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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Marx가 아니라 Engels가 공산주의를
작성자 zenilvana

자~ 아침운동은 했고, 점심도 먹었고, 차도 한잔 마셨고, 그리고도 시간이 남으니 집필인지 논문인지를 해야 할 참이다. What else do I kill with this leisure time productively, uh?

그리하야 자본주의란 거이 산업혁명과 발을 맞추어 나갈 적에 자본가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자본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원자재를 싸게 사서 가장 생산성의 좋은 기계를 설치해서리 노동자들의 노임을 최대한 적게 주고 나아가서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기계에 매달리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10살이 넘을까 말까 하는 어린 아이들까지 동원해서 소위 富益富 貧益貧(부익부 빈익빈)가 만연하다가 봉께루 사회가 두개의 계층으로 분리돼서 부자넘들은 자본가의 대열에 노동자들은 빈민들 대열에 서게 되었다. 앞에 말이 생소하다 할량이면 가난할수록 더욱 가난해짐'을 뜻하고 부자일수록 더욱 부자가 됨을 뜻함네다.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니겠오? 돈이 돈을 낳고 가난은 나라도 구제를 할 수 없다 합디다. 그런데 독일 사람으로 그래서는 않된다고 돌연 나타나서 영국의 Manchester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책을 썼읍니다. 그것이 1845년으로 "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 번역해 드리면 "영국의 일꾼 계층의 실태"라고 할까요, 그런 책을 출판했읍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의 재벌들의 새까이들은 불법상속에 갑질하고 떵떵거리는데 젊은 층은 일자리가 없어서 촛불시위를 해서 분노를 토하다가 국민의 반도 않되는 46%의 득표로 문재인 정객을 대통령으로 뽑았다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허드레 일감은 조선족이나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몽고, 필립핀에게 맡기고 맨날 띵까딩 땡까딩 놀기에 바쁜 처지에서 일자리를 마련해 달란다.

특히 조선족이라 불리는 몇십만명의 연변 교포들이 각가지 천대를 받아 가면서 하치노동을 감내해 나가는 그 모양새를 어찌 봐야 하는지? 그런데 1850년 중반의 경우는 오늘날의 북조선 인민이 당하고 있는, 아마도 그보다 더한 노예노동이라서 目不忍見(목불인견), 즉 눈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Friedrich Engels가 어째서 그리도 悲憤慷慨(비분강개)했어야 하는가? That I do not know. 그가 그래야 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아버지는 실을 뽑아내고, 그것으로 천을 짜는 직물공장을 운영하던 디게 부자인 자본가였다. Barmen이란 Prussia 도시로, 지금은 Wuppertal, Germany로 이름이 바꿨는데 그곳에서 문제의 인물이 1820년에 태어났다.

Hegel (1770–1831)이란 분 아시지요? 唯物論的(유물론적) 역사철학자지요. 고차원의 정신세계를 논하는 바라 나같은 철부지는 아는 척을 해봐야 웃음꺼리가 되는 고로 이거 하나만 거론하고 넘어갑세다. 그의 "the thesis, antithesis, synthesis"(正명제, 반명제, 합명제)라, 소위 辯證法(변증법 (, dialectics)이란 "이성적 토론",즉 한쪽 주장과 그 반대가 마주치는 가운데에서 생기는 모순을 통해 진리를 찾는 철학방법이란다.

이 辯證法은 중국의 陰陽說(음양설)에서 말하는 "세상은 陰과 陽이 마찰하면서 한 極(극)에 이르는 개념으로, 그 대표적인 상징인 태극기가 바로 그것이다. 문재통이 대화로 해결해야 하느냐 전쟁으로 나가야 하는 양 갈래에서 남북통일의 길을 찾고자 고민하는 것과 같다고 봐야 할지? 내 생각엔 대화하기는 이미 글렀고 디게 쎄게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멱살잡기로 이름이 난 우리 조상의 그 후예가 돼서 그런가?

하여간에 이 Engels란 사람이 Hegel철학에 심취하여 자본의 극대화는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이 착취로서만 가능한 19세기의 자본주의는 글러먹었으니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곳에서 불란을 일으켰고 나아가서는 공산당의 지하조직인 German Communist League에 가담한다. 1848년에 Karl Marx와 공동으로 "The Communist Manifesto", 즉 그 유명한 '공산당의 선언서'를 발표함으로 해서 자본주의가 찬 서리를 맞는 계기가 되었다.

Karl Marx도 Hegel철학에 경도되어 부조리한 사회체제를 비판하는 지방신문의 편집인이었다. 거기에 익명으로 기고하던 Engels가 평생의 친구이자 경제적인 후견으로써 Das Kapital이란 책을 19년에 걸친 연구 끝에 미완성의 경제학적 공산이론을 세상에 내어놓게 되었다. 이로써 지적으로나 경제 및 정치에 엄청난 영향을 끼첬다.

Marxism으로 통하는 골짜는 인간사회는 계급투쟁으로 발전한다. 특히 자본주의체제 아래에서 그 특징이 두두러 지는데 생산수단을 쥔 '부르주와층(The bourgeoisie)과 임금을 받고자 노동력을 파는 부류와의 갈등에서 나타난다. 이를 일컬어 유물론적 역사관이라고 부른다. 이는 궁국적으로 自滅(자멸)해서 새로운 경제제도가 나타날 것인즉, 이름하여 "사회주의"... socialism을 말한다.

자본주의가 어째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가를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설명하다가 1884년 3월 14일에 그 미완성의 주장을 Engels에게 넘겨주고 세상을 하직하였다. 실상 그러한 결론으로 이끌어 낸 장본인은 Engels였다. 왜냐 하면 그가 Marx로 하여금 이론적 근거를 연구하게 했고, 또 遺稿(유고)의 "자본론'을 4차례에 걸쳐서 보완 수정했기 때문이다. Engels가 죽으면서 Marx의 두 딸에게 그의 전재산 중의 상당부분(약 $4.8 million)을 남겨주었다.

그는 결혼은 여자를 억압해서 가족을 위하여 희생시키는, 사회제도를 반대헸고, 실제로 미혼여성과 수십년을 동거했다가, 그녀가 죽자 자기의 막내여동생과 부부로 살았다가 그녀마저 죽게되자 여자의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결혼해 주었던 괴짜였다. 이 사람은 시인이며 여우사냥을 즐겼고. 동지들을 불러서 주말마다 진탕 놀았던 자유분방한 천재로서 철학자, 사회학자, 언론인, 그리고 실업가였다.

그는 polyglot라고 여러나라 말을 쓰고 말했다. Russian, Italian, Portuguese, Irish Gaelic, Spanish, Polish, French, English and Milanese dialect에 능통했다 한다. 그가 Lenin으로 하여금 제정러시아를 전복하려던 제1차 반정부운동을 일으키게 도와주었던 고로 Lenin이 1917년의 '푸로레타리아'혁명에 드디어 성공하면서 Engels를 공산혁명의 영웅으로 추켜 찬양했을 정도다.

Stalin이 Lenin의 뒤를 이어 쏘련제국 뿐만아니라 북조선의 인민압제의 독재로 방향전환을 했지만서도, 북한의 공산주의는 사회주의도 아니고 봉건적 왕국이며, 그 곳의 붙잡힌 우리 동포들은 김정은과 그들 몇천명의 똘마니들을 위한 깡패집단이다. 조만간 스스로 궤멸할 것이 너무나 자명하다. 뭐 조선인민 민주공화국이라고?

修正(수정)자본주의라는 명목으로 자본가의 횡포를 세금으로, 독과점 방지로, 노동자들의 잉여노동(surplus labor)가치를 국가가 환수해서 백성에게 사회복지정책으로 나누어 주는 오늘에 이른다. 북조선의 정치집단은 인류역사에서 어느 구석에도 존재한 적이 없다. 자본주의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가 망한다. Maybe in few years, that is very certain.

禪涅槃

2017-10-10 11: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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