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생각나는 두 사건이 있으니, 하나는 2007년 4월 16일 오전 7시경 한인 학생 조승희가 저질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Virginia Tech massacre)이요, 또 다른 하나는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신효순·심미선양의 사건이다.
기억속의 첫 번째. 범인 조승희는 당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영주권자로서 버지니아 공대 영문과 4학년생으로 재학중이였으며, 조승희가 저질은 이 총기 사건으로 범인을 포함 33명이 총상에 의해 사망하였으며, 29명의 부상으로 미 역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 사건 중 하나가 되었다.
사건직후 당일 노무현 대통은 청와대에서 이 사건을 보고받은 즉시 한-이탈리아 정상회담 기자회견의 모두발언을 통해 '깊은 애도와 유감을 표명하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였다.
그러함에도 이 사건은 여러 후유증을 수반한바, 대다수 한인들은 혹시나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였고 길거리 나설 때도 괜히 주위를 살폈으며 어수선한 분위기는 여러 날 지속 되었다.
한편, 버지니아 공대 부근의 한인들은 이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해 촛불 등 물품을 제공하는 등 피해자들을 위로하는데 노력하였으나, 일부 영자 언론은 이 사건은 범인 개인적인 사건으로 전체 한인들과 아무른 연관이없다며, 오히려 한인들의 과민반응을 자제해달라 부탁하였으며 실지로 혐한테러같은일들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사건 한 달여 후 서서히 대부분 평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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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2002년 6월 13일,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신효순·심미선양의 사건.
당시 월드컵 경기가 막 시작 되어 첫 번째 폴란드전에서 한국팀이 승리하고 대 포르투칼 전을 하루 앞둔 시기라 '때한민국*****' 이 응원 매세지가 천지를 진동하며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져 있었던 그런 분위기의 6월 13일 오전 10시 45분경, 경기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 옆을 지나던 신효순양과 심미선양이 같은 방향으로 진행 중이던 미 2사단 44공병대 소속 장갑차에 치여 현장에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 수습을 위해 대니얼 자니니 미8군 사령관은 성명을 내고 "우리는 이번 비극적인 사고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며 철저한 조사를 약속한다"고 말하였으나 피 끊는 운동권에서는 왜곡된 시각으로 이 사건을 접하여 극렬한 반미 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반미 분위기속의 미 군사법정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배심원단은, 기소된 미군 2명 모두에게 공무를 행하던 중 발생한 과실사고임을 근거로 무죄(not guilty) 평결을 내렸으며 무죄 평결 5일 만에 사죄 성명을 발표하였으나 극렬한 반미시위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미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였다.
결국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은 이 사건에 유감을 표명하게 되었으며 신이 난 북한은 평양 모란봉 제1중학교에 신효순, 심미선양을 '명예학생'으로 등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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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주한 미국인의 아들이 한국의 어느 학교에서 조승희와 같은 테러가 발생 하였다면 도대체 어찌 되었을까?
효순·심미선양의 사건 발생 10여 년 정도 후, 미선 양의 아버지는 "사고를 낸 미군도 이젠 편히 지내길 바란다. 그 미군들이 우리 애들이 미워서 고의로 낸 사고가 아니지 않느냐 얼굴도 모르지만 그 미군들도 이젠 마음의 짐을 덜고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미 운동권은 사건 20여 년에 이르는 이날 이때 까지도 미순.효순 앞세워 그들의 운동권 확장에 안간 힘을 다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