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Los Angeles
열린 마당
제목 내 종류는 속물에 속한다.
작성자 Justin

당신은 어디에 속하냐고 물으시면
나는 속물이다라고 말하겠다.

박정희를 비판하면 “전라도출신이냐?”고 묻고,
삼성의 부정적인 측면을 까발리면 “취직을 못해 화풀이하는 거냐?”고 눈을 부릎뜨고,
그러다가,
태도를 바꿔 한국의 일등기업이라 칭찬하면 “뭘 받아먹었느냐?”고 째려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요즘은 그렇고 그런 정보를 취합하여 재생산하거나
양비론을 내세워 말하고 싶을뿐이다.
그래서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이 많다.
속세에서는 속물(俗物)로 살아야지 성인인 척 하면 욕을 더 많이 얻어먹으니까.

자본주의에 살면서 속물근성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단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없다고는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반드시 속물(俗物)이 지저분하고 부끄러운 것만은 아니다.

어원을 살펴보면 풍속 속(俗)은 사람 인(人)에 골 곡(谷)이 붙은 것이고
‘谷’은 본디 물이 흘러나오는 골짜기의 입구를 그린 것,
샤워기는 커녕 세숫대야도 드물던 시절 먹고 사느라
먼지구덩이에서 굴린 몸을 제대로 씻지 못한 사람들이
계곡의 맑은 물에서 목욕하는 습속을 ‘俗’이라고 했다.

형이하학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장삼이사의 습속이지만,
더러운 때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 때를 벗겨내고자 하는 의지를 적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냄새를 풍긴다.

또한,
‘속물’을 영어로는 ‘snob’라고 하지만 말맛이 다르다.
‘snob’의 뿌리는 중세영어 ‘snobben’, 브리티시 사투리로 ‘신기료장수’를 뜻했는데,
상류사회에 속하지 못한 채 흙을 밟고 다니는
신발이나 만져 밥 먹고 사는 ‘하류계급’이라는 의미로 쓰이다가,
품위고 교양이고 뭐고 형이하학적 가치를 위해
형이상학적 가치를 기꺼이 내팽개치는 사람을 뜻하게 됐다.
‘snob’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산업혁명 후 돈 많이 번 놈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던 19세기 들어서였다.

교양과 인품과 지식과는 담을 쌓은 채 돈과 명예 등
세속적 가치추구에 몰두하는 부르주아에 대한 경멸과 비판이 실려 있었다.
그걸 ‘snobbism’이라고 했다.
자신이 천박하다는 것을 모른다는 점에서는 한자문화권의 속물보다는 한 끗 아래다.

어쨌거나 때가 많이 끼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끔히 씻어내지 못하면서 산다는 자책이 크다.
그러나 그 자책이야말로 속물의 필요충분조건,
속물이면 속물답게 바른 말도 굽혀 말해야 하건만
세상의 때를 조금은 덜 묻히려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다가
“세상 참 한심하다”하고 긴 한숨 내쉬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자기 자신 또한 그런 속세의 먼지구덩이 속에서 뒹굴고 있는데!
결국은 속세에선 속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건가?”하고 끝없이 자책할 수밖에.

아직은 ‘snob’로 전락하지 않고 ‘속물’로 남아 있는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긴다.
요즈음은 티 없이 맑은 하늘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부는 어느 공원에 가서
따사로운 햇살로 온 몸과 마음을 문질러 때를 벗기는 데까지 벗겨봐야겠다.

그래봤자,
먹고사는 문제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해 또 다른 속물이 되겠지만서도 , , , , ,

2018-05-19 12:59:16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3   bibliatell [ 2018-05-21 13:58:20 ] 

자신이 속물인 것을 인지하는 순간 더 이상 속물이 아니다. #2는 아직 모르기 때문에 속물이다. ^^

2   sanghaip [ 2018-05-19 13:55:36 ] 

글은 잘 쓰는지 몰라도, 완전 속물 인간이 쓴 내용이다.
전라도 양아치들 근성이 글속에 쫙 깔려있다.
아주 더러운 속물들의 사고방식이라 하겠다

1   zenilvana [ 2018-05-19 13:45:45 ] 

잘 쓴 글이다. After all, we are the one who lives in the Wind and dust, no matter 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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