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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집값은 우리 소득보다 빨리 오를까? 대박 이야기...
작성자 coffee

왜 집값은 우리 소득보다 빨리 오를까

새로운 경제 추구하는 영국 경제학자들 영국 사례 통해 ‘주거 자본주의’ 해부 국내총생산 70% 넘는 부동산 대출“소득 아닌 부동산이 불평등 척도”

땅과 집값의 경제학
“지난 세기에 걸쳐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다른 대출에 비해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1928년과 1970년에 은행에서 1순위로 여긴 업무는 사업체에게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7년, 거의 모든 나라의 은행들은 주로 부동산 담보대출 업체로 변했다.
“미국과 영국 경제에서 주민들은 엄청난 빚을 안은 채, 투기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개인의 이동성을 저해하는 고정자산에 투기하는 사람들이 되었다.”(마틴 울프, 2008년)

조시 라이언-콜린스 등 사람 중심의 새로운 경제건설을 추구하는 영국 경제학자들이 함께 쓴 <땅과 집값의 경제학>(원제 Rethinking the Economics of Land and Housing, 2017)의 제5장 ‘땅과 집은 어떻게 금융화가 되었는가’ 서두에 올려놓은 이 인용문들은 이 책의 핵심내용과 문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인용문에서 얘기한 주택, 부동산은 ‘땅’으로 바꿔놓을 수 있으며, ‘거의 모든 선진국’에는 한국도 포함된다.
주민들 대다수가 고정자산(주로 부동산) 투기자가 된 나라는 미국, 영국만이 아니다.

이 책 제1장 ‘땅은 집값 상승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서 저자들이 책을 쓴 이유로 제시한 다음과 같은 의문들에 대한 답도 이들 인용문에 그 핵심내용이 담겨 있다.
선진경제 시스템(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에서 소득증가와 경제성장 속도보다 집값이 더 빠르게 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집을 더 많이 짓거나 인구가 줄면 해결될 문제인가?

왜 일부 정치인들이나 정책 결정권자들은 집값이 내려가길 원치 않는가?

그리고 왜 집값이 내려갈 수 있도록 조처를 하지 않는가?

땅의 소유권은 왜 그렇게 일부에게 집중돼 있고 부의 불평등은 왜 그렇게 빨리 심화되나?

사회가 집과 땅 소유를 부자가 되는 최고의 방법으로 여기고 갈망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은행이 사업체와 생산적인 투자활동 대신 부동산과 땅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가계부채가 이토록 높아진 이유는 무엇인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땅의 가치는 생산기술, 부의 분배, 경제적 불평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땅과 위치(부동산)는 왜 현대경제학에서 중요하게 간주되지도 않고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는가?

그리고 왜 국민계정에 이들이 포함돼 있지 않은가?

아마도 독자들은 대체로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대강 알고 있을 것이다.
<땅과 집의 경제학>은 저자들이 살고 있는 영국의 사례를 통해 그 메커니즘을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그것이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주요국들이 선도해온 ‘주거 자본주의’의 도달점이며,

그것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 역사와 주요국 실태 및 정책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핵심 문제이자 고민거리이기도 한 이들 문제는 보수정당을 비롯한 일부 기득권층이 왜 극단적 반공주의 선전문구까지 입에 담으면서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정파들을 매도하며 과도한 권력투쟁에 몰입하는지, 그 배경과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

결국 그것은 땅(부동산)으로 부를 쌓아올린 이들의 기득권 유지 전략이자 정권교체로 인한 기득권 상실 가능성에 대한 일종의 공포 내지 초조감의 표출일 수 있다.

책은 이야기를 15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공유지의 사유화, 즉 ‘엔클로저’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의 핵심주제인 주거 자본주의의 폐단도 거기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땅의 사유재산화에는 경제적 장단점이 있다.
토지의 사유화는 이윤동기와 경쟁을 자극해 생산력을 해방시켰고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 헨리 조지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의 사상적 토대가 됐으며,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미국을 만든 이들의 건국이념의 밑바탕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사유재산제를 지지했지만 불로소득(지대)의 원천인 땅 소유권에는 반대했고, 피에르 프루동 등 사회주의자들은 땅 등의 사유재산이 만인 공유의 것을 “도둑질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자들이 요지에 땅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이 일궈놓은 부(가치)의 상당 부분을 지대 형태로 가져가버리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20세기 초반에 대두한 신고전경제학, 즉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은 산업혁명 이후 농업생산의 원천이던 땅이 산업생산의 근거지로 바뀌고 주요산업이 공업생산과 서비스 쪽으로 이동하면서 생산과정에서 땅의 역할이 모호해진 걸 반영해 그 이론에서 지대와 땅을 소외시켰다.

그 결과 각국 정부들은 땅과 부동산에 부과하는 세금을 폐지하는 대신 징세 대상을 소득과 지출 쪽으로 바꿨다.
유럽 사민주의 모델은 이런 흐름을 더욱 굳혔다.
2차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의 자본주의 번성기가 끝나고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진 뒤 집값은 폭등과 폭락을 오가며 요동쳤다.

1980년대에 등장한 신자유주의체제하에서 주택담보대출이 활성화되면서 개인의 주택소유 관문이 넓어졌고 주거 자본주의의 길이 열렸다.
영국의 경우 정부의 주택공급을 중단하고, 개인이 지대를 지불하거나 시장에서 집을 살 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바꿨다.

금융규제 완화와 주택(부동산)담보대출 활성화는 주택가격 등귀와 소득 증대 효과를 가져다주면서 한계에 봉착한 영국 자본주의 성장에 숨통을 틔워주는 효과도 냈다.

그러나 규제 완화 확대와 통신기술 발달 등에 따른 금융혁신과 함께 은행들이 생산활동 투자보다는 부동산, 특히 주거용 집(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주택담보대출을 주 수익원으로 잡으면서 지대는 은행과 토지 소유자 등 가진 자들에게 독점적으로 집중됐다.

그리하여 주택시장과 토지경제 전반이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적 불평등,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는 주거 자본주의가 일반화됐다.
공공복지 약화와 주택 가격 상승에 따른 소득 증가를 근간으로 하는 개인복지 강화로의 전환도 이런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이는 공공분야 노조 등의 반대파를 견제, 제거하고 토지 소유자 중심의 유권자들을 지지기반으로 삼으려던 마거릿 대처 보수당 정권 등의 정치적 계산과도 밀접히 얽혀 있다.

이제 은행은 부동산 담보대출 기관이 됐고 집은 노후와 자녀를 위한 자산이자 대출담보 자산, 투기적 금융자산이 됐다.
영국의 경우 땅과 관련된 대출(건설자금 제외)이 1986년에 국내총생산(GDP)의 30%였으나 오늘날엔 70~80%에 달하며, 1990년 이후 은행의 총대출 중에서 부동산 담보대출도 40%에서 60%로 높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 국가 평균 상위 10%의 가구들 자산이 전체 자산의 50%를 차지하고 상위 1%의 자산이 전체의 18%를 차지하며, 상위 10%의 자산이 하위 50% 자산 총량의 5배, 하위 10% 자산 총량의 875배가 되는 이른바 ‘1 대 99의 세계’ 창출에 바로 이런 주거 자본주의 메커니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집세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주택 소유자가 됐고 집세를 받아 이득을 얻는 경험을 직접 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오늘날 지대추구경제의 수혜자들은 땅을 가진 극소수의 귀족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수의 평범한 주택소유자들이다.

이 중에 ‘주택이라는 부’를 이용하여 많은 부동산을 획득하고 소유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에게 주택을 임대하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 삶의 불평등, 그 시작은 땅과 집”이었고, 오늘날 주요국들 “불평등의 경계선은 소득이 아니라 부동산 소유 여부”가 됐다.

지금 한국의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 대비 95.6%에 달하고, 전·월세를 노리는 수많은 오피스텔 등 임대용 건축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우파 정치가나 기관장, 지자체 단체장이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적 경쟁자들을 노골적으로

‘종북 빨갱이’로 몰아가며 혐오감과 증오를 부추기는 것도

바뀐 정치상황으로 인한 기득권 상실 가능성에 대한 공포 외에 주택 소유 유권자들을 기성질서 옹호자,

즉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간주하는 관념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장애아 특수학교 건립이냐 한방병원이냐를 둘러싼 주민 분쟁도 사는 집이 금융자산화한 주거 자본주의 사회가 빚어낸 풍경이다.


이런 주거 자본주의는 지속 불가능하다.

상층의 독점을 가능하게 하는 중·하층의 소비능력과 부채가 감내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면 체제 전체가 붕괴한다.

그럼에도 이런 모순의 원천인 땅·주택(부동산) 투기 위에 구축된 주거 자본주의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은 유권자 다수가 부동산 소유자가 돼 있는 현실에서 그 체제의 유지를 바라고 언젠가의 ‘대박’을 꿈꾸는 강한 풍조가 있고, 정치가 등 유력자들이 그들을 집권과 정권유지 방책으로 삼고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건 정치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부동산이 야기하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토지의 공적 소유 강화, 토지가치세 부과 등 조세제도 개혁, 부동산담보 대출기관이 돼버린 은행 역할 변화, 저비용 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을 통해 부동산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동산을 국민계정에 포함시키고 경제학과 경제정책에 주거 자본주의의 핵인 땅의 역할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저자들은 얘기한다.

다른 이야기

촛불 이후 노동정책의 드라마틱한 변화
“문재인 대통령, 공항 간다면서요?”
대선 직후인 지난 5월12일, 여느 때처럼 아침에 출근해 노트북을 열었다.
정치부가 보고한 문 대통령의 인천국제공항 방문 소식이 눈에 띄었다.
급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관계자한테 연락했다.
사실이었다.
“곧 도착할 예정”이라며 방문행사 직전의 현장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푸른 펼침막에 쓰인 행사 제목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습니다’를 보니, 순간 기분이 멍해졌다.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하기 8일 전, 그러니까 19대 ‘촛불대선’ 닷새 전이던 5월4일 <한겨레>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비정규직 1위 인천공항…“대선 지나면 나아질까요?”’였다.

인천공항은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고용 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공간이다.
‘비정규직 해결’ 공약이 쏟아지던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인천공항 비정규직 목소리를 담아 기사로 썼다.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았다.
기사 때문에 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약속하고, 인천공항공사 사장이 “연내 전원 정규직화”를 발표한 것은 아니겠지만, 관련 기사를 썼던 나로서는 기분이 묘했다.

8년 동안 이어진 ‘직접고용 정규직화’라는 노조의 주장이 이제야 현실화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다.
이전 정부 시절, ‘노동 기자’로서 결코 느낄 수 없던 감정이었다.
지난해 4월, 출입처를 ‘노동’으로 옮겼다. 처음 출입처를 배정받고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했던 고용노동부를 출입할 때는 공무원과 전화통을 붙잡고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적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지난 정부에선 마구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노동자 동의 없는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합법적 절차를 밟아 시작된 전국철도노조 파업은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법원은 대체로 당시 고용노동부 주장이 ‘틀렸다’는 판결을 내놓고 있다.
국회가 배정해 한국노총에 지원될 예산이 ‘노사정 대타협을 깼다’는 이유로 집행되지 않는 일도 벌어졌다.(이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취재할수록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노동 기자로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목격하는 사이, 촛불이 타올랐고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문 대통령은 ‘노동 존중 사회’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많은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 부당노동행위 근절, 원청 책임을 강조한 산업재해 예방 대책,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
취임 100일 기자회견 땐 속시원한 기분도 들었다.

노동 기자로 일하면서 가장 ‘열받는 일’이었던 부당노동행위를 강력히 처벌하겠다고 문 대통령이 밝히던 순간이다.
역대 정권에서 ‘이상적’ 또는 ‘원칙적’ 목표로 제시되었을지언정 현실화되진 못했던 ‘전향적 정책’이 실제로 이어지고 있다.

촛불 이후 점점 고립돼 가는 민주노총

노동권 확보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지금껏 가장 앞자리에서 싸워온 이른바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의 고립은 또다른 측면에서 극적으로 다가왔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남발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던 주체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부당노동행위나 산업재해 대책 등도 노동계가 수년간 외쳐온 의제였다.

민주노총은 수많은 촛불이 광장에 모일 수 있도록, 밑거름 구실도 맡았다.
촛불이 횃불이 되기 이전엔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회원이 광장을 메웠다.
시민들은 민주노총에 전화를 걸어 촛불집회에 대해 문의를 하거나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집회가 거듭될수록, 광장에서 민주노총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
지난해 11월12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이를 목격했다.
그보다 한 해 전,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쓰러졌던 바로 그 집회였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당시 민중총궐기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각별한 의미가 있는 집회였지만, 민주노총 대표자나 조합원을 바라보는

시민 눈길에선 차가움이 느껴졌다.

노조 대표자가 무대 위에 올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만든 ‘재벌과 정권의 유착’이나 그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해’를 말할 때, 아니면 구속된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그만 좀 하세요, 그만 좀.”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데 왜 ‘다른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당시 소설가 김영하씨는 <한겨레>에 기고한 르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 규모의 집회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보다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이다.
그들이 월급에서 떼어 꼬박꼬박 납부한 노동조합비가 없었다면 양초를 구입하고, 음향 시설과 대형 방송차를 대여해 곳곳에 적절히 배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쩐지 조금 주눅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집회를 기획하고 주최했음에도 언론에 의해 ‘순수한’ 시위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비치고 있었다.”
대선이 끝난 뒤,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은 강도를 더했다.
6월말 한 남성 독자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50대로 추정되는 그는 출근길에 전화를 걸어 따져 물었다.

“민주노총이 지금 파업을 할 때입니까”, “

지난 정권에서는 아무 말 못하다가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겁니까”,

“민주노총이야말로 귀족노조 아닙니까”.

당시 민주노총이 준비하던 파업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10만명이 대선 전부터 준비했던 것이고,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더 거센 탄압을 받으면서 싸웠다고, 민주노총에도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고 답했다.
독자는 선뜻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지난달 24일 청와대 초청 만찬 불참은 민주노총에 대한 들끓는 비난에 기름을 부었다
. 가까운 민주노총 관계자한테 물었다.

“청와대에 왜 안 가신 거예요?”
“조직논리와 명분 싸움이죠, 뭐.
어쨌든 받지 않아도 될 비판까지 사서 받고 있는 꼴입니다.
” 그의 목소리에서 갑갑함이 느껴졌다.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2017 촛불 1년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함께가자! 비정규직없는 세상''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노조 필요한 이’들 손잡고 일터 민주주의 위해 싸워주길

촛불을 함께 들었던 이들이 이제는 ‘너도 적폐’라며 민주노총에 가하는 비판은 분명 정도가 지나쳐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노동계가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과의 간극을 제대로 메우지 못해 빚어진 것이라는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 노동단체 활동가는 지난 촛불에서 노동계가 보여준 모습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시민들은 국정농단 세력과 재벌의 반칙과 특권, 불평등 문제에 분노해서 광장에 나온 것인데, 민주노총은 재벌, 재벌이 만드는 비정규직, 갑질 등 노동문제를 제대로 제기하지 못했다.
이를 통해 시민들이 몸으로 느끼는 일터의 불평등, 민주주의의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촛불 이전부터 노동계에 제기됐던 비판도 마찬가지다.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한 상황에서 노조는 이미 ‘기득권 세력’으로 호명되고 있다. 무엇보다 일부 대공장 정규직 노조는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연대의 원칙을 저버리며 고립을 자초했다.

지난 4월 기아차 정규직 노조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노조 테두리 밖으로 내몰았다.

한국지엠 노조 간부는 지난해 11월 정규직 채용을 미끼로 돈을 받아 구속되기도 했다. 국제노동기준에도 못 미치는 한국의 법제도와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사용자들을 탓하기에 앞서, 노동계가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노동계에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내 삶과 가까이에 있는’ 노조에 대한 인식과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노사관계 국민인식조사’(2017)를 보면, ‘노조를 통한 사회 불평등 완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1987년 민주항쟁 이후(1989년) 수준으로 ‘회복’됐다.

시민들은 노조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고용 안정에 기여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힘써주길 기대하고 있다.
노조가 ‘부당한 대우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10년 전에 견줘 두배나 치솟았다. 이 연구를 맡은 연구자들은 이런 시민들의 인식변화 원인으로 “촛불과 촛불로 탄생한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꼽았다.

한 노조 활동가는 “민주노총이 실제 미가입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말로만 비정규·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말할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투자해 저임금·비정규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노조 가입 사업을 해도 모자랄 판”이라고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노동계의 이런 고민과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노조 조직률’을 어떻게 올릴 것인지, 광장에서 외쳤던 민주주의를 일터에서 어떻게 뿌리내리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왜 우리 투쟁을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이해하지 못할 화법과 납득하지 못할 수단으로 명분과 당위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노조 자체가 생소하지만, ‘우리 회사에도 노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하는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듣고 다가서기를 바란다.

노동계가 수년째 요구해온 내용을 정부가 이행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10일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에서 촛불을 언급하며 “정치와 일상이, 직장과 가정이 민주주의로 이어질 때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에서 민주주의로 훈련될 때, 민주주의는 그 어떤 폭풍 앞에서도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촛불로 정권이 바뀌었다.

이제 우리 삶과 일터를 바꿀 때라고 믿는다.
촛불로 탄생한 정부가 촛불의 요구를 채우라고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정부를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일터를 민주주의로 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찾아나서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온통 우울한 이야기투성이였던 나의 출입처이자 일터, 그러니까 ‘노동판’에 좀더 희망찬 이야기들이 가득하기를 나는 소망한다.
<한겨레>

2017-11-02 20:46:03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6   coffee [ 2017-11-03 10:08:54 ] 

ㅎㅎㅎ 둘 다 제글 아니고 신문 기사 내용입니다.
처음 기사는 기자가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이고 나중 글은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둘다 공감가는 내용이라 옮겨 봣습니다.
너무 길어져서 누가 끝가지 읽을까 싶었는데 도움이 되셧다면 다행입니다.

5   zenilvana [ 2017-11-03 08:07:07 ] 

경제학 분야의 논설이 내게 시사하는 바가 많오. Coffee슨상이 쓰신 거라면 대단한 학자인양 여겨집니다.

뒤에 따르는 "한국의 노동문제"와는 상관이 없는 내용임으로 앞부분과 따로 떼어서 두편으로 발표됐으면 더 좋을 번 했읍니다.

다시 부동산 및 토지의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본문에서 지적한대로 한국의 가계부채가 엄청 증가해왔읍니다. 지난 반세기동안에 경제발전에 따른 인플레로 인하여 부동산의 가치가 높아져 왔지요. 왜냐하면 수출 위주에서 발생한 통화량을 기업활동으로 재투자하기는 어려웠읍니다.

그 이유는 재벌 위주의 경제성장으로 시작한 일인지라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중 내지 소기업을 계열화 하는 식으로 창의력의 말살을 초래했읍니다. 따라서 대기업이든 일반인들이 강남의 부동산 붐에 참여하여 일확천금을 하는 쪽에 눈을 돌리게 됐읍니다.

이런 움직임에 편승하여 지방에 살던 사람들이 대거 서울로 집결하는 풍조를 타고 아파트 건설이 호경기를 탔었고, 그로 인하여 부동산을 사놓으면 돈을 벌게 되었읍니다.

역대 대통령이 이런 경제풍조를 조장하여 재임기간에 좋은 치적의 결과로 내세웠고, 그를 지지했던 당마저, 주로 자유당이었던, 국회를 석권하기에 이릅니다.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도 이에 동참해왔읍니다.

결과적으로 가계부채로 아파트를 장만하는 것이 서민으로서 유일하게 치부를 하는 방법으로 통용돼서 이번 문재통 정권도 미봉책으로 구호만 무성했지 실제로 그 근본부터 새로 교정하질 못하고 있어요.

왜냐? 지금 70%의 인기율의 밑바닥에는 이렇게 돈을 번 중산층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이란 암적 존재가 이미 그 정도를 넘어서서 자본주의의 근본원칙을 위배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은행들은 차용자가 자기 수익을 훨씬 넘는 부채를 따지지 않고 기득권자의 끄나플이나 "겉으로 보리에 돈깨나 있는 사람들"에게 무한정 융자해주고 있오. 보나 마나지. 부익부 빈익부의 이치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읍니다. 적폐청산이란 것은 근본의 부정을 청산해야 하거늘......앞길이 암담할 수 밖에 없지요.

4   coffee [ 2017-11-02 21:54:52 ] 

상한애야...
가만히 생각해보니 너를 어디선가 본 듯하다.
임란때 왜군들 조총 딱아주고 , 병자호란 때는 청의 따까리 했다가
그 후로는 무당 푸닭거리로 연명하다 일제때는 박정희 따가리 하면서
독립군 위치 제보해서 연명하다가 6.25때는 북괴하수인 하면서
제가요 부르죠아고요 하다가 월남전에서 탄피 주워 팔다가
미국행 상선에 쥐마냥 몰래 타고 여기 기 들어왔지 너
콱 ice에 신고한다 너 자꾸 까불면....

3   coffee [ 2017-11-02 21:41:38 ] 

상한애야 조현병 약 복용 시간이 지난것 같다,
약 먹고 정신 차리거라!

2   coffee [ 2017-11-02 21:39:08 ] 

지금 한국의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 대비 95.6%에 달하고, 전·월세를 노리는 수많은 오피스텔 등 임대용 건축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우파 정치가나 기관장, 지자체 단체장이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적 경쟁자들을 노골적으로

‘종북 빨갱이’로 몰아가며 혐오감과 증오를 부추기는 것도

바뀐 정치상황으로 인한 기득권 상실 가능성에 대한 공포 외에 주택 소유 유권자들을 기성질서 옹호자,

즉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간주하는 관념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장애아 특수학교 건립이냐 한방병원이냐를 둘러싼 주민 분쟁도 사는 집이 금융자산화한 주거 자본주의 사회가 빚어낸 풍경이다.


이런 주거 자본주의는 지속 불가능하다.

상층의 독점을 가능하게 하는 중·하층의 소비능력과 부채가 감내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면 체제 전체가 붕괴한다.

본문중에 나온 내용입니다.
본인이 줄기차게 그동안 주장해왔던 내용입니다.
같이 사는 세상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세상을 원한다면 모두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수 빨갱이들이 깨닫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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