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가을의 보름달이 휘황찬란히 떠오르는 추석의 날이다. 강강수월래, 얼시구 절시구, 한 해의 결실을 모두가 즐기며 놀아나는 우리 한국민들의 명절이다. 그런데.....이곳에 와 산지도 44년이 넘는다. 한국의 명절이란 것을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다. 또 알아주는 것이 설날이라고 한다 마는 양력설을 쉐어야 할지 구정을 챙겨야 할지 망설이다가 유야무야 넘어간지가 그러한데 추석이란 것이 오늘이라고 해서 새삼스럽지가 않구먼.
말하자면 한국민족의 축제의 날이라는 모양인데, 한국을 떠나와서 쓸쓸히 살아오다 보니 한국땅에서 성묘니 제사니 하면서 온 나라가 들떠 설치는 것을 구경하다가 보면 어디 딴 세상에 내가 산다는 그런 기분이다. 열당의 내로세 하는 집필가들조차 일체의 즐거움을 잔 한마디도 비치지 않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 휩싸들어야 나도 같이 뭔가를 챙겨야 하거늘 그저 냉냉히 그리고 평일과도 전혀 다른게 없다가 보니 그저 그런 날이 왔구나 한다. 막걸리슨상은 송편이라도 사서 먹어야 하겠다고 한다만 그것 마저 사러가고 싶지가 않다.
결국 고향이 있어도 가볼 이유가 없고 명절이 있어도 즐길 건덕지가 없으니 이건 이국땅에 버려진 실향민의 신세가 아닌가? 내가 교회라도 다닌다면 명절의 특별기도와 헌금시간이 있겠고, 다른 날과 달리 송편, 약과, 차설기, 밤과 대추 그리고 각종 가을철의 과일들을 맛볼 수가 있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예수가 처녀잉태로 태어났던 말던, 사도신경이 '니케아'모임에서 결정됐던 말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건 말건, 예수가 물 위를 걸었던 말던,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했던 말던... 한국사람들 속에 섞여사는 것이 이럴 경우에 매우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이것 저것 이념적인 것에 매이다가 결국 동포들의 정서를 멀리하고 혼자서 잘난척 하다보면 외톨이로 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실상 그래 봤자지만. 이래 저래 팔자소관으로 치부해야 할까 마는 특히 명절을 당하고 나면 서글퍼진다. 늙어가는 때가 때인 만큼......
나는 가끔 내가 죽으면 누가 나의 죽음을 위하여 명복을 빌어줄까를 생각하곤 한다. 알릴 사람도 별로 많지가 않을 것이고, 장례식은 그저 장의사가 뭐라고 몇 마디 하는 것으로 끝낼 것인가? 적어도 예배당엘 다니면 목사나 신도들이 왁짜지껄 온갓 섭섭함을 기독교 의식에 따라서 줒어섬겨 줄 것이거늘...
이래 저래 너무 따지다 보면 이런 경우에 본전마저 챙기지 못할 우려가 있구만 그려. 그저 얼쑹덜쑹 미친척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을 한다. 예수도 믿고, 부처님도 섬겨보고... 어디 한국사람들 모이는 데에 나가서 "안녕하세오" 케싸며 웃어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것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던 말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