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高句麗) 때 고려장(高麗葬)이란 제도가 있었다 하난데, 고려장이란 나이가 많은 부모를 깊은 산속에 갖다 버리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주 못된 악습이었디~ 뭐 열땅의 어떤잉간은, 지는 절때로 늘지 아늘껏 가치, 늘그면 쌀갑올리지 말고, 빨리 빨리 가라하기도 함네다마는~
허어~
이무튼 그 고려장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이썼을 때에;
박 정승이란 자가 노모(老母)를 고려장 하려고 지게에 짊어지고 산속으로 들어 가고 있었는데~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나라 법을 한탄하며
자꾸만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데, 오잉? 뒤에서 노모가 계속해서 소나무 가지를 톡톡 뿌러뜨리는 소리가 들리는게 아님까? 허~
아들이, “오마니 왜 그러심네까~ 그렇게 두려우심네까? 죄송합네다…… 흑흑……” 하자.
그 어머니께서,“얘야 나는 나이 많아 죽을 때가 다 되었으니, 이제 고려장이 되어 짐승의 밥이 된들 두려울 것이 있겠느냐마난, 집으로 돌아가는 네가 길을 잃어 버릴까봐 표시를 해 두는 것이란다”
하시는 게 아님?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아들을 생각하시는 그 노모의 사랑에 감복하야
박 정승은 노모를 고려장을 하지 않고 집으로 다시 모셔와 남모르게
국법을 어겨가며 봉양하여따 에이요~
그 무렵 당나라에서 사신이 말 두 필을 끌고 고구려에 와서,어려운 문제를 내었다;
“이 두 말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에 미말과 새 끼말이다. 어느 것이 에 미말이고, 어느 것이 새 끼말인지 가려 보라”
조종이 이 문제를 가지로 몇 날 몇 일을 고민해봤지만, 끝내는 묘안을 찾지를 못했다카는데~
아들 박 정승이 고민하는 이 문제를 노모가 듣고,
“그게 무신 걱정꺼리냐? 그 두 마리의 말을 한 이틀 굶긴 후에 여물을 갖다 주어서, 먼저 먹는 말이 새 끼말이고, 나중에 먹는 말이 에 미말이란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어미는 자식을 먼저 위하는 법이란다” 하신 말쌈을 듣고,
그렇게 했더니 당나라 사신은 고구려인의 지혜에 감복하고 본국으로 돌아 갔다 하고.. 껄껄~~ 그 후에 박 정승은 자초지종을 임금께 아뢰었고, 그러케 하야 고려장이 사라졌다 함네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