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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작성자 coffee

트럼프-김정은 설전은 개 짖는 소리”

스위스 투자은행 UBS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20%로 내다봤다.18일 UBS 자산운용의 지역 최고투자책임자(CIO) 켈빈 테이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보수적으로 높게 잡아도 20% 수준이라고 밝혔다.
 
 테이 CIO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설전에 대해 “두 마리 개가 서로를 향해 짖는 것일 뿐(It’s just two dogs barking at each other)”이라며 “김정은이 자신의 적에게 진짜로 미사일을 발사할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유신스럽다는 기사

다른 기사를 보니 6.25 직전 군에서 약 5%가 빨갱이었고 모두 총살당합니다.
이 와중에 자신의 빨갱이 동료 리스트를 밀고하고 극적으로 살아 남은자도 있답니다.
그 이름 위대한 박정희 가카이십니다.

아침 이슬’은 1973년 정부가 선정한 건전가요가 되었다가 이태 후에는 금지곡의 목록에 오르는 등 롤러코스터를 타야 했다.
일반인들이야 ‘아침 이슬’을 유행가의 하나로 즐겼을 터이지만, 때는 1970년대였다. 건전가요에서 금지곡으로의 급전직하는 시대 상황 말고는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노래가 발표된 1970년 이후 정국은 심상찮게 격동하고 있었다.
그 전해인 1969년에 박정희는 3선개헌을 통해 영구집권의 걸림돌인 연임금지 조항을 없앴고, 1971년 7대 대선에서 신민당 후보 김대중을 힘겹게 꺾고 삼선에 성공했다.
이듬해(1972) 폭압적 유신체제의 출발을 알리는 10월유신이 선포되었다. 정권은 1974년 1월부터 이른바 ‘긴급조치’를 잇따라 발동하여 교수, 학생, 언론인, 종교인, 문인 등 민주인사들을 투옥하거나 해직시켰다. 이에 대해 야권과 시민사회는 1974년 11월, ‘민주회복국민회의’를 결성하면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황당한 금지 사유, 그 시대가 그랬다 아침 이슬이 금지곡 목록에 오르게 된 1975년은 그런 시기였다.
당시 금지곡으로 묶인 2천여 곡에는 제각기 사회 통념 위반, 근로 풍토 저하 따위의 금지 사유가 명시되어 있었지만 ‘아침 이슬’에는 금지 사유조차도 없었다.

뒷날 밝혀진 금지 사유는 한편의 희화다.
‘아침 이슬’은 불법적 민간인 사찰을 통해 정권을 떠받치던 기관원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해석되었다.
문제는 그 상상력이었다.
그런 이유를 창안해 낸 기관원들의 공안적 상상력은 연면히 계승되었다.

"가사 맨 처음 등장하는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에서 ‘긴 밤’이 1970년대 당시의 유신정권을 의미한다는 게 나중에 밝혀진 금지 이유였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아침 이슬>은 1970년에 이미 발표됐고 유신은 1972년 10월에 선포됐다.

금지시키기 위해 억지로 갖다 붙인 황당한 이유쯤 되겠다.
"기사 ‘<아침이슬>이 금지곡 된 사연, 정말 유신스러워’에서 재인용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관이 불허한 음악은 불리기 쉽지 않았다.
방송이 금지되면서 ‘아침 이슬’은 제도권에서 완벽하게 외면당했다.
운동권 집회와 시위 등에서 대중의 사랑을 이어온 ‘아침 이슬’이 해금(解禁)된 것은 1987년 ‘6·29선언’ 이후였다.

우리가 ‘아침 이슬’을 배우고 부르게 된 것은 아마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1972년 이후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에게 ‘아침 이슬’은 그리 특별한 노래는 아니었다.
유신독재라는 정치 상황에 어두웠던 지방 고교생에게 그것은 양희은이 부른 심상한 노래 가운데 한 곡이었을 뿐이었다.
당시는 이른바 ‘청년문화의 기수’라고 불린 통기타 가수들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당시 중고생들에게 가장 멋있는 그림은 통기타와 ‘야전’이라 불린 포터블전축 따위를 메고 ‘캠핑’을 가는 것이었다.

도시 근교의 유원지로 가는 역이나 버스정류장에는 으레 차를 기다리면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젊은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1970년대, 어둡고 긴 터널 내 주변에도 그런 여유를 일상으로 부리던 급우들이 없지 않았지만 기타를 연주하며 과장된 발음으로 팝송을 노래하던 그들의 문화는 내게서는 먼 것이었다.

그들이 누리는 여유를 부러워하고 그들처럼 멋들어지게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은 그 시절 모두의 것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우리가 ‘아침 이슬’보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이나 이장희의 ‘그건 너’, ‘한 잔의 추억’ 따위에 더 심취했던 것은.
그들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젊은이들은 길고 긴 유신 독재의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오마이뉴스>

2017-10-18 10:39:29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6   coffee [ 2017-10-18 14:53:28 ] 

bibliatell님 말씀처럼 물론 모든 인간은 양면성을 갖고 있고
죄성도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보통의 사람은 본능으로서도 그도아님
교육의 힘으로 나만이 아닌 너를 인지하고 같이 사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보통사람일 것입니다만 네가 티가있지 난 티없어 난 깨끗해맑아 이런자들을 우리가 네가티브한 자 세상에 필요가 없는 정도가
아니고 없어져주면 고마운 존재일 것입니다.
나는 성정이 울뚝불뚝해서 잘 들이박지만 내가 판단해서 나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면 완전히 맛탱이 간 자 말고는 내가 양보하지만
나보다 강한자가 옘병떨면 예외없이 들이 박습니다.
나중에 손해를 보는것이 분명해도,ㅋㅋ

5   coffee [ 2017-10-18 14:39:39 ] 

사람은 자라온 환경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다는 생각입니다.
결손 가정이나 화목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삐딱하게 성장 할 확률이 높듯이 일본인이라서, 중국인이라서
어떻다 이런 구분을 하는 것 질색입니다.

마찬가지로 양반집 자손입네 그도 아님 상넘의 자손이니 유복한 부모를
두었으니 가난뱅이 부모를 두어서 아쉽다 어리고 철없을 때는 해볼 수 있는
것이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하다면 ??

자라온 환경과 부모로부터 어떠한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미루어 짐작된다는
말입니다.
달리 어릴때부터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고 같이 사는 세상에서의 일원이 아니고
쓰러뜨려야 하는 적으로 더럽게 배우고 그것이 머리에 각인된 쓰레기라는 생각입니다.
맹모 삼천지교! 이런말이 그냥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

4   ibuprofen [ 2017-10-18 11:53:50 ] 

여기에 날마다 글을 게시하는 coffee라는 자는 처음에는 지방색에 성격 이상으로인한
우울증을 앓으며 대인 기피증 결혼 혐오증을 가진 중증 조현병자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한국인이 아니고 africa인이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왜냐하면 같은 한인이라면 어쩌다 한번쯤은 한인의 우수성이나 동족으로서의 동포애
정도는 말할텐데 단 한번도 그런 글을 본적이 없고 배운 자 같지만 쉬운 한글 철자법도
자주 틀리고 오타라고 생각 안되는 이유 반복해서 틀립니다.

아마도 africa에서 파견한 한인들끼리의 불화와 반목조성 목적을 갖은 자라는 생각이
강하게듭니다.
달리 적전분열을 획책하는 일본인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생각!

3   bibliatell [ 2017-10-18 11:52:28 ] 

본 글을 쓴 사람이 72년도에 고등학교를 입학한 모양이군 그래. 60쯤 됐것구만. 74년도에 강원도 치악산 똥팔사 기슭에서 가슴으로 아침이슬을 부르며 박박 기었던 생각이 나는구만. 이 노래의 힘으로 그 고된 훈련을 마칠 수 있었는디. 나쁜 쉐이들.

2   bibliatell [ 2017-10-18 11:42:03 ] 

나도 그런 생각을 해 왔는디.아니면 네가티브적 성격의 소유자. 사람 좋은 것과 네가티브적 특성은 완전 다르다는 것 다 아시죠? 문제는 한 인간이 이 둘을 다 소유할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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