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북한의 핵위험을 둘러싸고 문재통이 빌빌하는 모습을 놓고 온갓 말들이 항간에 거듭 오가고 있다. 이미 할 말은 다 한것 같고, 단지 평창올림픽이 끝나면 어떤 행동으로 옮겨질 것인가로 손에 땀을 쥐게한다. 같은 이야기를 계속 지껄이는 것도 그렇고, 듣는 사람들 역시도 지겹겠지 않겠오? 해서 화제를 바꿔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救援을 사람들은 뭘로 아는 가 한번 살펴보고 싶다. 근본적으로 善(선)과 惡(악), 그리고 인간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주 방문하는 웹싸이트의 어떤 기독인이 구원받았다고 큰 소리를 처왔으나 댓글 다는 그의 행실에서는 도무지 救援받은 사람 같지가 않은 거라. 적어도 나의 기준으로는 그렇다. 또 하나는 딴 불로그에 유난스럽게 성경해설자들이 많고, 그 난무하는 광경이 보통의 기준을 넘어서는 정도라서 목사들이 역시 말장사가 된긴 된다고 믿고 그처럼 열심하는 것이 아닐까?
그 증거가 과연 뭡니까? 클릭 숫자가 전부 일것이다. What else is there? 그럼 성경말씀을 읽었다고 구원이 되는 겁니까? 수십만명의 한국의 교인들이 버젓한 대형교회를 평생토록 다녀도 구원받는 경우가 가물에 콩나듯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단지 웹싸이트 발자취 하나로 salvation(구원)의 복음을 주었다는 이바구같은데.....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시끄럽게 울리냐구? 묻지 않을 수 없다.
국어사전에서는 救援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류를 罪惡(죄악)과 苦痛(고통)에서 건져내는 것이라고... 舊約(구약)에만 근거하는 유태교와 新約(신약)의 기독교는 예수를 유일한 구원자로 섬기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둘다 罪가 무었이며 善(선)과 惡(악)을 구별하는 기본은 같다. 그런 이유로 Judeo-Christian이라고 엮어서 말하고 창세기에서 정의한 뜻을 살펴야 한다.
아담과 이브에게 하나님들, 즉 gods들이 에덴동산의 善惡果(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여자가 먼저 따먹고 남자에게 주었던 바, 하나님들의 명령을 거역했던 것이 罪(죄)의 시작이라고 가르친다. 뭐가 善한 것이고 惡한 것인지 알게 됨으로 해서 인간은 자기에게 좋은 것은 善한 것이고, 나쁜 것은 惡하게 생각하고 현재의 자신에게 늘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다. 실제가 그렇고...불행의 철학자 이름을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스스로 자초하는 경우를 Schopenhauer가 그래 말했다 하지만, 유태인의 고난의 행군으로 에집트의 노예상태, 바빌론의 포로생활, 그리고 로마의 디아스포라 (Diaspora), 2,000년의 방랑과 오늘날에 아랍국가들과의 영토갈등 등등으로 불행한 과거를 살았다. 그 와중에 언젠가 자기들을 다시 에덴동산으로 데려다 줄 메시아를 갈망하는 기록들이 구약에 여기저기 쓰여있다.
그중에서 바빌론 강변에서 시온성을 바라보며 노래한 '이사야書'의 몇구절이 예수가 바로 그 사람이이라고 마태가 예언했다고 해서 많은 신자들이 그 말을 찰떡같이 믿는다. Isaiah書의 저자는 두명이고, 대략 기원 전 8세기였으니 마태와는 몇백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다. 그 긴 세월을 뛰어넘어서 예수가 오실 것을 알았다는 이야기인데......믿거나 말거나. 중요한 것은 구원이 있으려면 우선 고난이 반드시 앞서야 한다는 것 만은 분명하다.
최근에 탈북민들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뭔가? 트럼프를 위시하여 펜스 부통령에게 북한의 노예적 인권박탈이 북한을 때려부셔야 할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한다. 그 현장을 답사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이들 3만여명의 북한주민들 애환이 자유민주주의자 신봉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전무후무할 절망과 고난 때문이다. 나는 '탈탈탈 배나TV'의 Youtube 방영을 빼놓지 않고 보며 눈물을 흘려왔다. 그리고 북한의 위대한 수령님 내지 잔악한 공산 똘마니들이 인민의 귀와 눈을 가려놓고 노예로 부려먹는 감옥생활의 간증을 듣는다.
그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대한민국은 천국이다"라고......그런데 실상 한국에 사는 사람들, 특히 김일성이를 사랑하는 주체사상가들은 도리어 북한과 손을 잡고 남한을 적화통일인지, '낮은 수준의 고려연방제'를 하겠다고 헌법까지 고치려 들고있고 미국과의 동맹을 파기하겠다고 설쳐댄다. 남한 사람들은 그럼 복에 겨워서 북한의 300만인지 30만인지의 아사자에 끼어 봐야 구세주를 염원하겠다는 건가?
기독교 신학에는 終末論(종말론)이란 것이 있다. 영어로 Eschatology라는 건데 창세기의 에덴의 완전상태에서 요한계시록의 멸망의 길목에서 Maranatha, 즉 '어서 옵서소'라고, 예수의 재림을 애걸하는 종교다. 그런데 2000년이 경과하도록 예수님이 과연 오셨던가?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리하신다네. 실상 와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구원이고 나발이고 말이 않되겠지?
왜냐? 구원이란 것은 조건부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신-구약으로 구분하는데 약이란 말은 약속을 의미한다. 구약에서는 모세의 10계명이고 신약에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건데......그게 말하는 것처럼 쉽다면야 이 세상에 죄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겠지비. 작심사흘이라, 아무리 단단히 맘을 먹어도 3일이면 다시 옛 사람으로 돌아간다. 사도바울이 한탄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정신은 바로 하려지만 육체가 따르지 않으니 언제이 죄인이 구원을 받겠는가?"
이것이 바로 구원, 즉 Salvation의 세계다. 누구처럼 하긴 두번 구원받는 것이 필요하겠지. 일주일에 한번씩으로 횟수를 줄이려면 매일 기도와 참회를 그치지 말아야 하겠지. David왕도 그랬으니까. 눈물 콧물이 뒤범벅이돼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회개하면 어떻게 될지..., 힘든 얘기다. 차라리 석가모니가 가르친 대로 세상 욕심을 버리고 가난한 마음가짐으로 노-장자가 말하는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더 편해 보인다. 그러다가 때 되면 미련없이 훌쩍 떠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천국은 네 마음 안에 있으니 그 진실을 깨닫는 경지가 곧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