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에 건달하던 사람이 하나 내 살던 옛동네에 계셨다. 좋은 학벌을 가졌던 여러 형님 동생과 누이들이 있었지만 이 친구 하나 만은 어째서 서울의 시시한 대학을 다녔는지 말았는지... 그런 학력의 사나이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무시못하게 잘 생긴 인물에 호탕한 성격에다 노는 마당에서는 기똥차게 잘 노는 다양한 소질을 가졌더군. 한국에서는 '노가다', '건달' 또는 '놈팽이'(참고 2)에 해당하고, 미국에서는 이런 사람을 일컬어 'street smart'라고 합디다만. 당구장에서 살았는지 당구도 잘 치고, 유행가도 멋드러지게 잘 부르고, 말 재주 또한 좋아서 사람들을 잘 웃기는 거라.

이 양반이 내게 이런 교훈을 남겨서 늘 맘속에 간직하고 산다. 뭐라고 했는고 하니... "남녀의 사랑에는 말이 필요없다"는 거다. 내가 의아해 하는 바는 말없이 어떻게 숙명여대 약학과의 미녀를 낙까챌 수가 있었느냐는 거지. 이순(李舜)이라던가, 아니면 조순(趙舜)이라 하는 옛 서울시장이 자기 오빠의 친구였는데, 자기를 원하는 눈치라서 결혼을 할까 말까 하는 판에 지금 말하는 남편하고 한 평생을 살게 되었다누먼. 여자의 마음은 갈대갔다던가? 하여간에 그런 사연이 있은 후에 그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가끔가다 하는 말이 그때 그 사람, 서울시장했던 사람과 인연을 맺었어야 했는데... 얼굴 잘 생기고 남자다운 친구와 살아보니 결국 행복하지가 않았다는 얘기였다. 뒤늦게 후회해본들... 이 여자분이 딸 넷을 낳고 60세가 않돼서 일찌기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지 꼬라지 하는 꼴을 본인은 전혀 모르지비. 사람들이 다들 이런다니까. 함경도 출신인데 인물 좋고 키도 크고 허우대 좋고... 헌데 몸 놀리는 것은 싫어하더군. 한마디로 게을렀다. 집 꼬라지 해놓은 꼴은...

이 친구가 힘들게 얻은 부인을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별하더니 용케도(?) 6개월을 넘기지 않고 다른 미망인과 인연을 맺더라구요. 우쨌거나 알아주어야 해. 이럴 당시에는 그 친구의 몰골이란 것이 "옛 사랑의 그림자"가 그의 뱃가죽에 한데 몰려있었다. 함지박 같은 배를 해가지고 맥주를 냉수 마시듯 하고 있었는데, 묵은 과부가 여권 만기로 한국으로 쫒겨나갈 판에 그의 배 큰 것이 무시기 문제가 크게 되가시오?

하여간에... 이 친구가 어느날 내게 전화를 하면서 평소 않하던 짓으로, 자기도 나처럼 뭔가 유식한 사람이었어야 했다는 쪼로 하소연을 하는 거라. 내가 머슥해서 "아니 김박사..., 나는 이 사람을 박사라 불렀다. (참고 1)

"뭐가 어때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슈?"

"아시다시피 나는 배운게 없어요. 禪(선)형이야, 그게 아니잖아! 아는 것도 많고..."

이 양반은 나보다 1살이 더 많은데 나보고 형이라 부르더군. 하긴, 그게 요즘에 모두들 하는 식이니깐드루. 젊은 여자애들이 남자녀석을 오빠라고 부른답디다. 그럼 진짜 오빠는 뭐라고 부르는지? 쯧 쯧 쯧

"아니,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지금 이 마당에 와서."

"내 형제는 말이야... 다들 좋은 학교에, 좋은 직장에... 나만이 요모냥 요꼴로 풀렸으니 하는 말이지."

"그런 얘기 집어치우고, 내일 골푸칠 궁리나 합시다."

그동안 내가 몇해를 두고 골푸를 배우라고 말해왔었다. 이런 친구일수록 고집하나 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지, 얼마 전까지 버티다가 어느날 그걸 시작했다더군. 그러면서 한번 나가자는 것이었다. 아마 4-5년을 조히 내가 졸랐는데 어찌어찌 해서 무시기 감을 잡았다는 쪼로, 나보고 골푸얘기를 자주 합디다. 내, 참... 내가 말했을 적에는 뭘했는지.

같이 치면서 "아 이렇게 좋은 운동을 내가 마다했구먼... 케싸면서도 내가 자기를 위하여 그토록 달래고 조른 그 공로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는 거라. 말없이 연애 잘하던 버릇인지...사람은 착하고 붙임성이 있는 것 같은데, 늘 어깨에 힘을 주고, 턱을 안으로 끌고, 입가는 아래로 깔고, 그 하는 모습이 역역히 말이 필요없다는 그런 폼을 잡아왔었다. 이 친구가 열등의식에 쩔어서 저러지 아마... 했구 마는.

헌데, 나로 말하면 어쩐 일인지 여자들이 잘 붙더라만, 막판에 가서 지붕을 처다보는 개신세가 되었던지라 이 친구를 늘 부럽게 생각했었다구. 거의 다된 죽에 콧물을 빠트리는 거라. 여자들이 어찌나 잘 알아 보고 쏜살 같이 사라지는데... 아이구, 그 날렵함에 내가 혀를 내두를 지경이더라구요. 내가 입을 놀리다가 '엑숀'에서 너무 꾸물댔었던게 아닐지...?

옛날 일을 되돌아 보다보니, 결국 말이 필요없는 행동으로 곧장 나갔어야 했었는데, 성사가 않된 여러 경우를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막급이로소이다. 사람은 제 가진 것을 최대로 잘 활용해서 소기의 성과를 이루어야 할 것입네다만, 내가 그 방면에는 타고난 소질이랄까, 아니면 기량 면에서는 이 친구를 당해낼 재주가 없었다고 봐야 하것지, 따지고 보면 말이야. 그 짓거리가 정작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이 아니었겠지 아마..., 케싸면서 무시기 변명을 찾아야 하지 않겠오, 그럼 뭐냐구?

참고 1: 골푸장에서 새로 만나는 동호인들이 가끔 있다. 그 날에 나와 동행하던 사람 둘이 박사학위를 가졌는데 내 주인공은 박사가 아닌 거라. 내가 새 분에게 이 사람은 아무개 박사, 저 분은 무슨 박사... 하며 소개를 했는데 이 양반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김박사라고 말했다. 새 골퍼가 미련하게도 무슨 박사학위를 가지셨냐고 묻는 거라. 내가 내친 김에 "골푸 박사"라고 했지를. 그리고는 친구의 표정을 살피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는 매우 만족스러운 웃음이 입가에 맴도는 기라. 그 날 이후로 나는 그를 "김박사"로 부르며 동시에 그렇게 사람들에게 소개해도 전혀 문제가 없게 되었다.

참고 2: <건달, 깡패, 놈팽이, 노가다의 유래>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고 있겠지만, ‘건달’이나 ‘놈팡이’, ‘깡패’ 같은 말들은 모두 외국말의 영향으로 생겨난 말들이지 본래의 우리말이 아니다. ‘건달’이란 말은 불교 용어로 불법을 수호하고 있다는 여덟 신장 가운데 하나인 ‘건달바(Gandharv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따라서 고대 인도어라고 할 수 있다. 건달바는 음악을 맡아보는 신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노래만 즐기기 때문에,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을 ‘건달’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빈 손'이라는 백수(白手)를 붙여서 ‘백수건달’이라 하면, “돈 한 푼 없이 놀고먹는 건달”을 가리킨다. 건달을 낮춘 속어가 바로 ‘놈팡이’이다.

건달이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말이라면, 놈팡이는 독일어에서 비롯한 말로서, “부랑자, 실업자”를 뜻하는 독일어 ‘룸펜(Lumpen)’이 원어라고 한다. 이 말이 일본에 흘러들어갔다가 다시 일제강점기에 우리한테 전파되어 ‘놈팡이’로 변하게 되었다고. '노가다'는 No Touch란 일제강점기의 금광에서 나온 일본말이 한국사람들에게 그렇게 들렸던 데서 출발했다.

건달이나 놈팡이와는 달리 범죄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깡패’는 “폭력을 쓰면서 행패를 부리는 무리를 낮추어서 영어의 ‘갱(gang)’과 한자말 ‘패(牌)’가 합쳐져서 생겨난 말이다. ‘패’라는 말은 “짝.” 또는 패거리라는 뜻이다. ‘건달’이나 ‘놈팡이’, ‘깡패’... 모두 알고 보면 인도와 독일, 미국에서 들어와 우리말에 녹아든 다국적 언어라고 볼 수 있다. -Facebook에 올라온 것을 다시 고쳐썼음.-


禪涅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