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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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성교육과 사회생활
작성자 yu41pak

인성교육과 사회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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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옆은 보지 않고 나만의 삶을 살려고 할까?
인간이란 글자 자체가 그러하듯 사람은 둘이 모여 붙어
하나의 글자가 되었다고 갑골문자에선 풀이가 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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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사람 인(人)은 한쪽이 다른 쪽을 기대고 서 있는
즉 한 쪽은 약간 위로해서 그어져 있는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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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 마디로 사람이 사람답게 행하게 하는 교육을
우린 인성교육이라고 하고 사회에선 반드시 필요하다.
.
인성교육은 왜 중요할까?
인성교육의 부재는 한 개인의 차원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까지 확대되기 때문에 그 심각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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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학벌 만능주의 만연으로 인한 지적 교육의 강조와
학교교육이 마치 교육의 전부인 양 오인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인성교육은 태어나서 가정에서부터 성장기까지에 다듬어진다.
개개의 인성교육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간략해보자.
.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유년기부터 치열한 경쟁을 경험하며 성장한다.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보다 우선 경쟁상대라는 생각이 깊다 보니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로 우정이 싹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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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직장에서 빠른 승진을 하기 위해 경쟁은 끝없이 일어난다.
남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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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오로지 자신과 가족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고 불가피한 현실이라 믿는 것 같다.
.
이런 이유들로 인해 남을 돌볼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하는 듯싶다.
이런 성장환경은 곧 사회생활의 불협화음의 요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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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한 인성교육의 하나로 성장기에
사회봉사가 대단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
인구 대비 자원봉사자 비율을 몇 국가를 보았더니
미국 55.5퍼센트, 영국 48, 일본 25, 싱가포르 9.3, 한국은 0.52퍼센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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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함께 나누는 정情이 한국인을 상징하는 대표 정서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조사 결과는 아주 뜻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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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 내가 남보다
앞이다 뒤다 위다 아래다 안다 모른다 하는 잣대는 어디서 나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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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참된 사람이란 무엇인가,
나는 참된 사람인가'라는 한 번쯤 생각 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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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8 11:19:01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2   yu41pak [ 2018-01-28 16:06:21 ] 

이 글은 원글의 박찬석 교수의 얘길 읽고나니
이 마당에도 이런 걸 좀 배웠으면 하는
인성교육이 꼭 필요한 분이 있어 이 글을 올렸다.
누가 정말 인성교육이 덜 된 분인지 본인이 알았으면 한다.

1   yu41pak [ 2018-01-28 16:00:01 ] 

원글은 아래 글을 보고 읽은 느낌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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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명 중 68등이었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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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교를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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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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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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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틑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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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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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 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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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요.."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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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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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전 경북대 총장 박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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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제목 : '68명 중 68등이었다.' - 출처 : 교육정보 무료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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