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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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 Angeles
열린 마당
제목 잠재의식이 사람의 幸-不幸을 좌우한다
작성자 zenilvana

오래 전이다. 병상에 누워 마지막 숨을 거두는 한 여인을 내려다 본 적이 있었다. 50대 말의 그녀는 벌써 몇년 동안 암과 투쟁했었다. 그날 그녀가 고난의 한 旅程(여정: 남은 길)을 헐떡이며 끝내는 그 순간은 엄숙하면서도 참담한 그런 것이었다.

그녀가 처음 이곳에 정착하면서 주민들의 성경공부 모임에 어느날 나타났었다. 한국의 어느 대학의 사회학 유명교수라는 남편도 같이 참석했었다. 사람들이 새 신자로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환영하였다. 성경공부 중에 내가 한국교회에 횡행하는 정통 보수적 견해에서 문제시 되는 점을 열거하는 발언을 했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느닷없이 나서서 이런 말을 내뱉어 놨다. "개 눈에는 똥 밖에 않보인다 던데, 당신은 그런 것만 찾아 다니다 보니 그런 말 만을 하게 된다"고... 내가 너무 어개가 막힌 남어지 그녀의 얼굴을 한동안 물끄럼이 바라다 보았다. 그리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몇달 후에 우리 교회가 야외예배를 가졌던 끝에 드디어 자유시간이 되었다. 그 기회에 내가 그녀에게 접근했다. 어떤 여자이길래 처음 보는 남자에게 그런 된소리를 하는가가 알고 싶어서였다. 그녀가 나를 보자 지난번의 一喝(일갈: 한번 소리지름) 때문에 남편한테서 되게 꾸중을 들었다고... 그런 실토를 하는데 내가 또 한번 놀래게 되었다. 그녀 나름의 한 사과로 받아들이고, 신상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으면서 잠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녀는 집안의 여러분과 온 친척들이 목사와 장로인 그런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었다. 오빠나 누이들 모두가 서울의 일류 고등학교를 다녔으나, 이 여자만은 무슨 이유였는지, 그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낙방 만을 계속 했단다. 혼자서 독학을 하여 결국 서울여대를 졸업했다고 했다. 다행히 잘 알려진 사회학 교수와 결혼하게 됐고 두 딸과 한 아들을 가지는 주부가 되었던 바였다.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하는 것 처럼, 그 여자는 고등학생 자식들 셋을 데리고 이곳 우리 동네에 이사를 와서 여자만 우리 교회를 나오게 됐었던 처지였다. 그 남편도 1년에 두어번 씩 이 곳에 와서 몇일을 같이 지내는 "기러기 가족생활"을 여러 해 하면서 자식들을 위하여 부모의 할 도리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 고등학교 동창의 여동생이라는 것이 아닌가? 세상은 좁다고...

이 여인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교회에서 그녀의 관을 앞에 놓고 장례예배 중의 식순에 따라 내가 회중 앞에서 한 찬송가를 불렀다.

292장의 "내 본향가는 길 보이도다, 인생의 갈 길을 다 달리고, 땅위의 수고를 그치라 하시니, 내 앞에 남은 일 오직 저길".....

나는 왜 그런지 목이 메어와서 도저히 제대로 발성을 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지막 3절을 그런대로 마음을 진정하여 끝냈지만, 장송곡을 부르는 사람으로서는 제 기능을 다 발휘하지는 못했다. 뉴저지 프린스톤 인근의 어느 교회묘지에서 하관식을 마치고 난 목사님이 뒤로 돌아서시더니 '오늘의 찬송이 참 좋았읍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내 귀에 속삭이셨다. 울먹인 찬송이 좋았다고...? 하긴, 아무리 울어보려고 해도 그렇게 쉽게 지어낼 수가 없다.

그런데 멀리서 온 내 고교동창이란 녀석은 40년 만에 나를 처음 보고도 인사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내가 제 여동생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눈물을 흘려주었는데도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사라져 버렸다. 사람의 인심이 이처럼의 차디 찬 돌덩이가 될수 있을까? 이 者는 뭔가 잘못 살고 있었다.

그녀가 왜 불치의 병이 걸렸어야 하는가를 나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세상의 어떤 黑과 白(흑-백)을 붙잡고 자기의 것만 희여야, 다시 말해서 白色(백색)이어야 한다는 고집이 결국 그녀의 육체에 부담을 가져오게 했던 것이었다.

요즘에 '베스트 셀러'로 시중에서 많은이들의 입을 모은다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종류의 책들이 많다. '퀀탐'(Quantum Theory)의 이론... 거기의 엄연한 진실을 이 여자가 이해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런 자세로써 신앙생활을 해본들, 부글거리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결국에 가서 그녀의 건강을 해쳤고, 때 이른 죽음을 당하게 하고 말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신앙생활을 한다는 건가?

그녀가 죽어가는 동안 기독교인으로서 해야 할 본분을 뒤늦게 다하기로 작정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이웃사랑' 하기에 총력을 기우렸었다. 하나님에게 미쁘게 보이면 그 무서운 암에서 다시 회생시켜 줄줄 알고 발버둥쳤다. 가장 인간적인... 그런 선량하고 약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기적을 바랬었다. 그날 이땅에서의 마지막, 서로 고별하는 자리에서 우리들은 그녀의 착한 공적을 한 이웃의 입으로 눈물겨웁게, 그리고 지겨울 정도로 오래 들어야 했었다. 비록 죽음을 앞둔 마지막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참으로 '인간적인 사랑의 모든 것'을 남에게 베풀려고 노력했었다는 말들을...

그녀는 임종하기 전에 또 다른 교수의 미망인을 불러서 자기가 죽은 후에 자기 남편과 결혼해 달라고 부탁했단다. 이 과부는 남편이 독일에서 유학하던 중에 교통사고로 죽자, 30대 말에서 50세를 넘기까지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혼자 살아온 美人(미인)이었다. 미술의 전공을 살려서 생계를 유지하던 그녀에게는 수심이 늘 가득했었었다. 결국 사회학 교수는 他界(타계)하는 부인의 소원 대로 이 미술가 여인을 새 부인으로 맞아들리고 서로의 새 인생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두 사람의 신자를 한꺼번에 잃게되었지만, 그 憂愁(우수)에 가득찾던 또 하나의 人生(인생)을 웃음의 化身(화신)으로 꽃피게 하였다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부르짓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한번 살고 간다. 평생을 외부조건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불만과 속상한다는 넉두리의 삶을 살다가 마침내 자신을 병으로 지레 죽여야 하는가? 잠간의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갑자기 '죽음의 암'을 치료해 수가 있다는 건가?

오랜동안 남을 아끼고 도와주는 데서 기쁨을 찾아야 하고, 감사하는 이웃의 얼굴에서 삶의 보람을 느껴야 만이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그런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병이 생기지도 않겠고, 설혹 암에 걸렸더라도 곧 기적의 회생을 하는 것을 우리가 가끔씩 본다. 마음가짐이 자기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진리...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를 않는다. 아멘!

참고:

1) "욕심이 크면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걱정이 생긴다. 걱정이 심하면 병이 되며 병이 나면 정신이 흐려진다. 또한 정신이 흐려지면 생각이 옳지 못해 경거망동을 일삼게 된다. 경거망동은 화근을 불러일으키고 화근은 병을 깊게 만들어 위와 장을 상하게 한다. 결국 욕심 때문에 육체도 정신도 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비자-

2) "한비자( 韓非子 BC 280-BC 233 ):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 사상가 法(법)의 지상(至上)을 강조한 법가사상(法家思想)의 대표적 고전으로, 한비가 죽은 뒤 BC 2세기말 전한(前漢)시대에 지금의 형태로 정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3) 법가(法家:Legalism): 중국의 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770~221 BC)에 천하를 다스리는 원리에 대해, 유가가 仁(인) · 義(의) · 禮(예)와 같은 덕치주의가 근본이라고 주장하였음에 비해, 법가(法家)는 보다 엄격한 법치주의가 근본이라고 주장하였다. 법가는 천하를 다스리는 원리는 법(法)과 술(術)이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법(法)은 군주가 정하는 규범을 뜻하며 술(術)은 법을 행하는 수단을 뜻한다.

4) 위의 인용은 Google에 들어가 "한비자"를 찍어넣으면 "고전(古典)명언-한비자(韓非子)"이란 제목을 열어서 추려낸 일부의 서술입니다. <위키백과에서 인용했음>


禪涅槃

2018-04-20 1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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