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3일 일어난 '北병사 JSA 귀순'사건에 아군의 대응에 몇 가지 미흡한 점과 의혹이 제기되고있다.
북 병사의 탈출 경로를 보면, 타고 오든차를 버리고 북측 초소 지점에서 우리측 초소와 자유의 집 중간 길로 달려와 MDL에서 약 50미터 남쪽과 자유의 집 약 15미터 서쪽 지점 정도의 지역에서 쓰러졌다. 이 귀순병사의 신병확보를 위해 아군 측 JSA 경비대대장(권영환 중령·육사 54기) 등 간부 3명이 낮은 포복으로 다가가 귀순 병사를 자유의 집 건물 뒤쪽으로 피신 한 후 긴급 후송하였다는 군 관계자의 브리핑이다.
北병사의 탈출에 북측 병사 3명 정도가 귀순병사를 향해 무차별 사격하였고 탈출자는 6~7군데 정도의 총상이 있었다. 사실 갑자기 움직이는 물체에 사격을 하면 피사체를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자동소총으로 냅다 갈겼을 것이고 그 총알들은 당연히 아군 지대까지 도달 하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군 관계자는 아군측 지대에서의 피탄 자국을 발견하지 못하였고 귀순 병사가 쓰러진 부근은 CCTV의 사각지대여서 열 탐지 장비로 찾았기 때문에 '발견하였다' 하였고 포복으로 신병 확보하였다고 했다.
신변 확보지대가 군사분계선(MDL)에서 약 50미터 안쪽의 아군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포복으로 기어갔다는 말이고, 자유의 집 바로 옆인데도 불구하고 CCTV사각지대라 하였다. 누가 바도 무차별 사격에 의한 피탄의 흔적이 아군 측에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없다한다.
물론 cctv고장 난 것을 사각지대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50미터 떨어진 아군 지역이지만 안전을 위해 낮은 포복으로 갈수있을 것이며, 또한 북한군의 총탄 세례에 아군이 대응사격을 하지 않은 것은 확전을 염려했기 때문 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군 관계자 曰, "귀순 병사는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경기도 수원)로 후송됐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구출('아덴만의 여명' 작전)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완치시킨 이국종 교수가 수술을 맡았다."고 이 부분 목에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