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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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로빈손 쿠르소가 경험한 영적인 삶
작성자 zenilvana

2010년 봄에 "칠레"란 나라의 외딴 섬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었다. 이통에 오랬동안 잊혀졌었던 Robinson Crusoe Island (로빈슨 크루소 섬)이 갑자기 뉴스꺼리로 등장했었다. 남미의 칠레해안 중간쯤에서 서쪽으로 674 km 떨어진 이 절해의 고도에 해일 (3-4 m 높이)이 밀어닥쳐서 4 명이 죽고 20 여명이 실종됐다고 한다.

내 어린적 동심을 호기심과 놀라움으로 가득채웠던 "로빈손 크루소"... 그 태평양 가운데의 외딴 섬에서 4 년 4 개월을 혼자서 살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됐던 얘기의 섬이 이제 300 여년 만에 내게 또 한번 나타났다. 새롭게 읽는 그의 일대기는 어린시절에 꿈꾸던 미래 탐험얘기가 아니라 인생을 마감하는 여정길의 깨닯음으로써 새로이 부각됨을 이상하게 생각해야 할까?

1574년에 스페인의 항해사가 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Juan Hernandez Island라고 명명했었다. 세상에 '로빈손 쿠르소'라고 알려진 장본인은 실제 인물로 "스콧뜨랜드"의 Alexander Selkirk라는 사람이었다. 그가 영국 함정이 '바크니어' 혹은 해적, 즉 카리비안 해역에서 스페인 선박의 보물을 공략하던 시절에 활동해었던 항해사였었다. 그가 타고 있었던 Cinque Ports라는 영국배가 스페인 선박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많이 입고 칠레 해역에서 북상하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그 배가 곧 침몰될 수 있는 상황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선장과 티격태격하게 되었다.

그는 선장이었던 William Dampier에게 거듭해서 가까운 육지로 정박해서 수선할 수 있기를 주장했다고 한다. 선장은 괜찮다고 우겼고 Selkirk은 그렇지가 않다고 고집했다. 위기를 의식한 그는 마침내 자기 혼자라도 가까운 섬에 내려달라고 했다. 선장이 Hernandez란 섬을 만나자, 그를 거기에 혼자 떨어뜨리고 말았다. 장총 한자루와 탄약, 성경 한권, 목수의 연장 몇개 그리고 칼 한자루를 그에게 남겨주었다. 그 배는 결국 얼마 못가서 파산하게 되었다. 승선했던 전 선원들이 익사하였고, 선장 Dampier와 몇명의 선원만이 작은 보트로 옮겨서 겨우 살아남게 되었다.

그가 1708년에 구조되었을때 그의 모습은 털투성이가 염소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발바닥은 구두창 같이 두꺼웠고 매우 건강한 상태였는데 단지 대화가 어려울 정도의 실어증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을 그곳에 버린 장본인인 Dampier가 그를 알아보고, 동물이 아닌 사람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항해기술을 잊지 않고 있었던 덕분에 해적행위에 다시 참가했다가 3년 후에 결국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동안의 성과로 800파운드에 해당하는 배당을 받아서 거부가 되었고, 이로써 좋은 집과 두 여인과 동시에 결혼하는 "인기의 사나이(Celebrity)"가 되었단다.

이 사람이 동네술집에서 자기의 이런 희한한 얘기를 떠벌였는데, 영국정부의 스파이였던 Daniel Defoe(참고 2)라는 사람이 곁에서 이런 기담을 듣고 "로빈손 쿠루소"라는 소설을 세상에 내어놓게 되어,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진 전설적인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바다. Defoe의 소설에서는 그 섬의 백사장으로 식인종들이 등장하는데, 무인도였고 염소가 수없이 많아서 4년 동안에 500여마리를 잡아먹었다는 기록을 남겼었다. 실제는 17 miles의 길이와 8 miles의 넓이 (가장 넓은 데서)의 鳶(연)과 그 꼬리같은 큰 섬과 두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지금은 600여명의 칠레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Alexander Selkirk는 Scotland의 어느 도시에서 구두 만드는 사람의 7명 아들 중에 하나였다. 가난하다 보니 집안이 늘 시끄러웠고 싸움이 잦았었으나 그는 학교에서는 수학의 재질을 보였고, 또한 바다를 동경하고 해양술에 심취했었다. 이런 야심으로 카리비안으로 떠나는 상선에 올랐는데,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항해 보조사로 일할 수 있었다. 실제로 신세계에 와 보니, 보통의 상행위를 위한 항해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스페인이 콜럼버스가 발견한 지구의 서반구의 땅을 교황의 허락으로 독차지하던 시절이라서 영국은 스페인 상선을 해적행위하던 때였었다. 잉카,아즈텍 그리고 마야문명의 땅을 스패니쉬가 현지인들을 노예로 부려먹으면서 약탈했던 금은의 보화들을 영국인들이 탈취했었다. 그 유명한 인물이 Drake라고 나중에 Knight의 작위까지 받았었다.

이 섬은 지중해성의 기후로 큰 섬의 3분의 2는 수목이 울창하나 그 긴 꼬리부분은 비가 적어서 마른 황토의 땅이었다. 다행히 먼저 방문했던 스페인인들이 염소를 방목했던지 야생염소가 흔했다. 작은 강도 흘렀고, 먹을 수있는 식물들이 곳곳에서 자랐다. 처음 반년동안은 매일 바다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살았었는데, 차차 혼자서 살 궁리를 하다가 보니까 그런대로 지낼 만 했다고 한다. 어쩌다 범선이 나타나면 스페인 배인가를 살펴야 했고, 몇번은 이들이 상륙했었지만 피신했었다. 마침내 4년 4개월이 되던 어느날에 멀리 보이는 선박이 영국함선이 분명하자 봉화와 연기를 피워서 구조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다.

자기를 버렸던 Dampier가 그의 몰골을 알아보게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겠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외톨의 고독한 삶을 이겨낼 수가 있었는가를 물었다고 한다.

"나는 수없이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가장 진실된 기독교 신앙인"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다시는 그런 기독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혼자의 진정한 기독인이기 보다는 차라리 그렇고 그런 신앙인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처럼 긴 서술을 마다 않고 지금까지 써왔다. 그것이 뭐냐? 사람들이 뫃여사는 곳에는 어떤 지배적인 고정관념이 박혀있어서 모두들 한가지, 그리고 한 곳으로 치닫는다. 예외라던가 예상치 못할 상황을 미리 내다보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본다. 그것이 한 가정이던가, 한 교회이던가, 한 회사라던가, 또 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경우들이라 하겠다.

어떤 사람이 색다른 견해를 피력하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의 의견을 수용하기는 커녕, 그 사람을 구박하고 또 밖으로 내어치고 만다. 이 "로빈손 쿠르소" 마냥...... 신-구약을 통털어 예언자 혹은 선지가들이 소위 "선열들이" 당했던 기록을 우리가 성경이라고 부른다. 거기의 주인공인 예수란 사람이 무지막지한 보통사람들에게 몰려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다. 그 장본인이 죽으면서 하던 말이, "이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하는 짓을 모릅니다. 저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Selkirk는 세상에서 흠모하던 재산과 명성과 두 명의 부인을 거느리는 부귀영화에 한동안 몰두하다가, 이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이 역겨워서 다시 "Hernandez"섬에서의 외롭지만 평화로웠던 그 시절을 그리워 하게 되었다. 다시 영국해군의 장교로써 바다로 나갔다가 1년이 않되어 아프리카의 서해안에 이르러 Yellow Fever란 열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금의환향해서 "절해의 고도에서 기독교인이 되기 보다는 고향에서 평범한 죄인으로 사람들과 부닦끼며 살겠다"고 생각했었으나, 결국 자기가 태어난 고향은 결코 천국이 될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를 다시 바다로 불러낸 그 "로빈손 쿠르소"의 섬이 결국은 하늘나라였다는 말인가? 어떤 분이 靈(영)의 세계가 뭐냐를 묻고 있다. 한번 독실하게 믿으며 다시 기적이 일어나기를 희망했던 그 처지의 사람에게는 기독교의 신학논리가 중요하지 않았으리라. 오직 한 길, 다시 세상에 나와 남과 싱갱이하며, 그러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원하는... 그런 삶을 사는 그 자체가 영혼의 세상이다.

<참고 1>

Sir Francis Drake, Vice Admiral (1540–1596), was an English sea captain, privateer, navigator, slaver, a renowned pirate, and politician of the Elizabethan era. <Wikipedia에서>

<참고 2>

Daniel Defoe (1660 – 1731), born Daniel Foe, was an English trader, writer, journalist, pamphleteer and spy, now most famous for his novel Robinson Crusoe. Defoe is notable for being one of the earliest proponents of the novel, as he helped to popularise the form in Britain, and, along with others such as Samuel Richardson, is among the founders of the English novel. A prolific and versatile writer, he wrote more than 500 books, pamphlets and journals on various topics (including politics, crime, religion, marriage, psychology and the supernatural). He was also a pioneer of economic journalism.-위키페디아에서-

禪涅槃

2017-10-01 12: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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