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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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당
제목 인간 박 정희 3 부
작성자 Justin

2 부에 이어서 3부 , , ,

그때 당시 장애인 복지사업에 대한 청와대의 지원은 영부인의 각별한 관심에서 나왔다. 육 여사 집안에는 소아마비를 앓던 친조카 3명이 있었다. 황 부회장은 “1965년 육 여사의 초청으로 소아마비 어린이들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했는데, 육 여사가 자신의 조카 얘기를 꺼냈다”며 “그때는 소아마비 자식을 둔 고위층 인사들이 그런 사실을 숨기던 때였다”고 회상했다. 육 여사는 황 부회장에게 20만원을 건넸고 황 부회장은 이 돈으로 정립회관 터를 계약할 수 있었다.

육 여사의 지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립회관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황 부회장은 청와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1967년 걸스카우트회관 건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영화관 입장료의 일부를 떼어내 모아둔 돈을 정립회관 건립에 사용하도록 결정했다. 이는 걸스카우트 총재를 맡고 있던 육 여사의 결단에서 나온 것이다. 육 여사가 사망한 뒤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도왔다. 1974년 12월 박 대통령은 공사 중단 위기를 맞은 정립회관을 위해 2억원의 ‘하사금’을 내렸는데, 이 돈은 당시 공식적인 대통령 하사금 중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1975년 정립회관 개관식 행사에는 육 여사 대신 박근혜씨가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정립회관의 현판 글씨를 직접 썼다.

이한수 전 <서울신문> 사장은 “육 여사가 죽은 뒤 박 대통령의 주변에 ‘인의 장막’이 둘러쳐져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 주변의 많은 인사들이 그의 ‘실정’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 박정희’의 소탈하고 서민적인 면모는 유신 체제 출범 뒤 그 ‘물’이 많이 빠졌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증언이다. 이 무렵부터 그의 술자리에는 막걸리보다 ‘시바스리갈’이 자주 올라왔고, 여자들과의 추문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물구나무서기와 검도로 체력을 단련했던 그가 골프에 푹 빠진 것도 이 무렵부터다. 박 대통령이 ‘장학생’으로 관리하던 몇몇 기자들과 사이가 틀어진 것도 이때다. 박 대통령은 1978년 출입기자들과의 만찬에서 술에 잔뜩 취한 채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쓴 한 일간지 기자의 이마를 들이받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독재권력이 종말에 가까울수록 ‘인간 박정희’도 서서히 망가져갔던 것이다.

“다양한 직업여성 100여명 보유”
[인터뷰 | 전 중앙정보부 안가 관리직원] 10·26의 무대였던 궁정동 안가(안전가옥)는 어떤 곳일까. 안가의 관리 책임을 맡고 있던 박선호 과장은 이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궁정동 안가에 대해 설명을 하려다 법무사의 제지를 받았다. 그의 입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서울에는 궁정동 말고도 5∼6곳의 안가가 더 있다는 것’과 ‘대통령만 이용하는 집’이라는 것이다. 당시 안가에서 대통령이 모임을 여는 사실은 청와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만 아는 1급 비밀이었다. 안가 관리를 책임진 의전과장은 중정에서 잘나가는 요직에 속했다. 대통령의 사생활을 다루는 업무의 특성상 승진이 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안가는 YS 정권 때 모두 헐렸는데, 궁정동 말고도 한남동과 구기동, 청운동, 삼청동 등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21>은 수소문 끝에 70년대 한때 한 안가에서 근무했던 전 중앙정보부 직원을 찾아내 어렵사리 인터뷰하는 데 성공했다.

안가는 도대체 어떤 곳인가.

원래는 대통령 경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대통령이 사석에서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을 경우 술자리를 하면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한 곳이다. 10·26 사건으로 여성이 접대를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가의 운영 목적이 다소 왜곡된 측면이 있다. 외국에서도 대통령 암살에 대비해 안가를 운영하면서 침실을 바꿔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청와대 경호실이 아니고 왜 중정에서 직접 관리했나.

경호실은 군처럼 경직된 조직이어서 안가 관리에 적합하지 않았다. 대통령도 딱딱한 분위기에서 술자리를 하는 걸 원하지 않아 중정에 맡긴 것으로 알고 있다. 공식적인 행사는 경호실이 담당하지만 사적인 행사는 중정이 담당함으로써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정보와 주변 권력의 분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측면도 있다.

대통령은 안가를 돌아가면서 이용했나.

10·26이 난 궁정동이 가깝고 규모가 커 자주 이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머지 안가 가운데는 아예 가지 않은 곳도 있다.

연회 접대 여성은 어떻게 준비하나.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처럼 여자들을 합숙시키는 곳은 없었다. 여자들을 조달할 수 있는 채널을 가진 ‘마담’들을 활용했다. ‘손이 컸던’ 마담 2명 정도가 주거래처였는데 그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을 100여명씩 보유하고 있었다. 마담들이 추천하면 중정 직원이 ‘면접’을 봤고 외모와 경력 등을 따져본 뒤 입이 무거울 것으로 보이는 여성 위주로 선택해 수발을 들게 했다.

연회 원칙 같은 것은 없었나.

술과 음식은 경호실에서 선택하고 준비까지 책임진다. 안가에는 조리시설이 있었지만 모든 음식 재료는 경호실에서 준비해온다. 접대 여성은 한 차례 이상 넣지 않는다. 대통령 눈에 들어 혹시 임신을 하거나 대통령이 여성에 빠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대통령이 찾으면 만류해보다가 잘 안 되면 추가로 딱 1번만 더 접대하도록 한다.

안가에서 대통령은 주로 누구를 만났나.

무척 다양해 특정할 수 없다. 수출을 많이 했거나 해외에서 큰 공사를 수주한 기업인을 불러 격려하기도 했고,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학자 등을 불러 얘기를 듣기도 했다. 고인이 된 한 그룹 총수와 자주 접촉했는데, 그 총수는 대통령에게 격려를 받으면서 지원을 부탁해 기업을 눈부시게 키워나갔다.

안가 관리자들의 근무 형태는 어떠했나.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이 아니면 모든 안가는 24시간 대기 상태에 들어간다. 하루 중 언제라도 불시에 대통령이 방문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직원들이 대기해야 한다. 청소를 비롯한 관리 상태는 항상 최상을 유지해야 했다.

곧,, 4 부 계속,,,,

출처:
<'청산하지 못한 역사'> (청년사 刊)
<서울 격동의 50년 나의 증언> (한울사)
<박정희 18년:그 권력의 내막>(동아일보사)
<대한민국 다큐멘타리>(인물과 사상사)
그 의외 다수 등등,,,,,,,,,,

2018-04-13 10:17:28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1   bibliatell [ 2018-04-13 13:38:32 ] 

대한민국의 카사노박. ㅋㅋㅋ 작은 것에 대한 콤플랙스가 분명 있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그래서 와이프도 자기보다 훨씬 컸고. 따먹힌 여인들도 카사노박 보다 모두 컸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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