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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의 5월 이 나라의 정계가 순조로웠다면 나는 틀림없이 대한민국에 새로 출범했던 통일국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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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은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수포로 돌아가고 지난 25년 동안 나는 그런 허망한 꿈을 단 하루도 가져본 적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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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왜 새벽에 일어나 “내가 대통령이라면”이라는 제목을 걸고 부질없이 이런 글을 쓰고 있는가? 우리나라의 정치적 현실이 하도 안쓰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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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오늘’은 생각하지 않고 ‘어제’만 파고 헤치고 까고 뒤집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에 이런 주제를 내걸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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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가르치는 대학 교수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나의 주된 관심은 ‘현재’보다도 ‘과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내가 감히 오늘 아침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가 하면 오늘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하도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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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말이 오늘의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는 일은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적폐를 청산한다는 미명 하에 오늘은 또 누구를 잡으려는 것인가?”라는 이유 있는 질문이 많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대통령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전두환도 또 걸렸다는데? 광주 참사 때문에!” “이번엔 이명박 차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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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명 대통령들 중에서 제일 많이 먹은 건 이명박이래” “과거 정권에서 한 자리 했던 사람들은 요새 다 불안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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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적폐 청산’이라면 나도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적폐의 시발점이 된다면 대통령도 변명의 여지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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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대통령 - 청와대에서 감옥으로 직행한 것이나 다름없는 그 여성 대통령의 정치적 탈선과 비행을 나만큼 통렬하게 비판한 늙은이는 아마 대한민국 일반 시민 중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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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비행’을 넘어 ‘만행’이 그가 작년 10월 25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언급한 ‘비선’에 있었던 것이지 정치 자금 마련을 위해 삼성의 총수를 불러들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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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에게 놀아난 (그 관계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선거의 여왕’을 죄 없는 삼성의 실질적 총수와 함께 묶어 재판을 강행하는 것은 도리어 어긋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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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통령이라면 이 두 사람을 당장 특별사면 하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최순실 말만 듣고 정치 아닌 정치를 하던 대통령과 그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어쩔 수 없이 투자한 기업인을 풀어주면 대한민국이 한결 밝고 포근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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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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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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