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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본주의란 이념은 서양에서도 순전 우연으로 탄생한 것인가?
작성자 rainbows79

과연 자본주의란 이념은 서양에서도 순전 우연으로 탄생한 것인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러한 자본축적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그런 일이 있었다면 왜 그 세계는 자본주의란 이념으로 역사가 귀결되지 못한 것인가?

냉정하게 얘기할 때 자본주의의 시작은 인류가 태동하고 잉여 농산물이나 사냥을 통해서 획득한 것을 각자의 필요에 의해서 교환이 이루어진 시점이 시작이고 그러한 행위를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영국의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이란 책을 통해서 그들의 산업혁명으로서 이룬 국가의부를 축적하는 과정의 패악을 정당화 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
자본주의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휠씬 이전이다, 위에 기술한 내용대로 말입니다.

단지 잘난척 좋아하는 서양학자들이 그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고도의 상업화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퍼온 글입니다.
유럽 : 요즘 중세 유럽을 극단적으로 깎아내리는 것은 지양되는 추세이지만 그래도 11세기쯤에 유럽에서 기도나 하다가 수틀리면 불의 재판 받을래?
송나라 가서 지폐와 어음으로 누리는 불야성의 도시생활을 즐겨볼래?
하면 아무래도 답은 명백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 유럽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 기원은 다른 곳에서 이식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럽의 경우는 여러모로 시대상 운이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긴 했습니다.

몽골이 중국과 이슬람 세계를 정복하고 실크로드와 같은 거대한 세계무역 시스템에 유럽이 포함된 것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헝가리나 폴란드 같은 곳이 수부타이와 바투같은 몽골 사람들에게 여느 지구 사람들처럼 신나게 맞긴 했지만 다른 피해지역들(호라즘, 아바스조, 송나라 등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미했을 뿐더러 이후 이런 대규모 외침에 대한 걱정 없이 여러 도시(+국가)가 자생적으로 경쟁을 추구할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돈이란 요소가 상당히 중요한 개념으로 떠오릅니다.

이 후 유럽은 '돈' 내지 '부'를 벌기 위해 악착같이 매달렸으며 이는 돈줄을 쥔 상인이 권력과 일체화되는 결과를 낳았고 이후 군사력, 권력, 자본의 힘이 합쳐진 새로운 체제를 낳게 됩니다. (단적으로 동인도회사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당장 자본주의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 있겠지만 이러한 체제가 이후 자본주의의 발달을 가속화시켰으며 유럽과 다른 세계에서는 어느 한쪽 요소가 유럽보다 양적으로 대단했을 지라도 다른 어떤 요소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기에 바로 지금 보는 자본주의의 모습으로 발전하기는 힘들었다는 것 그러나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로 가면 이야기는 또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혁명 한참 이전부터 유럽은 자본을 위해 도시에서 농촌과 농민을 한계까지 착취하는 구조가 생겨났으며 훗날 식민지 경영이란 이런 현상이라고 이해합니다.
급하진 않지만 이런 불안정한 시스템을 가진 사회의 모순이 폭발할 때 대규모 외침 같은 것까지 있었다면 과연 이러한 체제가 오래 갔을까?
이후에도 보겠지만 다른 세계는 유럽과 달리 유목민 등의 대규모 공격에 대비해 사회의 자원을 소비해야 하는 불리함이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스만의 1,2차 빈 포위는 뭐가 되는거냐? 라고 저도 반문하고 싶지만 그냥 동유럽 한정이었을 뿐 전체 유럽 세계가 외침을 막기 위한 시스템으로 돌아가진 않았다는 정도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송대까지 중국의 자본축적 수준은 동시대 어느 곳에 비하더라도 그야말로 독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지폐, 어음 사용. 책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관료기업가의 출현(즉 자본축적을 모토로 하는 자본주의의 입장에선 꿈과도 같은 정치꾼들의 탄생!), 남송 시절엔 북쪽에서 잃어버린 생산력과 나라의 안보를 위해 해상활동을 적극 장려하는 정부 등등 당시의 중국은 '자본주의의 여러 요소'들이 태동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요소가 일정 부분 존재했다는 것과 그것이 자본주의로 연결될 수 있다는 논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몽골이 나타나 금나라와 송나라를 정복하고 3천만에 달하는 인구감소를 겪게 한 뒤 이 시스템들은 그대로 리셋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몽골의 압제에서 해방된 명나라는 극심한 유목민 노이로제에 시달리며 국가의 정책들을 이런 대규모 외침의 방비에 맞추느라 사회의 자원들이 그 쪽으로 몰려가 소모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남송 같은 경우는 이러한 방위에 대비하기 위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해상 활동을 적극 장려했다지만 명나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정화의 7차례 대원정은 자본축적을 위했다기 보다는 중국의 위신을 회복했다는 식의 홍보용 쇼적인 측면이 강했으며 중국의 조공무역은 중국의 체면을 위해 쓰잘데기 없는 이민족의 진상품 몇몇에 과도한 하사품을 하사하는 낭비성 허세였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이 때까지도 중국의 자본축적량은 지구의 다른 나라에 뒤질바는 아니었습니다.
16세기만 해도 은의 블랙홀로 불리는 명나라였으며 대규모 부를 축적한 상인계층도 나타났지만 이들이 유럽과 달랐던 것은 본질적으로 이 상인들이 '권력'과 융합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명나라가 상인의 이익에 해가 되는 정책을 시행해도 상인들은 이에 대항할 힘이 없었으며 이후 해금정책을 시행할 때에도 큰 반발 없이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중국의 다른 특징이라면 주변국들과는 비교가 안되고 주위에 경쟁자가 없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유목민 노이로제에 시달리긴 했어도) 유럽이 국가별로 도시별로 살아남기 위해 돈을 모으기 급급 했다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그러할 필요가 적었으며 명대의 세금 수입마저도 상업보다는 농업에서 얻는 것이 더 컸습니다.
결국 중국에 '자본주의적 요소'로서 나타난 것은 많지만 그것은 자본주의가 아닌 '고도의 상업화'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남아시아 : 이슬람-인도-동남아-중국을 연결하는 바닷길의 주요 통로이며 이후 향신료 무역 등으로 흥하는 인도 역시 돈이 엄청나게 많아서 엄청난 규모의 돈자랑이 가능한 동네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몽골은 여기서 또 등장합니다.

인도의 여러 나라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유목민의 대규모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사회 자원을 이런 쪽으로 소모시켜야 했으며 끝내 이 걱정은 틀린 것이 아닌 게 가즈니 델리 왕조가 티무르-바부르-악바르 계로 이어지는 무굴 제국,명칭만 그렇지 이것이 오리지날 몽골이냐는 것엔 이견이 있겠지만 뭐 티무르부터가 몽골풍 유목계긴 하니 대충 그렇다 칩시다)에게 멸망당하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중국과는 다르게 통합된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상업으로 돈을 번 도시국가는 인도에 여럿 나타났지만 그 상인들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권력과 일체화되는 것을 달성하지는 못했으며 무력을 갖춘 도시국가(베네치아, 제노바 등)가 전쟁 자금을 틀어쥐고 각종 흑막으로 자리했던 유럽과 달리 인도 도시국가들의 군사력은 무굴 제국과 같은 대규모 거대 국가의 수장들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더 좋지 못했던 것은 지금 한국의 국방부 저리가라 할만큼 육지에 허약한 인도 여러나라의 왕들 덕택에 이후 대항해시대가 열렸을 때
남아시아의 해군력은 너무 빈약해서 유럽과 같이 국가의 지원을 업고 정치 권력마저 틀어쥔 상인들이 하던 것처럼 해양 무역에 무력을 동반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남아시아 사람들 입장에선 어디 붙어있는지도 헷갈릴 먼 곳에서 온 포르투갈이 남아시아에서 해상 통행권을 놓고 장사를 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됩니다.
남아시아의 국가들은 돈은 많았지만 무력, 권력이 이런 자본과 융화될 수 없었던 이유로 유럽의 신흥 국가의 지배하에 놓입니다.

-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이슬람 : 책에서 밝히길 일단 이집트는 예외랍니다 이 동네는 보통 아프리카 이미지로 취급하기엔 좀 다른 나라라나? 북아프리카야 이미 고대부터 각종 무역으로 돈 좀 만지던 동네였던데다 북아프리카의 세우타 같은 곳은 지리적으로도 유럽에 가까운 만큼 '유럽형 도시국가'의 모습을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곳에서 역시 이런저런 자본이 축적되는 모습은 보여주지만 그것이 자본주의로 연결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여러 세력들이 나타나 각축전을 벌이며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하는 모습은 유럽과 비슷했지만 남아시아나 중국에 비할 때 이 국가들의 체제안정성이나 제도등은 심하게 뒤떨어진 상태였기에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하기는 힘들었습니다.

톰북투로 유명한 말리 왕국이나 문명 5에 등장해 유명해진 송가이 제국 등이 이에 해당되는데 심하게 말해서 국가가 부족연합 수준에 그쳤기에 유럽, 중국처럼 '국가차원의 상업 지원' 같은 것은 바라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이 동네에서 노예무역으로 유출된 인구감소 덕에 소비시장을 형성하기 힘들었던 탓도 있습니다.

분명 이 아프리카땅은 값진 금은보화가 거래되는 체험 돈의 현장이기도 했지만 백성 대다수를 위해 무역을 한다는 모습 같은 것은 찾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남아시아처럼 해군력이 약한 것도 한 몫 했습니다. 북아프리카면 바르바리 해적들이 유명하긴 했지만 제노바나 베네치아와 달리 이 해적양반들이 약탈이 아닌 '국가의 상업적 정책'을 위해 힘을 한데 모으는 일 같은 것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돈벌이에 눈이 먼 제노바가 100척이 넘는 배로 북아프리카계 도시국가들에게 몰려와 시위를 한 적은 있어도 그 반대의 사례는 없었던 것입니다.아프리카가 주류 얘기긴 하지만 바그다드 같은 도시에 자리했던 이슬람 얘기도 곁가지 수준으로 나오긴 합니다.
세계깡패 몽골은 이 부분에도 등장해 아바스 왕조를 비롯해 이슬람 세계를 갈아엎고 남송과 마찬가지로 시스템 리셋에 일조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요소'가 나타나는 것과 '자본주의 사회'라 부르는 것을 동일하게 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느 요소부터가 자본주의 사회의 탄생인가? 얼마만큼의 자본주의적 요소를 갖추어야 그걸 자본주의 사회로 부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현대 프랑스에서도 비자본주의적인 요소'를 찾으려고 맘먹으면 그런 요소 역시 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현대의 자본주의라 부르는 이념이 서양에서 탄생한 것은 지구의 다른 지역과 달리 상업, 권력, 군사력이 융합되었으며 그것이 자본에 대한 욕망을 품었을 때 지금의 자본주의의 모습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본주의란 다른 돈 많은 세상에서도 다른 조건을 충족하여 나타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기원이란 이런 것에 기인한다는 생각입니다..

2017-10-04 22: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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