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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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간관계는 좋은 소통으로 유지된다
작성자 zenilvana

절벽에다 '야호~'를 부르짓으면 그 울림이 되돌아온다. 그건 자연현상이다. 그런데 내 학교 동창들' 한테서는 도무지 마주쳐 오는 소리가 없다. 그 산울림을 이젠 그만두었다. 15 여년이 지난 후에 이즘에 말이다.

4년 전에 Calif.로 이사와서 살게되었다. 새 곳의 인심이 옛날과 같지가 않은 것은 말해서 뭣하리. 우선 숫자 면에서 월등히 적고, 그렇다고 무시기 껀(件)도 자주 생기는 일이 아니다 보니 자주 왕래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New Jersey에서 마저 뭐 자주 만났던 것은 아니었다. 우선 거리관계와 그로 인한 비용이 상당했다. 왼 넘의 서울 방문객들이 그리 많은지... 새삼 옛날의 우정을 강요하더라만, 지들은 미국교포 동창들이 한국에 갔을 적에 무얼 해주었는데? "꼭 맞나야 하냐"던가, 아니면 "오늘 시간이 없다"고 전파로 들려왔다. 더한 것은 한국에 사는 넘들의 모임에 나타났더니 알은 척하는 친구가 몇 않됐다. 이게 한국넘들의 친구세계다.

그런데 인터넽시대가 왔던 거라. 얼씨구, 여기서 드디어 막혔던 우정이 샘물 솓듯 하지 않을까 기대가 많았었지. 그것도 허사였다. 나만의 일방적 소리는 여전했고 되돌아오는 반향은 가물에 콩나듯 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여러가지 변명이 있겠지, 하긴.

자라날 때 밥상 앞에서 절대로 "말을 하지 말라"는 단단한 훈계가 내 부모에게서 있었다. 그래서 말을 삼가야 했다. 그 이유가 뭔가를 생각했더니, 밥상에서 말을 하면 남에게 맛있는 것을 빼았기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요즘은 그래서는 않되지 않은가? 소위 서양식이랄까, 미국식은 식사 중에 대화를 해야 한다. 또 한가지는 먹을게 너무 많다가 보니, 천천히 씹으면서 침을 섞어야 건강할 것이고, 또한 다시 모였으니 우애를 나누게 되는 것은 좋은 가족관계가 아니겠나? 이러다 보니 음식이 남아돈다고 할까, 분위기가 좋아서 많이 먹게 된다고 봐야 할지. 어쩐지 뚱뚱한 사람들이 많더라.

또 하나는 어른에게는 맞대꾸를 하지 말아야 했다. 그것의 연장선에서 혹시 회의장에서도 발언하는 것을 자제해야 했다. '그게 아닌데... 뭐 어쩌구' 돌아서서 혼자 중얼댈 망정 절대로 반대의견이나 아는 척을 해서는 않되게 되어있다. 심지어 동창들의 웹페지에서도 마찬가지...... 누구 나서서 따다부따 잘난 척을 하면 모두들 배알이 꼴리다 못해서 아예 쫒아내더군. 차라리 않보는 것이 地上(지상) 동물들의 자존심에 害(해)롭다는 건지? 아니면 즈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엉뚱한 天上(천상)의 생각을 한다는 것이 아닐지.

하여간에 내 동창친구들이 이래저래 별 할 얘기가 없단다. 그럴 수 밖에... 평소에 생각을 많이 했어야 필요할 때 유창한(?) 말씀이 나오지 않겠나 하는 거지. 더구나 "말을 많이 해서 이로울게 하나도 없다"는게 우리들 전통이 아닌가베... 네타즌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열렸거나, 닫쳤거나, 남의 글은 죽어라 읽어대면서 즈그들은 할 말이 없단다. 심지어 추천이란 것도 아까워 발발떠는 처지에 내가 친구들만 들볽는 것도 실상 말이 않된다. 세상이 온통 이 모양인 거라. 사람들이 도무지 마음문을 열지 않는다.

내가 아는 친구가 대학시절에 써클활동을 한답시고 북한의 불온서적을 읽었다. 박통의 유신독재에서 15년 징역을 선고받고 13년 반만에 특사로 풀려나게 됐었다. 김대중시절이었다. 나야 英-數-國에 골몰하다가 교양서적에서 뒤지는 형편이었지만 이 사람은 일찌기 形而上學的(형의상학적) 내지 심각한 인생문제로 아는 것이 많았다. 그런 연고로 私說(사설)이 풍성했었다. 가끔 무식한 나를 핀잔주기도 했지만서리. 내가 그처럼 인생살이에 한데였다는 얘기다.

출옥한지 10여년 만에 그가 뉴저지의 내 집을 방문했다. 30여년 만에 재상봉을 했으니 오직이나 할 얘기가 많았겠나? 그런데 이 사람이 도무지 과거의 일에 함구하는거라. 그의 입을 떼어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나도 이제는 너만큼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덤볐었다. 학창시절에 그에게 쭐렸던 내가 이제는 자존심을 만회(?)할 때가 드디어 봉착했다... 마~ 그런 속셈으로 뭔가를 줏어섬겼더니, 이 친구가 차분히 이런 말씀을 씹어밷더군. "말은 白害無益性(백해무익성)"이라고... 남의 말을 잘 경청하면 도리혀 배우는 것이 많고, 동시에 상대를 즐겁게 한다나?

하긴 감옥살이 10여 성상에 그렇게 변할 수도 있었겠지. 그 때 그 환경에서는 필요에서 그랬다고 치자.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됐으니 옛 친구를 만나서 말문을 열만도 한데 그게 아니었다. 아니 남이 말하는 것조차 싫어 한다면 그 넘의 友情(우정)은 어디메서 찾겠다는 겁니까요?

내 인터넽 친구들에게서 이런 '말의 절벽'에 부딭쳐온지 10여상이 조히 넘어간다. 얼마 남지도 않은 인생에 깜빵출신의 道士(도사) 말씀대로 진짜로 입을 다물어야 할 것인 가를 저울질 해온지도 꽤 된다. "내가 댓글하지 않아도 상관말거라. 계속 보내주기 바란다네" 얼마 전에 누가 이처럼 이메일 했더군. 몇년 전에도 그랬었지. 한 녀석이 독주를 줄창 마시다가 최장암으로 먼저 가셨다. 그 장례식에서도 여러 동창들이 같은 말을 내게 하더군. 자기네는 받아보는 즐거움이 있다는 거다. 그러면 그들은 어째서 나를 즐겁게 하지 못하는가? 내쪽에서 하지 않으면 동창들과의 그 알량한 友情(우정)도 끝장이 나겠지? 대륙에 널리 퍼져사는 미국동창들과 태평양 건너 한국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차라리 이메일로 대화하면 좋으련만, 그게 않되는 건지, 아예 못하는 건지...

첫째 인간관계는 대화로써 유지된다. 부부가 싸운다는 것은 그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 하는 짓이다. 막상 더 이상의 삿대질을 하지 않으면 결별에 이르렀음을 예고한다. 친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화를 않겠다는데 어찌 우정이니 나발이니 문제가 되겄냐, 되기는... 꼭 만나서 술잔을 기우려야 친분감을 지속시킨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나? 또는 골푸로 회동해야 그 동창감이 유지된다는 건가? 미국에 관광와서는 5-60년 전 동창들에게 온갓 혜택을 받으려고 한국식의 호들갑들 떤다. 아주 당연한 것처럼 말이야. 헌데 즈그들은 아예 모르는 척하면서...... 왜들 이래?

禪涅槃

2018-02-03 06: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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