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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주교신부, 어린이1백30여명성추행
작성자 shangha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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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부, 어린이 1백30여명 성추행
다른 신부 80여명도 같은 혐의, 합의금만 3억5천만달러
이승선 기자

2002년 미국 보스턴에서는 가톨릭 신자의 절반 이상이 추기경의 사임을 요구하는가 하면, 사제들마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며 공공장소에서 사제 복장 착용을 거부하는 등 미국 가톨릭의 도덕성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달 보스턴 대교구 소속 사제가 10살 난 어린이를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9~10년을 구형받는 과정에, 그가 이 어린이를 포함해 30년간 1백30명의 어린이를 성추행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면서부터다.

***가이건 신부, 30년간 1백30여명의 어린이 성추행**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사제들의 어린이 성추행이 새삼스런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린이 성추행은 오랜 기간 만연되어 왔음에도 극도로 은폐되어 왔을 뿐이라는 게 가톨릭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보스턴 사건으로 더 이상 사제들의 어린이 성추행 문제가 은폐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감지한 미국 가톨릭계는 은폐 기도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미국 전역에 걸쳐 각 교구들이 그동안 고이 간직해온 비밀을 자발적으로 보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이를 은폐하려 했다가는 가톨릭계 전체가 붕괴될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성추행을 저지른 사제들의 명단을 검찰에 제출하고 있지만, 그동안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성추행 사건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은폐해 왔다는 점에서 가톨릭계 지도층의 도덕성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됐다.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뉴욕의 한 어머니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회가 자녀에게 모범을 보여준다고 믿어왔는데 이제 내 아들이 복사(服事)로 일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다"고 망연자실해 했다.

존 가이건(John Geoghan) 사제가 저지른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보스턴 대교구의 버나드 로 추기경에 대해 보스턴 글로브지는 이미 지난 1월 "로 추기경이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가이건 신부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교구로 옮겨주었다"고 폭로했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로 추기경과 그의 측근들은 30여년에 걸쳐 가이건이 1백30여명의 어린이를 성추행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 교회 내부 문서에서도 드러났다.

***80여명의 사제들이 어린이 성추행**

가이건 사건 은폐 시도가 알려진 이후 로 추기경은 수십년간 성추행 혐의자로 파악된 80명이 넘는 신부들의 명단을 검찰에 제출해야 했다. 그는 얼마전 사순절 예배에서 공개사과까지 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맨체스터,메인 등 미국 전역에서 어린이 성추행 혐의에도 불구하고 복무중인 사제들을 추방하기 시작했다.

필라델피아 대교구도 소속 사제 35명이 지난 50년간 아동들을 성추행해온 증거를 확보하고 사제들 중 일부의 직위를 박탈했다고 밝혔다.

교구는 10명 미만의 사제들이 수년전 명백한 성추행 또는 성폭행 혐의에 직면했으며, 그 이후 그들은 행정직에만 봉직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4명의 사제들은 아동 이상성욕자로 진단받아 사제직에서 쫓겨났다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 1백94개의 가톨릭 교구 중 1월부터 17개 교구에서 적어도 55명의 신부가 교단에서 쫓겨나거나 사퇴압력을 받고 있다.

***가톨릭 수뇌부는 진실 은폐에 급급**

그러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IHT)는 "로마 가톨릭교를 휘청거리게 하고 있는 성추행 추문은 끝나기는커녕 이제 시작했을 뿐"이라고 18일 보도했다.

IHT는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이번 성추행 사건에 경악하고 있는 것은 이런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가톨릭교계에서 일어난 어린이 성추행 사건이 맨처음 표면화된 것은 지난 85년의 일이다. 루이지애나의 길버트 고드 신부가 수십명의 어린이를 성추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징역 20년형을 받았다.

이 문제를 연구한 미국 주교들은 90년대초 '신뢰회복'(Restoring Trust)이라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댈러스, 산타 페, 뉴 멕시코, 폴 리버, 매사추세츠, 산타 로사, 캘리포니아 등 미국 각지에서 어린이 성추행 사건이 재발되고 나서야 많은 교구들이 이 방안을 시행했다.

성추행 혐의를 받는 신부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서 이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장막 뒤에서 희생자는 여전히 속출하고 있었다. 피해자나 가해자나 비밀로 붙이는 것이 서로의 신상에 좋다는 이유로 1천여건의 소송건에 대해 각각 몇천달러에서 몇백만달러에 이르는 합의금으로 사태를 막아왔다.

게다가 가톨릭교에서는 문제의 신부들을 다른 교구로 전보시켰다. 그러나 많은 주교들이 이것이 중대한 실책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85년 이전에 이런 실수를 저지른 주교는 무지했다거나 또는 순진했다는 이유로 눈감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85년 루이지애나 사건 이후에는 이런 변명도 통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 신부는 말했다.
사제들에 의해 성추행 당했다고 주장하는 수백명의 피해자를 만나본 제프리 앤더슨 변호사는 "성추행 사건이 재발되지 않게 하려면 주교를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고 분노했다.

***요한 바오로 격노, 그러나 교황청은 침묵**

가톨릭 사제에 의한 성추행 사건이 이처럼 확대되어온 데에는 바티칸 교황청의 미온적 태도에도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미국의 성추행 사건을 '미국내 문제'로 치부했다. 그러나 유사한 사건이 계속 늘어나자 바티칸의 소극적 태도에 비난의 화살이 돌아갔다.
바티칸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세계2차대전 중 일어난 홀로코스트(대량학살)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지 못했던 무기력한 교황과 비교되고 있을 정도다.

사실 교황은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신부들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노쇠한 교황의 권위가 힘을 잃은 탓인지, 정작 바티칸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교황은 지난 1월 성추행 사건을 로마로 직보하도록 하는 법령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주교회의에서 이 법령을 다루지 않는 등 바티칸 당국이 성추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달 출간되는 <치욕의 바다:섹스 여행과 페도필라(어린이에 대한 성도착증)>의 저자이기도한 몬시뇨르 피에로 모니는 "섹스 향락객으로 가득찬 태국 또는 필리핀행 비행기들이 사제들로 가득찬 것은 아니다"면서 "아직도 교황청은 어린이 성도착 문제를 조사할 도덕적 권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3억5천만달러의 합의금 내느라 교구 파산 지경**

성추행 사건은 미국 가톨릭 교구들에게 재정적으로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보험으로도 충당하지 못할 정도로 벌금이 많기 때문이다.
보스턴 대교구만 해도 가이건 사제에게 성추행 피해자측 86명에게 최고 3천만달러를 지급키로 합의했다.

피해자측의 법정대리인인 미첼 가라베디언 변호사는 "이 합의금을 수용키로 했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인생에서 혼란이 끝나는 것이 아니며 이들에게 안겨준 엄청난 고통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대교구측은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40명의 피해자에게 이미 1천5백만달러를 지급한 상태다.
현재 진행중인 보스턴 대교구내 관련소송만도 92건으로 대교구는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소송비 및 보상금 문제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이미 몇몇 교구에서는 다른 교구에 지원을 요청하거나 기부금 모금, 교회 또는 교구 학교 등 자산 매각에 나서야 하는 형편이다.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에 따르면, 수백명의 피해자에게 지급한 합의금만 현재 3억5천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톨릭계 보수화가 근본 원인**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가톨릭 교회가 처한 보다 진정한 위험은 신자들 중에서 '냉담자(교회에 나오지 않는 신자)'가 급증할 위험성이다.
이와 함께 미국 가톨릭 교회는 그동안 누려왔던 법적 보호를 더이상 받지 못하게 될 위험에 처해졌다. 또한 사형제도 폐지나 가족의 가치 등에 관한 도덕적 권위도 빛이 바래게 되었다.
심지어 가톨릭교의 토대인 미혼남성 사제제도가 이 시대에 맞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신자들까지 늘고 있다.

전세계 가톨릭 신자수는 2000년말 현재 세계인구의 17.4%인 10억5천만명으로 이중 절반에 가까운 49.4%가 미주 대륙에 집중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만 신자 6천2백만명의 최대 교파를 형성하고 있다.

교황청이 최근 발간한 2002년 교황청 연감에 따르면 신자가 두번째로 많은 대륙은 유럽(26.7%)이며 아프리카(12.4%) 아시아(10.7%) 오세아니아(0.8%)의 순이다.
또 전세계 주교의 수는 4천5백41명, 사제는 40만5백17명, 수녀는 80만1천여명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세계 가톨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잖은 미국 가톨릭의 타락과 몰락은 '보수화'에서 기인한다는 게 지배적 분석이다.
종교의 진정한 지향점을 상실한 채 미국의 물적 풍요로움에 탐닉해 보수화와 대형화의 길로 치닫다보니 어린이 성추행과 같은 인간말종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가톨릭의 위기, 이는 곧 미국 도덕성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2018-04-23 22: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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