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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미래“종이든 모바일이든 ‘진보’ 이름값 하는 좋은 콘텐츠가 답이다”


경향신문은 팔리지 않았다.
지난달 20일 오후 5시부터 한 시간 동안 종로1가 가판대를 맴돌았다. 중년 남성과 노인이 신문을 1부씩 사갔다. 하루 3부 갖다놓는 경향신문은 그대로 남았다.
가판대 앞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여기 신문이 22종이나 있다는 걸 모르겠지. 사람들 눈은 스마트폰을 향한다.

“경향신문 망할 것 같지 않아요?”
신문을 팔아서는 가판대 깔고 접는 수고비도 안 나온다는 주인 아저씨에게 자조 섞인 말투로 물었다.
“에이, 망하지는 않지!” 3개월차 수습기자인 나를 위로한다.
“인터넷으로, 휴대폰으로 읽잖아.
종이는 10년이면 거의 없어질 거야.

” 주변 가판대로 눈을 돌려도 상황은 마찬가지. 1시간 동안 7명이 음료를, 2명이 각각 초콜릿과 껌을 사갔다.
주인 할머니는 냉장고 빈자리에 음료를 채워넣었다. 신문은 팔리지 않아 정리할 필요가 없었다. 
신문 1부 가격은 800원. 주인 할머니는 600원이 신문을 가져다주는 ‘박 서방’ 몫이라고 한다.
1부 팔면 200원이 남는다.
이날은 400원을 벌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쏴야 5부 팔린단다.

한때는 하루에 100부를 팔았다고 한다.
20년 전 이야기다.
“신문 팔아봐야 종이값도 안 나오지 않아?
” 할머니가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40대 회사원은 퇴근길 아이와 함께 볼 영자신문을 샀다.
“온라인에는 얕은 정보밖에 없잖아요.
속보 말고 심층기사를 다룰 언론은 필요하죠.
” 작은 희망을 주고는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가판대를 유심히 쳐다보다 신문을 사진 않은 50대 김모씨는 말한다.
“전자책 나왔을 때 일반 책이 금방 사라질 것 같았죠.
실제로 물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죠.
종이신문도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더 반가운 손님을 만난 건 광화문의 한 가판대에서다. 

40대 직장인 ㄱ씨는 경향신문 1부를 사서 청록색 크로스백 안에 넣었다. 2년 전 스마트폰을 없앤 이후 매일 신문을 사서 읽는다고 한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오피니언면을 열심히 읽는단다.
오아시스를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아쉽게도 다시 목이 말라왔다. 
거리에 나가지 않아도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이 확 준 건 안다.
‘1%.’ 닐슨코리아 ‘2017 뉴스미디어 리포트’ 조사에 ‘한 달간 뉴스를 볼 때 이용한 매체’를 묻는 질문에 종이신문만 읽는다고 답한 비율이다.

나부터 기자 지망생 시절부터 신문 읽는 것을 썩 즐기지 않았으니…. 큰 흐름을 파악하고 싶다면 스마트폰으로 포털 뉴스 제목을 훑어도 충분하다.
읽을 만한 기사? SNS에 알아서 퍼진다.
힘들게 입사한 경향신문과 수습기자인 나의 존재 이유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사람들을 붙들고 ‘신문의 미래’라는 식상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웹을 보는 이들은 줄어간다. 모바일 독자가 확 늘진 않았다. ‘경향 뉴스’나 ‘뉴스 자체’를 외면하는 건 아니다. 기사의 플랫폼 유통도 언론사의 고민거리다.

■ 그들이 뉴스를 보는 법
 
종이신문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김모씨(32)가 일하는 공공기관에는 매일 여러 조간신문이 배달된다.
김씨는 신문 1면을 쭉 보면서 북핵 ICBM 관련 기사 제목을 어떻게 뽑는지, 어떤 이슈를 비중 있게 다루는지 관찰한다.
“전통신문의 장점은 ‘1면에 어떤 걸 보여주겠다’같이 지향점을 확실히 드러내는 거죠.
경향은 청년·민주주의 등 기획이 괜찮아요.
기획은 지면으로 보면 느낌이 확 달라요.

” 기자 지망생 송모씨(24)도 매일 신문을 읽는다.
같은 사안이라도 신문마다 제목과 맥락이 달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금준경씨(28)는 종이 맛을 아는 기자다.
‘미디어오늘’에서 미디어산업정책 분야를 담당한다.
팔을 뻗어 자신이 만든 종이신문을 펼칠 때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여기까지다.

금씨가 주요 일간지를 모니터링하는 방식은 정반대다.
“지면 스크랩 프로그램으로 봐요.
검색도 되고 편하거든요. 저도 기자지만 종이신문을 보는 데는 익숙하지 않아요.
온라인 뉴스는 담당 분야 지인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참고해요.
” 송씨에겐 신문사 지망생 외에 신문 읽는 지인이 있냐고 물었다.
“한 명도 없어요.
” 취업준비생 장모씨(27) 집은 10년째 일간지를 구독한다.
장씨가 보는 일은 거의 없다.

“흥미가 없어요.
다른 일도 많은데 굳이 신문 읽으려고 시간을 투자하고 싶진 않아요.
” 직장인 박성연씨(25)는 입사 전 취업을 위해 신문을 구독했다.
‘기득권’의 사고방식을 익히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면접 답안을 짜기 위해 일부러 보수성향 일간지를 골랐다.
취업과 동시에 구독을 끊었다.
예상한 답이지만 듣고 나니 울적하다. 

‘경향뉴스’나 ‘뉴스 자체’를 외면하는 건 아니다.
유모씨(28)는 3년째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고 있다.
유씨는 주요 언론사 홈페이지와 포털에서 뉴스를 본다. 종이신문을 보는 건 1주일에 한두 번. 대학 언론고시반에서 보거나 가판대에서 사본다.
“정기구독을 할까 했는데 자취생이라 돈도 없고 신문 보고 나면 쓰레기가 나와서 안 했어요.
스크랩도 인터넷이 더 편해요.

” 건설업계에서 일하는 임세현씨(32)는 틈날 때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주로 정치 기사와 사설, 만평 ‘장도리’를 본다.
“홈페이지가 많이 촌스럽긴 해요. 앱은 콘텐츠가 없어서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형식이 올드한 게 아쉽죠.
” 또 다른 과제, 걱정거리가 생긴다.
 
신문사의 경쟁 상대는 ‘신문사’가 아니다.
박성연씨는 출근 전 화장을 하면서 팟캐스트 뉴스 프로그램을 듣는다.
“업무 기사만 보면 현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잖아요.
현실 감각이 떨어질 것 같아 팟캐스트를 틀어놔요.
” 언론사 홈페이지, 포털, 팟캐스트, 페이스북 같은 갖은 플랫폼이 스마트폰 모니터를 놓고 경쟁하는 꼴이다. 

인테리어 기업 인사팀에서 일하는 김대원씨(30)가 말했다.
“‘내일 전쟁 날 것 같다’ 이런 속보는 네이버를 통해서 보고요.
출근할 때 좋은 기사를 소개해놓은 경제·정치학 전문가들 페이스북을 봐요.
전문가들이 ‘이 기사 한번 읽어보시라’ 평가해주니 믿을 만하죠.
” 김씨는 언론 전문성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 경향은 들어라 
경향신문도 신뢰 위기를 겪었다.
지난 5월 대선 전후 진보 성향 언론인 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를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한경오’라는 말이 번졌다.
입사 전 그 말을 들으면 그러려니 했다.
6월 입사 후 ‘한경오’는 달리 다가온다.
그저 넘길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임세현씨는 열렬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다.
‘한경오’에 할 말이 많다.
“요새 온라인 커뮤니티에 정치 기사나 기자 발언을 재생산한 글이 많이 올라와요.

그걸 보면 ‘한경오’가 쓰레기구나 싶죠.
사안을 왜곡하는 건 ‘한경오’나 다른 언론사나 다를 바 없잖아요.
경향은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편을 든 것 같아요.
홍준표, 안철수는 까지 않고 문재인은 작은 티끌 가지고도 뭐라 하는 느낌이에요.
” IT업계 종사자 박모씨도 경향신문에 ‘한경오’ ‘가난한 조중동’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경향신문이 거만하다고 생각한다.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나요?
내부적으로 ‘한경오’ 프레임을 고민했다고 하지만 미디어 소비자들은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그럼 그냥 노력 안 한 거죠.
” 그가 보기에 경향신문의 소통방식은 일방적이다.
‘한경오’ 비판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는다.
“비판이 나왔다면 공개적으로 기사를 썼어야죠. 경향신문이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공유해야 소통이 돼요.”

경향신문을 좋아하는 이들도 부족함을 가감 없이 지적한다.
언론사 입사준비생 유씨는 여성혐오를 다루는 시각을 예로 든다.
“경향신문은 적당한 수준의 진보지죠.
여성·환경·노동 문제에 관해 확실히 진보적 색채를 드러냅니다.
다만 공정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어요.
여성혐오를 부각하기 위해 사건을 제멋대로 재단해요.
남성혐오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그래도 경향을 보는 건 사회적 약자를 적극 대변하고 환경을 제대로 감시하는 언론이기 때문이죠.

” 취업준비생 조민경씨(28)는 젠더나 청년 이슈에 관심 많다.
경향신문의 여성 이슈 제기는 좋은 제스처라고 생각한다.
“경향신문은 젊고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은데 가끔 헛발질을 해요.
‘문제적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요.
이슈를 선별할 때 젊은 시각을 반영하지만 다루는 방식이 고루하다고 할까요.
기본 방향은 잘 잡고간다는 생각입니다.” 

200명에 가까운 기자들이 경향신문을 만든다.
정치·이념 성향이나 페미니즘·성소수자 등 사회문제를 보는 시선도 제각각이다.
여러 선배들은 5월 대선 때도 지금도 불편부당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젠더·여혐 기획도 고민을 반복한 끝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한경오’ 비판이 억울하다는 한 선배는 “대나무숲에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독자들과 머리를 맞댄 설득·해명·대화를 했다면 억울함이 핑계 아닌 진심으로 통했을까?
권력의 ‘불통’을 비판해온 언론이 정작 자신의 기사를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 건 아닐까?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널리즘, 미디어 문화, 매체비평을 연구한다. 언론 소비자와 기자들을 직접 만나 여러 책과 논문을 썼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기자들이 수용자들에게 좀 더 낮은 자세로 다가가야 합니다.
기자들이 건방지다는 인식이 많아요.
기자들은 정치인이 아니라서 수용자에게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럴 수 없죠.
기호에 영합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이 필요로 하고 보고 싶어 하는 뉴스가 무엇인지 공부해야 합니다.”

■ 어디로 가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 
입사 후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경향신문이 ‘진보지’라는 막연한 이미지만 갖는다.
어떤 의제에 주목하고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이름값’ 못한다는 소리다.
이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대원씨에게 경향신문은 ‘진보적이지만 덜 과격한’ 신문이다.
지면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다. 다른 신문도 마찬가지란다.
언론이 어떻게 변해야 존재감을 높일 수 있을지 물었다.
“가끔 일간지를 보면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종이 문제는 확실히 아니라고 봐요.
일간지는 다 얕고 넓게 다루는데, 굳이 차별점 없는 걸 볼 필요가 있는가 싶은 거죠. 뭔가 다르고, 또 깊어야지 보겠죠.”

금씨는 경향신문이 잘하는 것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부들부들 청년’ 같은 기획보도를 강점으로 꼽는다.
“경향이니까 앞으로도 더 젊은 느낌으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문이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줄 만한 시도를 했으면 좋겠어요.
” ‘경향이니까’ 한마디가 가슴에 훅 들어온다. 가능성을 알아주니 기분은 좋다. 

어쩌면 기자보다 신문을 많이 볼 기자 지망생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매일 신문을 읽는 송씨는 저출산과 육아 문제를 다룬 ‘맘고리즘’ 기획을 기억한다.
“페미니즘이라든지 사회적 약자라든지 앞으로도 경향만이 할 수 있는 걸 했으면 해요.
시대가 변해도 기본을 지키는,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쓴 기사는 통한다고 생각해요.” 

김 교수는 ‘신뢰’ 키워드를 제시한다.

“출처는 오래 기억되지 않고 결국 메시지만 남아요.

그럼에도 가장 믿을 만한 정보는 전통신문에서 나온다는 것을 신문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내용과 더불어 지면과 온라인에서도 새로운 형식을 찾아야 하고요. 유용한 정보를 다양한 포맷에 담아내는 종합정보매체로 나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아프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사람들이 건넨 모든 말들이 달다가도 쓰다.
두번째 형용사를 꼽자면 ‘갑갑하다’이다. 속보도 쓰고, 탐사·기획도 내보내야 한다.
특종은 말할 것도 없다.
텍스트도, 비디오도, 오디오도 해야 한다.
힘든 노동의 결과물을 홈페이지에도, SNS에도 유튜브에도 올려야 한다. 들어와보니 인력이 부족하다.
수습기자들은 이번 창간기획에도 여기저기 불려다녔다.
이 기사도 마찬가지다. 

“인스타그램까지 채널 6개 관리…‘뷰수’에 울고 웃고”.
사회부·정치부에서 오래 일하다 신설한 SNS팀으로 간 선배가 ‘SNS팀은 뭐하는 데야’라는 내부 일각의 차가운 눈초리에 어려움과 절실함을 토로하며 노보에 쓴 글 제목이다.
태어나서 처음 본 가산동 경향신문 윤전기도 떠오른다.
경향신문의 길을 구하는 거창한 기획에 동원한 선배들이 야속하다.
앞으로 더 험난할 미디어 생태계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왜 ‘경향신문’이어야 하는지 현장 취재와 좋은 기사로 증명하는 것 말곤 다른 답은 잘 모르겠다.
미래에 관한 고민은 잠시 미뤄두련다. 

2017-10-05 0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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