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두테르테(Duterte) 대통령이 비아세안 국가로는 최초로 중국을 지난 10월 19-20일 간 방문하였고, 잠시 귀국하였다가 10월 25-27일 간 다시 일본을 방문하였다.
이 정상외교를 통하여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일 양국과의 협력 하에 중국에 도전하였던 전임 대통령과는 판이한 외교 정책을 선보였다.
아키노 3세 전임 대통령 재직시 제기한 남중국해 중재 재판의 결과에 내심 곤혹스러워 하는 중국에 먼저 올리브 가지를 내밀어 15조원이 넘는 경제 협력 약속을 얻어내고, 뒤이어 방문한 일본에서도 일본의 구미에 맞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약 2300억원 상당의 차관을 얻어낸 것이다.
반면에 미국에 대해서는 필리핀 주둔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여 미국을 당혹스럽게 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미국 거리 두기와 친 중국 행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중국계 필리핀인(華裔)으로서의 개인적인 성향과 과거 경험에서 유래된 대미 편견에 따른 독단적인 시행 착오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의 선거 공약과 순방 전후 그 자신과 야세이(Yasay) 외무장관의 인터뷰 등을 종합해 보면 다수 필리핀 국민의 민의를 반영하여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하여 실행한 균형 외교의 일환이라는 판단 쪽으로 기울게 된다.
그렇다면 필리핀 신정부의 과감한 이 균형 외교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필리핀 신정부의 정책 변화로 인해 오바마 행정부 이래 미국이 추진해온 아시아 회귀 정책에도 어느 정도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의 대 남아시아 정책 추진 경과를 살펴보고, 향후 미중 양국의 대응 방향에 대한 전망과 우리 외교에의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중 양국의 대 남아시아 정책 추진 경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동서 냉전체제가 1972년 미중간의 데탕트를 거쳐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사실상 끝나고 미국의 유일 패권국 시대(Unipolar Era)가 도래하자 냉전시기 이후에 공산주의 남하를 막는 전진기지로서 중시되던 동남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급격히 줄어 들었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에는 미국의 주요 전략적 관심이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 테러 전쟁에 쏠리게 되었고, 이에 따라 동남아 각국은 대 테러전의 대상지로서 혹은 그에 필요한 각종 지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대상지로서만 미국의 관심 대상이 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같은 공산주의 국가이던 소련의 해체와 구 동구권의 몰락을 보면서 자국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이 동남아, 서남아, 중앙아 각국을 대 중국 포위망으로 구성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가지게 되었고, 그러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이들 국가들과의 우호 관계를 최대한 발전시켜야 한다는 정책적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다수의 동남아 국가들이 1990년대 초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는 하였지만 모택동 집권 시기 중국 공산당이 자국내 공산당을 지원하여 국내 정치 불안을 조성하였던 부정적 경험 때문에 이들 동남아 국가들은 여전히 중국을 최대의 역내 안보 위협으로 느끼며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이런 중국에게 1997년 태국의 바트화 폭락으로 촉발된 아시아 금융위기는 이 위기의 진앙지에 위치한 태국,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을 상대로 매력 외교를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이들 동남아 국가들이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영향 하의 국제금융기금(IMF)의 고리 대금을 울며 겨자 먹기로 쓰며 자국 화폐의 기록적인 평가절하를 겪고 있을 때, 중국도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위안화 평가절하의 필요성을 느꼈고, 국제시장에서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던 동남아 국가들도 그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었지만,
중국은 평가절하 대신 국내 경기 부양 정책으로 대응함으로써 동남아 각국에 신뢰감을 심어 주었던 것이다.
이어서 중국의 주롱지(朱鎔基) 총리는 2000년 아세안 10개국과의 FTA 체결을 제의하였고, 2002년부터 양측이 FTA 협상을 진행해 가던 2003년 열대과일 등 아세안 각국의 관심이 큰 일부 품목에 대해 중국이 일방적으로 조기에 관세 인하하는 조치(Early Harvest)를 취하여 아세안 각국의 대중국관계 개선 효과를 피부로 느끼게 함으로써 아세안 각국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였다.[1] 그 후 중국과 아세안은 2004년에 FTA 상품 협정, 2007년에 서비스 협정, 2009년에 투자 협정에 순차적으로 서명하여 2010년에 중국-아세안 자유무역지대가 정식 성립되었다.
한편,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석 연료 에너지를 수요하는 나라가 되었는데,
이 에너지 수송로가 미국의 군사적 통제 하에 있는 말래카 해협과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 부담을 크게 부담을 느껴 이를 해소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러한 노력은 특히 아세안 국가 중에서 미얀마와 태국, 서남아에서는 전통적인 중국의 우방인 파키스탄에 집중되었는데 구체적인 협력 목표는 이들 국가들을 통과하여 인도양으로 나가는 에너지 수송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미얀마 서해안의 항구에서 시작하여 중국 서남부 윈난성을 거쳐 중칭시로 연결되는 송유관과 구이저우성·광서장족자치구로 연결되는 가스 파이프 라인을 건설하고[2],
태국과는 태국 남부의 크라(Kra) 지협에 운하를 공동 건설하며,
파키스탄과는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파키스탄 과다르항에 이르는 원유 및 가스 파이프라인과 철도 및 고속도로 등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미얀마 서해안 자오퍄오(皎漂)항에서 출발, 중국 윈난성, 구이조우성을 거쳐 광시 장족자치구 구이강(貴港)으로 연결되는 2520㎞의 가스파이프라인은 2013년 7월 이미 시험 생산에 들어가 2015년 1월까지 40억 입방미터의 미얀마산 천연가스를 수입하였고(원래 계획은 120억 입방미터이었으나 계획량에는 미치지 못함),
미안마 서해안을 출발 중국 윈난성, 구이저우성을 거쳐 충칭시에 이르는 송유관도 사실상 완공되어 2015년 1월 28일 미얀마 구간의 시험생산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의 시간을 감안하면 지금쯤 미얀마산 천연가스와 원유 수입은 상당한 궤도에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키스탄 –중국 경제회랑 건설에 대해서는 금년 9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순조롭게 진행중에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동방의 파나마 운하로 불리는 태국 크라 운하 프로젝트는 2015년 5월 중국 광쪼우에서 양국 민간 회사간에 협력 MOU를 체결, 건설 계획 수립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중국이 말래카 해협 인근의 말레이시아 케리섬에 항구를 건설하는 협력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되기도 하였다.
이에 더하여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중국 상하이까지 연결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도 러시아측 구간은 이미 건설을 완료하였고,
중국측 구간도 2015년 6월 착공하였으며, 2018년 완공 예정이라고 한다.[3] 중국이 과거 장저민·후진타오 시대에는 등샤오핑이 남긴 ‘으시대지 않고 부족함을 보충하는 자기 수양을 해야 한다’(韜光養悔)
유훈에 비교적 충실했던데 반해,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이후, 특히 작년 9월 시주석의 방미를 계기로 남중국해 국익 수호를 위해 미국과의 충돌도 불사하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면에는 전반적인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신장 이외에도 말래카 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에너지 수송로를 다양하게 확보하게 된 것에 대한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미국은 부시 행정부 시절 중동과 유럽 문제에 주로 집중하면서 아시아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다가 2009년 1월 오바마 행정부 출범이후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그 사이에 너무 크졌다는 것을 깨닫고,
이른바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또는 ‘아시아 재균형(Rebalance toward Asia)’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ASEAN 우호협력조약(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에 서명하고, 자카르타 소재 ASEAN 사무국을 상대하는 대표부를 개설하고, 대사를 파견하였다.
또한 ASEAN-미국 정상회담에 참석하였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 주최하기도 하였으며, 메콩델타 파트너쉽과 같은 지역협력체에도 참여하였다.
ASEAN 정상회의와 병행해서 개최되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포함하여 아세안 주도의 각급 회의에 매번 고위급 대표를 보내는 것도 과거와는 다른 적극적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아세안의 개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도 힘을 쏟아 과거 중국과 가까웠던 캄보디아, 미얀마와의 관계개선에 힘을 쏟고, 싱가포르, 태국 등에 새롭게 군사기지를 확보하였다.
미국이 특히 많은 노력을 경주한 대상은 남중국해의 도서를 둘러싸고 중국과 분쟁중인 베트남과 필리핀이다.
베트남의 경우 1975년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아픔을 딛고 1995년 수교한 이래 점진적인 관계 개선을 거쳐 금년 5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하노이를 방문하고,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무기 금수를 해제하는 조치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토대로 금년 10월 미국의 해군 함정 두 척이 베트남전 종전 이래 처음으로 베트남의 캄란 해군 기지를 방문하게 된다.
미국은 중국이 해군력 증강에 따라 남중국해를 항해하는 다른 나라의 선박을 언제든지 목조를 수 있는 목조르기 기술(chokehold)을 갖추게 될 가능성을 우려하여 왔는데,
중국의 목조르기를 느슨하게 하기 위한 전략적·법률적 노력을 필리핀과 협력하여 진행하였다.
[4] 그 결과 필리핀이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한 적법성 검토를 네델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의뢰하였고,
일본인이 재판장으로 있던 이 중재재판소가 금년 7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국제법적으로 무효라고 판정하게 되어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의 국제법적 근거를 무너뜨림으로써 중국의 힘을 확실하게 뺀 것이다.
미국은 또한 2014년 필리핀 영토내에 위치한 5개 기지를 미국이 사용하도록 하는 협정을 필리핀과 체결하였고, 금년 초에는 이 기지에 주둔하는 미군 병력을 증원하는데도 합의하였다.
그 5개 기지 중의 하나인 Palawan 섬 공군 기지는 중국과 영토분쟁 중에 있는 Spratly 섬들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요충지여서 대 중국 견제의 전략적 고지를 점하게 되었다.
미국은 서남아시아와의 협력 확대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11년 7월 클린턴 국무장관은 인도를 방문, 투르크메니스탄 – 아프가니스탄 – 파키스탄 – 인도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을 포함하여 이 지역의 경제·교통망을 대폭 신설하는 새로운 실크로드(New Silk Road) 건설 구상을 제의하였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한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인근 국가들간의 협조 체제를 통해 확보하려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은 관련국 외무장관 회의를 개최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하였지만, 인도등 아프가니스탄 주변국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할 뿐 미국 스스로의 재원은 투입하지 않아 추진 동력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두테르테 대통령 방중, 방일의 결과 평가 및 전망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10월 20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양국 간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고위층의 상호 방문을 강화하는 등 정치적 상호 신뢰를 강화하고, 필리핀 철도, 도시 궤도 교통망, 도로, 항구 등 인프라 건설에의 중국 참여 등 실질 협력을 전개하며, 2017년 필리핀 술루왕 중국 방문 600주년 기념활동 전개 등 민간 왕래를 추진하고,
UN, APEC, ASEAN 등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을 강화할 것을 제의하였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의 필리핀 경제사회발전을 위한 대대적인 지원에 감사를 표시하고, 양국간 고위층 교류에 찬성하며,
다양한 분야의 실질 협력에 AIIB가 더 큰 역할을 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정상회담 후 양국 정상은 양국 간의 경제, 무역, 투자, 산업, 농업, 신문, 품질검사, 여행, 마약퇴치, 금융, 해양경찰, 인프라 건설 등 13개 쌍무협력 문건에 서명하였다.
[5] 두테르테 대통령이 방중을 마치고 귀국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중국-필리핀간 분쟁 수역인 Scarborough Shoal(중국명 : 黃岩島)를 순찰하던 중국의 해양경비정들이 조용히 철수하였다.
중국이 분쟁 지역의 영유권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고, 필리핀도 영유권에 대한 입장 표명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이 수역에서 오랫동안 가루파 등 물고기를 잡지 못했던 필리핀 어부들이 다시 고기잡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지지도를 감안한 중국 측의 관대한 우호 제스처이다.[6]
두테르테 대통령은 10월 26일 아베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후 공동 성명을 통해 필리핀은 민주주의 가치와, 법의 지배 및 남중국해를 포함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지지한다고 말하였고,
아베 총리는 그 분쟁들은 전 지구적 공동체의 이익이 걸린 문제라고 말하였다.
일본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우호적 감정을 표시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같은 날 개최된 일본·필리핀 기업인 모임에서 필리핀 경내의 모든 외국군이 2년 이내에(within maybe two years) 필리핀에서 철수 해 줄 것을 원한다고 말하고 이를 위해 협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겠고 말하면서 미국과의 거리두기에 나섰다.[7]
필리핀이 미국 편에 서서 중국과 대결하던 자세에서 갑작스레 중국과 협력하면서 미국과는 거리두기로 방향을 선회한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 식민지 종주국 미국에 대한 필리핀인의 반감, 두테르테 대통령 자신의 과거 체험에서 나온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두테르테가 선거 운동 과정에서 해양 영토 분쟁 문제와 관련 중국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 세웠던 점과 중국 방문 전후의 발언 등을 감안하면 단순한 대미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가능해진다.
오히려 중국이 경제력의 상승에 따라 군사력도 증강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능력이 과거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펴던 때와는 달리 중국과 러시아의 연합 세력을 완벽하게 봉쇄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갖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필리핀이 미국의 대 중국 봉쇄 전선의 선봉에 서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고 인식한 것 같다. 필자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언론 인터뷰 시 발언과 전 영국 비밀 정보기관 MI6 국장 John Sawers의 평가 등을 참고하여 이런 판단을 하게 되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방중 직전 필리핀 대통령궁에서 가진 중국 CCTV 수이진이(水均益)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 시 왜 필리핀의 입장이 갑자기 변하였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답변을 하는 중에 이런 언급을 한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이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의) 중재 결정을 집행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는데, 설혹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국가들이 필리핀과 한 편이 된다고 치자,
그러면 곧 제3차 세계대전을 초래하게 될 것이고,
전쟁이 일어난다면 필리핀이 조그마한 모래톱을 영유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8]라고 말이다.
필리핀 본토에 매우 가깝게 위치하고 있는 Scarborough Shoal 주변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필리핀이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을 두테르테 대통령이 무엇보다 우려하고 있으며,
밀물 때면 물속에 잠겨버리는 조그만 모래톱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미국의 세계 전략에 봉사하기 위해 필리핀만 희생을 치르는 짓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2016년 10월 31일자 Financial Times에 현직 MAP(Macro Advisory Partners, 정부나 투자자를 대상으로 전략 조언을 제공하는 회사) 회장으로 과거 영국 미밀 정보기관 MI6의 국장직을 역임한 바 있는 John Sawers가 쓴 ‘우리는 강대국 간 경쟁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다(We are returning to a world of great-power rivalry)’
제하의 칼럼이 게재되었는데 그 주요 요지는 이렇다:
차기 미국 대통령의 최고 정책 우선순위는 중국 또는 러시아와의 충돌을 회피해 나가는 것이 될 것이다.
중국의 경제력은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미국과 대등하게 되었고, 중국의 군부는 미국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자산에 투자하여, 그것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투사하고 있다.
러시아는 경제적으로는 강대국이 못되지만 자국의 안전을 확보한 채 국경 바깥에 영향권을 재건설 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군사적 능력을 지녔다.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 시대(Unipolar Era)는 25년도 지속되지 못해 과도히 야심적인 전쟁과 2007-08년의 금융위기로 인해 종말을 재촉하고 있다.
19세기 유럽에서 100년 가까이 6대 강국이 균형을 유지하며 지속되었던 강대국간 협치(Conert of Europe)가 보다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두테르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방중 결과는 남중국해 분쟁의 “연착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중국에게는 예상치 않았던 성공을 가져다 준 반면,
오랫동안 필리핀의 군사기지 확대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의 국제법 위반 판정을 추구해온 미국으로서는 몹시 당혹스러운 외교적, 군사적 곤경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불과 열흘 정도 밖에 남겨 놓지 않은 시기에 말이다.
그렇다면 두테르테는 미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각오를 하고 있는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상기 CCTV와의 단독 인터뷰 시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인들이 자주 왜 미국을 버리려고 하느냐고 내게 묻는데,
나는 미국을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나라들과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려는 것이다.
우리가 왜 한 나라와만 관계를 유지하고, 우리의 모든 패를 그 나라에게만 걸겠는가?”
필리핀의 국익을 위한 균형외교를 추진하겠다는 이야기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 인터뷰에서 미국이 필리핀과 군사훈련을 하면 미군의 장비와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훈련이 끝나고 나면 모두 도로 가져가 버린다면서 필리핀이 군사적으로 자립할 수 없도록 미국이 제약을 가하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였다.
중국으로부터 마약 범죄 단속을 위한 무기 공급을 받고 싶다는 의사 표시이고, 중국과의 거래를 확대함으로써 미국을 자극, 향후 미국으로 부터도 필리핀이 필요로 하는 것을 더 많이 지원받고자 하는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정책 선회에 대해 미국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려 할까? 당장은 미 대통령 선거가 끝나 봐야 가닥이 잡히겠지만 ‘아시아 회귀’ 정책의 창안자였던 클린턴이 당선될 경우는 물론이고 트럼프가 당선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두테르테가 요구하는 대로 2년 이내에 필리핀 주둔 미군을 철수하게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의 상황은 1997년 필리핀 주둔 미군 철수 시기와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때는 미국의 단극 시대로 미국의 동남아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을 때이나 지금은 중국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 동남아를 매우 중시하고 있는 시대이다.
미국 언론들의 보도를 보면 미국인들은 필리핀인의 다수가 미국에 살고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있거나 본인이 미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고, 필리핀 의회의 다수 의원들이 친 미국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필리핀 군부의 장성들 중에도 다수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미군 주둔 협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려 하여도 의회에서 동의를 얻지 못하면 성사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군부에서도 반대가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대통령의 유고나 초헌법적 정권 교체를 시도하려 할 가능성도 시중의 루머로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반대 세력들의 반발에 두테르테 대통령이 쉽게 굴복할 것 같지도 않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의 다바오시 시장을 20년간이나 역임하면서 강력한 마약 퇴치와 범죄 소탕을 통해 다바오시를 필리핀 내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만든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이고, 일개 지방도시의 시장이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중앙정부의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그의 이러한 경력과 필리핀의 열악한 치안 상황 때문인데 그런 그가 국내 정치세력의 반발이나,
미국으로 부터의 다양한 압력에 쉽게 굴복하겠는가?
오히려 금번 중국과 일본 방문에서 보여준 균형 외교 수완을 미중 양국간에서도 절묘하게 발휘하여 마약 및 범죄 퇴치를 통한 사회 안정과 수많은 도서들을 연결하는 철도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한 외국의 지원을 최대한 이끌어 내려고 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균형외교가 중일간 뿐만 아니라 미중간에도 성공할지, 미국과 국내 반대 세력의 작용으로 두테르테 대통령 정부가 중도 하차하는 사태가 생길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 등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아직 예측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세계 정세의 흐름과 두테르테 대통령의 카리스마적 리더쉽 등을 고려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된다.
필리핀의 성공 여부는 외교 환경면에서 유사성이 많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바야흐로 필리핀에서 진행되고 있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다소 아슬아슬해 보이는 균형 외교 실험의 진행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구할 때이다.
[1] 당시 필자는 태국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중국과 아세안의 FTA 협상 동향을 관찰하면서 중국 측 조치의 정치적 의미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의 그러한 관대함은 당시 아세안과 막 FTA 협상을 시작한 우리나라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2] 이 부분은 2013년 이미 중국 현지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당시 필자는 주청두총영사로서 영사관할지역인 윈난성 출장 기회에 뤠이리(瑞麗)에서 멀지 않은 룽링(龍陵)이라는 곳에서 매설 공사를 위해 노면에 쌓여 있던 파이프 들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였다.
[3] 중국 검색 엔진 바이두(百度)에서 해당 어휘 검색, 2016년 7월 6일자 매일경제, 2016년 7월 29일자 환구 일보 보도 등 참조.
[4] Gideo Rachman, “America’s grip on the Pacific is loosening”, 2016년 10월 31일자 Finacial Times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