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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먼저 공산주의를 다 말하려면 날이 새도록 설명해도
작성자 rainbows79

대한민국은 북의 공산주의와 맞서서 지난 72년간 정치 , 군사적으로 대립해오고 있고
북의 적화야욕에 맞서 오늘 이 순간까지도 대립해오고 있습니다.
손자가 말 했듯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한다고 강조하는데
과연 우리는 적인 북의 공산주의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해서 대략적이나마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공산주의를 다 말하려면 날이 새도록 설명해도 부족 할 것이나 최소한 윤곽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시작은 독일의 철학교수였던 헤겔로 시작합니다.
이성개념을 (절대이념)정립, 반정립, 종합의 3단계를 거치는 과정을 통해서 절대자(각 개인이나 인간)가 자기를 자각하는 과정을 변증법이라고 합니다.

아주 쉽게 말하면 각 개인이 깨달음을 통해서 절대자가 된다는 논리이고 불교에서의 깨달음을 통해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면 각자가 부처가 된다는 논리와 아주 유사합니다.
달리 기독교에서의 절대자인 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종교의 형이상학적인 정신세계를 부정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물질로서 설명하는 것
형이하학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사회에서 종교를 부정하고 탄압하는 이유입니다.
중국이 그동안 공자를 부인해왔던 이유이기도합니다.
공자의 사상은 물질보다는 정신세계인 도덕을 강조합니다.

모든 자연현상을 물질로서 인식하는 것 공산주의의 뼈대가 되는 사상 유물론입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레닌이 백년전에 전쟁에 지친 대중을 선동하여 자본주의의 타도만이 종전과 평화를 가져온다고 전쟁에 지친 대중을 선동하여 일으키고 우리는 이를 볼셰비키 혁명이라고 칭합니다.
공산주의의 시작입니다.

구 소련과 현재의 러시아 국기가 디자인과 색갈이 다르다는 것을 아십니까?

소련의 국기는 국가가 수립된 1923년부터 국가가 해체된 1991년까지 사용되었으며, 가로와 세로의 비율은 2:1이다.
빨간색 바탕에 깃대 쪽으로 노란색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다.
낫과 망치 위쪽에는 노란색 테두리를 두른 붉은 별이 그려져 있다.
별은 공산당, 노동자의 단결을 뜻하며 낫은 농민을, 망치는 노동자를 뜻한다.

러시아의 국기
러시아의 국기는 위로부터 백색, 청색, 적색의 3색기이다. 백색은 고귀함과 진실, 자유, 독립을 나타내고, 청색은 정직, 헌신, 충성을 나타내며, 적색은 용기, 사랑, 자기희생을 각각 의미한다...

중화인민공화국(PRC)의 국기는 오성홍기(五星紅旗)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인 1949년 9월 30일에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 제1차 전체회의(全體會議)에서 채택되었다.
혁명(적색)의 기치하에 중국 공산당(큰 별)을 중심으로 노동자·농민·소(小)부르주아(bourgeois)·민족부르주아 계급(4개의 작은 별) 등 모든 중화인민이 단결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비에트와 , 오성홍기의 바탕이 모두 빨간색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을 빨갱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한인들 중에서도 예외 없이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은 종교를 부정하고
물질 극 경제와 부를 모든 가치의 전부로 두는 현상, 박정희와 보수들이 강조하는 것
절대가치를 물질의 증가에 두고 정신세계를 부인합니다.

설령 정신세계를 부인까지는 않더라도 그저 장식품으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본인이 보수의 사상을 신봉하는 자들을 공산주의자, 빨갱이라고 칭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이곳 기고문에서도 봅니다.
모 대학교수의 발언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물질의 증가가 모든 것을 말하고 정신세계를 부정하는 발언을 합니다.
대부분의 명목만 기독교인에도 비일비재하고 기독교인이 개독교인 소리를 듣는 이유이고 대학때 B학점 받던 저능아들이 지금 정권에서 권력을 잡고 있다고 비아냥합니다.

쉽게 공부도 못했던 니들이 무엇을 안다고 떠드느냐 나는
이곳 미국의 대학교수다라는 자만심과 자신보다 못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무시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교만하기 이를데 없는 자의
발언입니다.

젊은 검사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발언과 함께 지식인이 없어서
대한민국의 발전이 저해된다는 논리이고 함께사는 세상이 아닌
지식인과 부유층만을 위한 세상을 추구하는 썩은 사상을 갖은자
밑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나중에 이 세상의 지도층이 되어서 어떠한
생각을 갖게 될런지 심히 우려되는 발언입니다.

교회 장로를 자처하는 한국의 이명박과 먹사들에서 흔히 보게 되는 현상이고
권력의 종노릇을 하더라도 자신들의 부의 증가와 사회적인 위치에만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그들의 근본 사상이 되는 유물론의 정의를 사전을 통해서 봅니다.

유물론[materialism,唯物論 ]
요약 물질을 제1차적·근본적인 실재로 생각하고, 마음이나 정신을 부차적·파생적인 것으로 보는 철학설.
유물주의(唯物主義)라고도 한다.
정신을 바로 물질이라고 주장하는 입장 또는 물질(뇌)의 상태·속성·기능이라고 주장하는 입장 등 여러 입장이 있다.

원래 철학용어로서는, 세계의 본성(本性)에 관한 존재론(存在論)상의 입장으로서 '유물론'과 '유심론(唯心論)'을 대립시키고, 인식의 성립에 관한 인식론(認識論)상의 학설로서 '실재론(實在論)'과 '관념론(觀念論)'을 대립시키는 것이 올바른 용어법이다.

아주 쉽게 보이고 만져지는 물질을 실재론 또는 유물론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관념론(觀念論)'이라고 하면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 즉 도덕정신이나 종교를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유물론'은 '관념론'의 대어(對語)로 사용된다.
그 까닭은 근본적으로 근세철학에서 유물론은 실재론적 입장의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적 실체'에 근거를 두고 존재론이라는 형식으로 자기 주장을 해왔던 데 대하여, 관념론은 유심론적 입장이 '사고(思考)하는 우리'에게 근거를 두고 인식론적으로 전개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유물론'으로 19~20세기에 걸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엥겔스가 용어법으로서 '유물론과 관념론'이라는 대어를 사용한다는 사실과 그것을 계승한 레닌이 '오해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하여 '실재론'이라는 용어를 배척하였다는 사정도 있다.
[materialism, 唯物論] (두산백과)

유물론의 특징
⑴ 과학주의:유물론의 근본적인 주장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물질적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물질'이 무엇이냐 하는 점에 관해서는 여러 입장이 있다.
'물질'의 특질은 흔히 질료(質料)·불가입성(不可入性)·타성(惰性) 등 대개 자연과학적으로 기술되고 규정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유물론자는 대체로 그 시대의 자연과학이 이룬 성과를 철학적 입장의 근본으로 하는 '과학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물질을 '우리 의식에서 독립된 객관적 실재'로 보고(물질의 철학적 개념), 물질에 관한 과학적 인식내용에서 원리적(原理的)으로 구별한다.
그러나 그 경우도 자연과학의 성과에 의거한다는 '과학주의(科學主義)'로 일관한다.⑵ 결정론(決定論):유물론에는 이 '과학주의'와 관련하여 일종의 '결정론'이 있다.
즉 "모든 사물의 변화는 선행하는 물질적 조건과 그것을 포함하는 법칙성을 근거로 결정된다"라는, 존재하는 사물에 대한 인과율(因果律)의 지배를 인정하는 사고방식이다.

한마디로 '무슨 일에나 원인이 있다'는 뜻이며 이것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하여 그것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든가 혹은 어떤 법칙성(法則性)에 따른다고 보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자유란 필연성의 인식이다"라고 하여 법칙적 필연성 인식에 근거를 두는 법칙성의 기술적 이용을 인간의 자유로 보고 있으나 이 경우도 '법칙에 따르는' 자유이며 근본적으로는 결정론으로 볼 수 있다. ⑶ 감각론(感覺論):유물론은 이러한 법칙성의 인식에 관하여 감각만을 인식의 원천으로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 까닭은 인식내용의 원천을 물질적인 외계에서만 찾고 내적·주관적인 것은 혼입(混入)을 배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상상력에서 유래하는 것, 감각적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선험적(先驗的)인 것의 역할은 부정된다.

유물론자 엥겔스가 영국의 경험론을 평하여 '부끄럼쟁이의 유물론'이라고 하였듯이 유물론은 경험론과 같이 감각론의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경험론과 가깝다.
그러나 경험론은 감각의 원인으로 그 자체로서는 비감각적인 실체(유물론이 인정할 수 있는 물질)를 인정하는 일이 없다.

⑷ 무신론(無神論):존재하는 모든 것이 물질적일 때 신이라든지 정령(精靈)이라는 비물질적인 존재는 인정될 수 없다.
게다가 세계의 사상(事象)이 물질적 법칙성에 의하여 결정될 때 세계의 변화를 관장하고 거기에 목적을 부여하는 신적(神的)인 것은 설명의 편법으로서도 배제된다.

이렇게 유물론은 언제나 무신론을 위한 강력한 논리가 되어 왔다.
유물론자는 모두 무신론자이며 사상사(思想史)의 측면에서 볼 때 양자는 거의 구별할 수가 없다
유물론의 특징 (두산백과)

견제와 균형 - 미국헌법의 정신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입각한 정부 조직이 완성되었다. 이는 미국헌법의 위대한 발견이다. 미국헌법은 권력을 철저히 불신하고, 권력을 가진 개인 또는 조직이 '선의'와 '절제력'으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단호히 거부했다. 권력은 오직 또 다른 권력에 의해서만 억제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권력과 정부에 대한 진정한 근대적 이해이며,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권력의 남용과 독재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바로 이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헌법을 운용하고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미국헌법의 위대한 발견에 힘입은 바가 크다.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셰이즈의 반란(1786년)

미국은 전쟁에서 이겼다.
미국인들은 그토록 열망하던 자유를 얻었고 자유의 이상을 억압하던 영국왕의 '폭정'에서 벗어났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이제 미국의 앞날에는 장밋빛 미래만이 펼쳐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과연 그랬을까? 전쟁 직후의 상황은 그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전쟁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그런데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강력하고 효과적인 중앙정부가 없다는 것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하나의 독립국가로 인정은 받았지만 미국은 아직 준독립적 권리를 행사하는 13개 주의 느슨한 협력체에 지나지 않았다.
전쟁 중인 1777년 11월, 대륙회의는 13개 자치주들이 어떻게 단일국가를 이룰 것인지의 대강을 정한 연방규약을 정했는데, 이에 따라 기존의 대륙회의가 연방의회로 이름을 바꾸고 중앙정부의 기능을 수행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말이 중앙정부지 연방의회는 아무 실권이 없는 형식적 기구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조세권이 없어 돈이 필요할 때마다 주정부들에 손을 벌려야 했다. 더구나 주정부들이 이런 요청을 거절한다 해도 중앙정부로서는 속수무책일 뿐이었다. 일례로 전쟁 때 외국에서 빌려쓴 돈을 갚기 위해 1781년 연방의회가 1,100만 달러를 주정부들에 요구했을 때 중앙정부가 거둬들인 것은 150만 달러에 불과했다.
물론 주정부들이 이처럼 중앙정부에 협조하지 않았던 데에는 자신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일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마찬가지로 각 주도 전쟁 비용을 마련하느라 엄청난 지출을 했으므로 전후에는 모든 주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가 단기간에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세금인상 이외에는 별로 뾰족한 수가 없다. 각 주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주민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가뜩이나 전후 경기 침체로 형편이 어려웠던 주민들에게 그것은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었다.1786년 매사추세츠에서 발생한 셰이즈의 반란은 전후의 이런 어려운 사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른 주와 마찬가지로 매사추세츠 의회 역시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해소할 목적으로 일종의 인두세를 신설하여 주민들에게 부과하기로 했는데, 5인 가족 기준 가구당 20파운드라는 약간 과도한 액수였다.
거기에 농부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채권자들도 정부에 강제적 조치를 발동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이것은 농부들에게 이만저만한 타격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곡물의 판로가 완전히 막혀버린 상황에서 - 전쟁 전만 해도 삼각무역을 통해 곡물이 안정된 가격으로 서인도 제도로 수출되었으나 전후 영국은 자국령인 서인도 제도에 제3국으로부터 곡물이 수입되는 것을 금지했다. -
그들은 세금이나 채무를 변제할 능력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빚을 갚지 못해 집과 전답을 차압당하거나 그마저도 없을 경우 감옥에 잡혀 들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1786년 12월, 스프링필드에서 일단의 농민들이 정부의 가혹한 정책에 항의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주동자는 대니얼 셰이즈라는 독립전쟁 참전 용사였다.
평화적 집회였지만 주정부가 군대를 보내 이를 강제해산하려 한데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셰이즈는 사람들을 이끌고 인근 무기고로 달려가 경비대에 무기를 요구했다.
경비대 대장은 이 요구를 거부하고 경고 없이 총을 쏘아 시위대 세 명이 사망했다.
총소리에 놀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셰이즈와 일부 사람들은 인근 산으로 숨어들어가 토벌대를 상대로 유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이들도 이듬해 2월 토벌대에 완전히 소탕되고 말았다.셰이즈의 반란은 그것 자체만으로는 그리 큰 사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미친 여파는 의외로 커서, 매사추세츠를 비롯한 각 주들은 농부들의 부채를 유예 또는 감면하는 조치들을 서둘러 제정함으로써 이런 사태가 또다시 벌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유사한 사태가 전국적으로 일어나 나라 전체가 큰 위기에 빠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동시에 이런 '내란사태'가 벌어져도 연방의회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 드러나자 좀 더 강력한 중앙정부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주장이 광범위한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이듬해 헌법제정회의가 개최된 직접적인 계기는 셰이즈의 반란이었으며, 회의에서는 이같은 민중의 봉기를 어떻게 막고 안정적인 정부를 세울지가 중대한 관심사였다.
제헌회의에서 마련한 헌법이 어떤 의미에서는 '반민주적'이고 '반인민적'인 틀을 잡게 된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아무튼 셰이즈의 반란은 이렇게 미국 건국에 뜻밖의 중요한 공헌을 했는데, 이를 두고 당시 파리에 가 있던 토머스 제퍼슨은 다음의 유명한 말을 남겼다.

"가끔 조그마한 반란이 일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정치 세계에는 이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마치 자연계에 가끔씩 폭풍이 부는 것이 필요하듯이······.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와 ,
폭군의 피를 먹고 자란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2017-11-08 06:39:18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3   coffee [ 2017-11-08 15:58:35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식인 , 세상을 지배하고 각종 이권을
나누는 세력을 달리 기득권이라고도 합니다.
21세기를 살고 있어도 고급 정보가 대중화 됐다고 말하지만
아직은 지식인 위치에 있지 못한 대다수의 백성은 착취의
대상이 됩니다.
본인 생각에는 그러한 간극이 앞으로는 많이 좁혀질까?
모르겠습니다.
기득권은 일반 대중이 알기 어렵게 더욱 더 어려운 말로서
중무장해서 일반인의 접근을 막을 것이라는 생각에 쓸쓸해집니다.

2   Rainbows79 [ 2017-11-08 08:43:11 ] 

모든 좌익은 B학점을 받은 열등생이라는
전혀 근거없는 어거지 주장 도대체가 무슨 주장을 하려면
논리적인 근거를 갖고 말을해던가 글을 작성해야
설즉력이 생기는데 이처럼 근거없는 주의 주장은 공산주의식
인민재판에 불과함을 모르면서 대학의 교수라?
기가찰 따름입니다.
당장에 노무현, 문제인 둘 다 사법고시를
통과한 우수한 천재들입니다.
박정희,전두환,이명박,박근혜, 국정을 좌지우지한
최순실이 대한민국의 사시를 패스한 우수한
재원들이었던가?
본인이 경제학 교수라고 자랑만 말고
한국의 경제 발전을 위하여 부디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떠한 좋은 생각이 있는지?
뒤에서 난잡한 비난만 늘어 놓지말고....
어디한번 교수님의 강의좀 들어봅시다.

1   Rainbows79 [ 2017-11-08 07:02:50 ] 

이렇게 서슴없이 계층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글을 언론사에 기고하는 자는 대학 당국에 고발하여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는 자에게는 교수 직위를 박탈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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