거기를 서너시간 헤매다 돌아왔다.
남쪽으로 Thomales Bay라고 굴밭(oyster farm)이 있어서 2시간정도 달려서 두어번 간 적이 있다. 그 바로 아래로 Drakes Bay Farm이 2014년 말까지 영업을 했는데, 지금은 인근의 목장에서 흘러나온 오염으로 문을 닫았다. Sir Francis Drake가 두번째의 세계일주를 하던 중에 그 곳에서 선박을 수리하고 캘리포니아를 영국땅으로 기념하는 표말을 박았던 곳이다. 그 때가 1579년이었다.
Russian River는 어째서 San Francisco 북쪽에 생겨났는가? 아다시피 제정러시아가 베어링해협을 건너서 알라스카 해안을 끼고 물개와 수달을 잡으면서 南進(남진)해서 캘리포니아 북쪽 해안까지 내려왔던 바라, 당시에 北上(북상)하던 '후란시스'派의 성당들 및 스페인 후예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내 짐작에 그런 배경에서 그런 강의 이름이 거기에 붙여진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정황에 있던 차에 1848년에 Mexican-American War가 終戰(종전)되고 같은 해에 Gold Rush가 시작되면서 몇년 사이에 300,000만의 인구증가와 엄청난 金의 생산으로 1850년에 부랴부랴 주정부를 세우고 미연방의 하나로 등장했다. 이와 때를 같이 하며 Oregon Trail의 마차행렬과 東部 13州의 인구가 대거 西部로 이동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는 160년 뒤늦게 'California here I come' (캘리포니아여! 내가 여기 온다) 하게 되었다.
Francis Drake란 사람은 지구를 두바퀴 항해했던 항해사로서 南美에서 약탈한 Spainish 금덩이와 은덩이를 도중에서 가로챈 에리자베스 1세의 영웅이었고, 스페인왕 Phillip 2세의 해적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돗 3개 단 상선으로 영국과 불란서를 오가며 장사하는 사람에게 맡겨서 항해사로 견습시켰는데 그가 영리한 것을 아끼다가 자식없이 죽으면서 그 business를 상속하는 바람에 Drake는 선장이 되었다. 그가 23살 되던 해에 그의 두째 사촌인 Sir John Hawkinssms을 따라서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다가 카리비안에서 대대적 농사를 짓던 스페니쉬들에게 노예로 팔았다.
이 사람은 폴투갈 사람들이 하던 짓을 영국으로서는 처음 시작한 사람으로 신대륙에 흑인 노예를 3번 나르고 나서 Sir란 작위까지 받았던 모양이다. 3번째 항해 끝에 멕시코에서 항해보급품을 사들이고 선박도 수리하던 중에 Spanish 함대의 급습을 받고 헤엄처서 겨우 목숨을 구했다.
그 날 이후로 복수를 결심하고 1572년에 그 사촌에게서 독립하여 카리비안 연안과 태평양의 동쪽 해안에서 여러 차례 스페인 정착지와 보물船들을 공략했으나 그 와중에 부상을 입고 스페인 함대가 급박하게 뒤쪽는 상황이라 뺐었던 약탈품을 바닷가에 감추기를 두번이나 했었다. 이로써 해적들의 treasury maps(보물지도)와 애꾸눈 두목의 이야기들이 생겨났다고 하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진다.
아무튼 그 수확의 반을 엘리자베스 2세여왕에게 받쳤는데 그 금액은 그녀가 1년 거두어들이는 수입금을 넘기는 金銀寶貨(금은보화)였다. 이로써 그도 Sir Francis Drake의 작위를 받았고, 더 나아가서 귀족의 The Coat of Arms까지의 영광을 누리기에 이른다. 아프리카 노예를 팔아 작위, 그리고 해적질해서 귀족되고, 영국이란 나라...잘 들 했다.
나중에 인도를 빼았고, 인도에서 생산된 아편을 중국에 팔다 아편전쟁으로홍콩을 조차하질 않나, 호주와 뉴질랜드를 자기네 영토로 만들고, 싱가폴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땅을 빼았고, 한 공적이 바로 이 사람 Sir Francis Drake로 부터 시작된다. 어디 그것 뿐이랴! 미국까지 집어 잡수시다가 결국 불란서의 도움으로 도중하차하고, 불란서의 Luis 16세와 그의 여편의 목이 잘리고, 결국 불란서 혁명 끝에 나포레온이 황제가 되고......
여하튼 스페인의 Phillips 2세가 이를 갈다가 1588년 8월에 Armada (Great and Most Fortunate Navy란 뜻) 130척의 함대로 영국을 공략하러 나섰다가 附(부)제독 Drake의 지휘로 대패하고 스페인이 후진국으로 살아남는 계기가 되었다. 뺐어온 보물 중에 상당량의 銀塊(은괴)가 전해 내려오다가 1800년대 초에 중국과 교역할 적에 잘 써먹었다. 청나라 사람들은 銀을 좋아해서 그것만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영국의 Drake의 銀덩이가 동이 나자 인도의 아편으로 중국사람들을 중독시켰다.
청나라 관리였던 Lin Zexu가 영국정부에 항의서한을 발송했어도 아무 소식이 없는지라 창고에 쌓였던 아편을 강물과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에 1839-42년의 제1-2차 아편전쟁에서 홍콩, Canton, Amoy, Shanghai, Ningpo, 대만의 문호를 여는 조약으로 중국이 현대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큰 댓가(?)를 지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