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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제무역에 比交優位論이 타당한가
작성자 zenilvana

Adam Smith가 주창하기를, 分業(분업)을 기계화하여 빠르게, 많이, 싸게 물건을 공급함으로 자본가는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다고 했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는 원재료와 노동비를 낮추어야 하는 요구가 따른다.

종전에 手工業(수공업)과 小農作(소농작)은 기계화와 경쟁이 않됨으로 대자본의 기계화에 매달리는 노동자로 변모할 수 밖에 없다. 자본가는 이들에게 최저수준으로 임금을 지급해야 경쟁에 이기고 또한 재투자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그 결과로 低勞賃(저노임)과 低消費(저소비)를 불러왔고, 국내시장에서 輸出市場(수출시장)을 찾아야 할 이유가 생긴다.

David Ricardo는 1817년에 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정치경제와 과세의 원칙에 관하여)이란 책을 펴내고 그 욧점으로 比交優位論(비교우위론)을 주장하였다. 뭔고 하니,

예로써 잉글랜드는 포도주 생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고 옷감 생산은 비교적 적은 비용이 든다. 포도주는 수공업에 속하는 농작물이므로 기후조건으로 유리함으로 옷감은 기계공업의 産物(산물)임으로 포도주를 포기하고 대신에 옷감을 수출하고, 포르투갈은 옷감생산을 잉글랜드에 맞김으로써 두 나라는 優位에 있는 쪽으로 수출과 수입을 해서 양쪽이 상대적 이익을 얻는다.

Ricardo는 공업국에서 태어나고 장성하여 증권시장에서 엄청난 돈을 벌고 일찌기 거대한 지주가 되어 한가해진 시간에 經濟學(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고 당대의 유명학자들과 書信(서신)을 주고 받고 하면서 위와 같은 논리를 펴게 되었다. 그의 친한 친구로서 James Mill이 있었고 다른 저명한 인사로서는 Jeremy Bentham과 Thomas Malthus가 있었다.

영국은 인도의 식민지와 Jamaica 등의 Caribbean, 남아프리카, 호주, 동남아의 원자재를 加工(가공)한 생필품들을 국제시장에 팔던 시절이었다. 특히 옷감의 원료인 면화는 인도에서 싼값으로 수입해서 옷감으로 수출한 경우가 比交優位에 합당한 理論(이론)이지만 여타 유럽국가들에게는 해당이 않되는 경우가 많았다.

산업화를 추진 중에 있는 여타 나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우세한 교역물이 존재하지 않는 형편에서 볼때 그의 이론은 我田人水(아전인수), 즉 '내 밭에 물대기'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 후진국들에게는 保護貿易(보호무역)이 정당화 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국제거래에서는 각나라의 화폐의 가치를 金덩이에 기준하는 金本位制度(금본위제도)인 고로 交易(교역)하는 과정에서 수입국들은 金을 영국에 더 빼았기는 不公正去來(불공정거래)에 당면하게 된다. 영국은 부자나라가 되고 그 남어지 수입국은 가난한 나라로 치닫는데. 이를 일러 Beggar Thy Neighbor, 즉 '이웃 거지 만들기'라 부른다.

이 말은 Adam Smith의 저술에서 언급되었던 것이다. 국내 경기하락과 고수준의 실업율을 초래하는 輸入(수입)을 高關稅(고관세), quota制 그리고 환률을 높임으로써 산업활동을 도리어 國內(국내)에로 전환시키려는 보호경제정책을 의미한다.

이를 Mercantilism이라고 하고 16세기에서 18세기에 횡행하던 한가지 무역정책이다. 한 나라의 경제활동을 규제하여 金과 銀을 최대로 축적하는 것을 목표로 상대나라를 희생시키는 정책이다. 이를 위하여 유럽의 강대국들은 특히 17세기 초에 식민지 만들기에 광분했고 결과적으로 전쟁이 잦아지게 되었다.

이런 정책이 결과적으로 오늘날에 북한이 미국을 帝國主義者(제국주의자)로 烙印(낙인)찍는 이유가 된다. 일본이 한반도를 자기네 식민지로 만들었고, 한 세기 100년이 지난 미국이 그런 나라라는 거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도리어 미국의 Free Trade Policy에 힘입어 경제대국이 되었고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의 뒷다마를 치며 수출한 덕에 세계의 제11번째로, 그리고 중국이 제2의 부강한 나라로 성장하여 미국을 깔보는 지경에 이른다.

그럼 미국은 어째서 "자유무역에 매달리며 빚쟁이로 손해보는 나라가 되었는가?" 그 해답을 다음의 몇 편에서 기대하시라.

禪涅槃

2017-10-07 09:57:08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1   zenilvana [ 2017-10-07 12:21:02 ] 

Waterloo海戰은 나폴레온이 영국을 제압하려 덤볐던 그의 마지막 전쟁이었다. Ricardo가 주식시장에 정보를 흘리기를 '자기는 영국이 이 해전에서 패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투자가들이 너도 나도 파는 것을 슬쩍 나타나서 모조리 산 값으로 사들여 모았다. 결국 나폴레온이 패하고 대서양 복판의 외딴 섬 Saint Helena에 귀양가서 죽었다. 승전의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모드들 사려고 아우성칠 적에 다 팔고 즉시 은퇴해서 주로 경제학에 전념하고 자기의 신념을 영국의 국회에서 입법화 하는 정치인으로 각광받는 일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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