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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天性(천성), 습관 그리고 운명
작성자 zenilvana

天性이란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본능적 버릇이다. 소위 DNA라는 염색체에 입력된 삶의 정보라고 보면 어떨지......? 영어로는 character라고 하는 어떤 것이 습관을 길러내고, 나아가서 그런 패턴으로 그 한 생명을 살다가 간다고 말할 수 있다.

20여년에 걸처 글을 써왔다. 특히 아침에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이 몸에 배어서 눈을 뜨면 오늘은 무슨 생각을 글로 표현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하다가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경우가 많지만 어떤 때는 뚜렸한 화제가 없을 때도 있어서 머리를 굴리게 된다. 하루를 건너 뛸 수도 있지만 늘 하던 하루의 일과가 된지라 지나치기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어제나 오늘 아침은 어쩐지 선듯 대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해서 제목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몇번 언급한 일이 있다만 나는 내 서재 창밖에 닭장을 차려놓고 달기를 기른다. 달걀처럼 싼 음식이 없지만 내가 원했던 바는 하루를 활동할 수 있는 과업으로 이런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달걀을 한두개씩 꺼내는 재미도 있고, 너무 많아지면 딸들에게나 친구들에게 주면 매우 좋아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소득이 되고 있다.

유기농이라던가? 요즘에 알아주는 '올개닉'이란 건데 처음 먹어보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다고 한다. 나야 늘 이것들을 먹다가 보니 옛 것의 맛을 잊어버리고 그저 그런 것으로 알지만 그게 아닌 것처럼 사람들은 받아들인다. 'organic'이라면 무조건 좋게 생각하는 습관에서 나온 판단이 아닐까?

닭 중에 알을 품으려는 天性, 즉 한국말로 품는다고 하는 sitting하는 암탉이 있어서 수정란을 사다가 안겼더니 21일만에 여섯개의 알에서 4 마리가 탄생했던, 말하자면 알을 깐 일이 있어서 그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관심있게 살핀 적이 있었다. 대략 5개월이 되면 알을 낳기 시작하는데, 내가 놀래는 것은 이들 병아리는 가르쳐주는 것이 없는데 이같은 행동을 하는 거라. 그것이 '타고난 성격'이랄지 어떤 푸로그램에 마추어 예측없이 똑 같은 달기의 삶을 사는 거라.

이런 광경을 보면서 사람도 이와같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사람은 理性的(이성적) 동물이지만 그렇다고 부모와 아주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달기처럼 그 부모의 그 아들 딸이 되지 않겠나? 그것이 天性이라고 한다면 그 남어지는 뭔가 먼저 세대보다 다른게 있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세대가 교체되는 과정에는 시간과 공간이란 요소가 작용한다. 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교육이란 것이 들어서서 새 시대와 새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을 만들어 낸다.

위와 같은 선천적 내지 유전적 성질에다가 인류의 사고방식을 얼버무려 놓게 되면 각 개인에게 맞는 특유한 제2의 天性 다시 말해서 습관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매우 편리한 것이어서 같은 생활환경에서는 이미 익혀진 것을 되풀이 하면서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는 불편함을 덜어준다. 마치 이미 푸로그램되어 있는 것을 별 생각없이 그대로 풀어주기 때문이다. 소위 '개미가 체바퀴 돌기'의 일상생활에 익숙해지기 마련이외다.

매일, 매주, 매달 그리고 매년을 이같이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자신을 한번 되돌아 본적이 있오? 10년 전의 내가 좋아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 것들이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이 계속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드리십니까? 어떤 사람은 이런 routine life, 즉 반복하는 일상생활이 역겨워 여행을 떠납디다만, 그렇다고 그가 새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오. 왜냐하면 그의 생각, 즉 사물을 판단하는 어떤 습관은 머릿 속에 그냥 낭아서 그를 좌지우지 하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여행가방에 가장 간단한 것을 지니고 떠나든지, 아니면 수십개의 수하물을 싣고 다니는 것 그 자체가 평소의 습관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Mannerism이라는 거... 내가 글쓰는 스타일이 정해져 있드시 사람사는 데에도 그런 일정 형태가 있읍니다. 그것이 결국 그 사람의 됨됨이가 되고, 다시 말해서 성격이란 것으로 굳어진다고 나는 봅니다. 영어로 character란 것이 세상과 마주치면서 자기가 설 자리를 마련해 가다가 보면 그 뒤에 남은 것이 運命(운명)이란 것이 되겠오. '아이고 내 팔자야'하고 땅을 처본들 이미 습관대로 살아온 과거가 곧 그 사람의 destiny 또는 宿命(잘 숙에다 목숨 명)이 된다.

근세에 實存哲學(실존철학)이란 것이 한 때 유행했었다. 實存이란 것을 들먹일줄 모르면 지식인 축에 끼이지 못했었는데, 이름난 사람이 '니췌', '싸르뜨르', '칼 야스퍼' '마틴 하이데카' 등등... 그러나 그 생각의 원조는 Schopenhauer 란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말하는 '불행의 철학자'로서, "행복을 만족시키려면 불행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행복이란 것이 습관화 하게 되면 도리어 불행해지지 않겠오? 냄새를 잘 맡으려면 그 감각이 무디어 져야 하는 논리와 같다.

알고보면 자기라는 것은 실상 이런 것들의 모둠이다. 따라서 자기를 알려면 무슨 천성을 가졌나, 어떤 시대와 장소에서 사는가, 그리고 무슨 교육을 받았고, 그 사회에서 무었을 문제삼는 가를 판단하는 능력 내지 견해가 그 사람이다. '칼 융'이란 사람은 이를 일컬어 'Archetype'이라고 불러서 '그 시대의 그 사람' 중에 우리는 한 인격체라고 정의했다 합디다.

하여간에 이 쇼펭 선생이 70세가 넘어서 세상에서 그를 위대한 철학자로 알아 모시게 되었지요. 30대에 쓴 그의 철학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實存의 문제를 다루다가 보니 너무 난해하다고 해서 이같이 늦은 나이에야 빛을 봤던 것이요. 그가 이런 자기의 운명을 돌아보면서 뭐라고 했는고 하니... "내 삶을 되돌아 보자 하니 거기에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이 나를 좌지우지 했더라고". 나는 그의 이런 고백을 "天性과 습관 그리고 운명의 장난"이라고 보는 겁니다요. 괜찮은 생각이 아닙네까?

禪涅槃

2018-02-08 17:12:15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1   jinagada [ 2018-02-09 00:46:13 ] 

좋은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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