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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간 박 정희(마지막회)
작성자 Justin

3부에 이어 4부 마지막회, , ,

이한수 전 <서울신문> 사장은 현재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 박 대통령이 여러 과오를 저지르긴 했지만 빈곤 문제를 해결한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는 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다.

그가 기억하는 박 대통령은 매우 다정다감한 인물이었다. “한번은 기자들에게 ‘내 얼굴이 왜 새까만 줄 아쇼?’라고 묻는 거예요. 다들 ‘모른다’고 했더니 씩 웃으시더군.” 박 대통령의 대답은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박 대통령은 그의 조카와 출생연도가 같다. 그의 어머니가 큰형수와 같은 시기에 임신을 한 것이다. “박 대통령 대답이 이래요. 어머니가 창피해서 자기를 지우려고 간장을 많이 드셨다고. 그래서 자기 얼굴이 새까맣게 됐대요. 그 얘기를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더라구.” 박 대통령의 소탈한 성격은 그를 비난하던 기자들도 ‘박정희 장학생’으로 변신하게 했다고 한다. “사석에서 박 대통령을 맹렬히 비난했던 동료 기자가 청와대를 출입해서 박 대통령과 딱 3번 같이 식사하더니 그냥 박정희 팬이 돼버렸어. 당시 청와대를 거쳐간 기자들 중 나중에 유정회(박 대통령이 유신을 단행한 뒤 직접 임명한 국회의원) 의원이 된 기자가 7∼8명가량 됩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업적이 친일이나 엽색 논란으로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때는 ‘배꼽 아래 얘기는 하지 말라’는 얘기가 돌 땝니다. 특히 군인 사회에서는 그런 문화가 심했죠. 박 대통령도 그런 문화에 익숙한 세대입니다. 지금 잣대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당시에는 불륜은 문제가 됐지만 ‘로맨스’는 용납되던 때였어요.” “친일 논란도 마찬가지죠. 한-일 합방 이후에 태어난 사람에게 독립운동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겁니다. 물론 그럼에도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크게 대우해줘야 하지만. 박 대통령이 만주군 장교로 가게 된 것도 돈이 없어서 그런 건데, 1943년에 임관해서 45년에 중위가 됐어요. 해방되던 해 비로소 장교가 된 겁니다. 40년 이후에는 독립군의 무장투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독립군을 학살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왜곡된 겁니다.”

“인혁당 사형집행은 박정희 지시”
[인터뷰 | 제임스 시노트 신부] 제임스 시노트(75·미국) 신부는 1975년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의 사형 집행이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75년 3월 국제앰네스티 관계자들과 도널드 프레이저 의원 등 미 의회 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이 한국의 인권상황을 ‘감시’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시노트 신부는 이들의 통역으로 활동했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JP(김종필씨 애칭)는 앰네스티 관계자 등에게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결코 사형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돌아간 지 8일 만에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프레이저 의원 말로는 JP가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다고 했죠. 당시 JP의 말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은 박정희밖에 없었습니다.” 시노트 신부는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의 구명을 위해 박 정권에 대항하다 75년 12월 미국으로 ‘추방’당했다. 1960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이듬해 5·16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정치적 혼란이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에 박정희 정권의 등장을 환영했다고 한다. “당시 외국인 신부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박정희가 3선 개헌을 강행하자 그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박정희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는다면 민주화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군사정권이 장기 집권했던 칠레나 브라질은 지금 과거사 청산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데, 왜 한국은 아직 군사독재정권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나요?”

박정희와 정인숙, 그리고 정일권
[인터뷰 | 김자동 ‘민족일보사건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박정희의 여자관계가 거론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정인숙 사건이다. 정씨는 1970년 자신의 오빠에게 피살됐는데(당시 정씨는 26살이었다), 그의 ‘연인’이 정일권(1994년 사망) 총리였다는 주장이 유력하게 제기됐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는 사람도 많다.

김자동 ‘민족일보사건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정인숙의 연인이 정 총리였다는 것을 당시 박 대통령 측근들이 퍼뜨리고 다녔다”며 “나도 당시 박정희의 한 측근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다”고 회상했다. 김 위원장은 “정 총리는 당시 정권의 핵심에서 밀려난 상태였는데, 정인숙 사건을 계기로 다시 박정희의 총애를 받게 됐다”며 “세간에는 정 총리가 누명을 뒤집어쓰는 대가로 복권됐다는 얘기도 돌았다”고 말했다.

당시 정인숙의 아이는 박 정권과 유착관계에 있던 한 일본인 재력가에게 잠시 맡겨졌다가 외가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시 정인숙의 수첩에서는 그와 접촉했던 사회 저명인사 26명의 명단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고, 정씨의 오빠는 19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뒤 자신이 정치적 희생양임을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유신은 해선 안되는 것이었다”
[인터뷰 | 최병렬 한나라당 전 대표]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는 박정희 집권 시절 <조선일보> 정치부 국회출입 기자와 정치부장을 했다. 최 전 대표는 1월26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시대에 대해 “가난 탈출 과정은 경이로웠지만, 유신은 절대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박정희가 내걸었던 국가 재건은 지식인이나 언론인 사이에서 광범위한 설득력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박정희에 대해 기자들의 평가는 어땠나.

우리는 참담한 가난의 기억을 가진 세대 아니냐. 인권 탄압한 것도 사실이고 쿠데타로 집권한 것도 사실이다. 정치나 관료 세계가 부패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이션 빌딩(국가 건설)의 시대였다. 왜 민주주의 제대로 하지 않나 하는 것보다는 가난 탈출 과정을 놀라운 눈으로 보는 시각이 훨씬 강했다.

개인적으로 본 박정희는.

집념이 대단해 보였다. 경부고속도로 절개면까지 직접 그린 사람이다. 밤잠도 안 자는 것 같았다. 경부고속도로 놓는다고 할 때 찬성자는 대한민국에서 딱 둘뿐이었다. 박정희하고 정주영. 장기영 부총리를 위시해서 온 국민이 반대했다. 당장 굶어죽는 사람이 천지인데 자가용 가진 사람 유람길 닦나 이랬다. DJ가 국회에서 4시간 동안 반대 연설을 했는데 명연설이었다. 결국 여당 의원들이 날치기로 통과시켰지만. 고속도로 밀어붙여 닦고 새마을운동 시작하더니 그 다음 단계로 공단, 항만 세우면서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하더라. 일본에서 종자돈 얻어다 포철 세우고 길 닦고, 차관으로 공장 세워 온갖 물건 내다팔고, 경공업·중화학공업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은 경이로웠다. 그때부터 나라가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통치 방식을 평가하자면.

생각을 많이 하고 나라를 어떻게 하면 바꿀까 혼신을 쏟아붙는 스타일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술하고 여자. 육 여사가 재떨이 던졌다는 얘기는 파다했다. 뒷세대 눈에는 괴물이나 독재자로 그려지겠지만 국가 발전 과정에는 그때만의 상황이 있다는 걸 그때의 시각으로도 봐야 균형이 잡힌다. 그런데 삼선개헌까지는 그렇다 쳐도, 유신은 그거 나라 조지는 거였다. 안 했어야 했다. 좋게 보면 내이션 빌딩 완수하려고 그랬겠지만 다르게 보면 독재자의 길로 스스로 둥둥 떠서 간 거라고 볼수 있다.

정치 환경은.

그 시절에 부패는 없었다고 하지만 흥청망청했던 건 맞다. 어느 정도였냐면 유력 정치인이 내게 친구들이랑 술 먹으라고 촌지 수표를 줬는데 엄청난 거액이었다. 그래서 이 양반이 잘못 준 건가 해서 다음날 돌려주러 갔더니, 지갑에서 그런 큰돈이 빠져나갔는지도 모르고 있더라. 정치인들 돈 펑펑 쓰고 계보 만들고 그랬다.

10·26 사건 때는 어땠나.

죽을 사람 죽었다는 생각은 솔직히 없었다. 남북 관계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박정희 혼자 원맨쇼 하면서 끌고 간 나라였는데 걱정이었다. 전두환이 국보위 만들어 나라 들어먹은 게 큰 굴절이었다. 10·26 직후 정부가 관리를 잘해서 민주주의 선거를 했어야 했다. 그걸 막아버린 게 국보위였다. 정말 큰 굴절이었다.

(끝)

2018-04-14 14:32:59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4   chan8864 [ 2018-04-15 21:02:38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1부는 어디있나요?

3   zenilvana [ 2018-04-14 17:21:06 ] 

글을 많이 써보신 분이구먼. 그리고 다독(多讀) 했던 걸로 보입니다. 영문서적은 어땠는지......?

2   Justin [ 2018-04-14 14:45:00 ] 

위의 글의 출처및 발췌본서적들,,,,,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 강국 만들었나>오원철 저 | 동서문화사
<박정희 평전>전인권 저 | 이학사
<박정희 패러다임>황병태 저 | 조선뉴스프레스
<박정희, 한국의 탄생>조우석 저 | 살림출판사
<박정희와 친일파의 유령들>한상범 저 | 삼인
등,,등등 , , , , , , ,

1   Justin [ 2018-04-14 14:39:34 ]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여러 관점과 의견이 적힌 책들이 다양합니다.


앞으로 시간이 허락되는대로 포스팅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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